기술서적

캐서린 헤일즈 '나의 어머니는 컴퓨터였다'에서 드러난 인간과 지능 기계의 상호작용

지능 기계를 마주하면서 나는 그것들이 지배할 객체도, 나를 지배하려는 위협하는 주체도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이성규 2017년 08월 13일

나의 어머니는 컴퓨터였다

2장 말하기 글쓰기 코드

복잡성의 처소

  • 말하기에서 글쓰기, 글쓰기에서 코드로 나아가면서 각 후발 체제는 자신의 역학 속에 이전의 가치를 기입해 넣으며 앞서 나온 시스템을 재해석한다.(67)
  • 정보화 시대가 상당한 발전한 지금, 말하기와 글쓰기가 이진 숫자로 코드화될 때 의미 작용의 프로세스가 어떻게 바뀌는가를 이해하려면 말하기와 글쓰기라는 레거시 시스템과 코드가 어느 지점에서 겹치고 어디에서 단절되는가를 재빨리 면밀하게 분석해야 한다.
  • 많은 가능성들 중에서 말하기에 대한 페르낭 드 소쉬르의 관점과 글쓰기에 대한 자크 데리다의 그라마톨로지적 관점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68)
  • 나도 코드가 글쓰기와 말하기 둘 다를 넘어서며, 이 두 레거시 시스템 어느 쪽에도 나타나지 않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고자 한다.
  • 글쓰기와 우리의 만남을 무한정 연기(defer)하는 능력이 글쓰기가 말하기와 가장 두드러지게 다른 점이기 때문이다.
  • 코드를 글쓰기와 말하기 둘 다와 구별할 때 생각나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가장 분명한 것은 코드가 인간과 지능형 기계 양쪽 모두에게 의미를 전달한다는 사실일 것이다.(70)
  • [질문] 코드가 복잡한 세계를 재현하기에 적합해 보이도록 만드는 복잡성은 어디에 있는가?
  • 코드에서 복잡성은 기원이나 차이의 작용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계산의 창발적 특질인 복잡성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차이들을 거듭해서 다시 계산하는 노동 속에 있다. 인간은 자신의 계산 능력을 제한적으로만 이용하지만, 인간이 창조하는 지능 기계들은 상당히 세부까지 그 작용들이 모두 알려져있다. (70)
  • 소쉬르의 언어학, 데리다의 그라마톨로지, 그리고 계산 체제가 복잡성을 위치시키는 각기 다른 전략은 각각의 세계관에 대한 광범위한 함의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71)
  • 내가 보기에 정수(juice)는 코드가 말하기, 글쓰기와 상호작용할 때 생성되는 복잡한 역학에서 나온다. 이러한 상호작용은 그것들의 평범한 일상적 처리작용들을 포함하며 그것들의 세계관들의 갈등과 협력에 크게 좌우된다.

소쉬르의 기호와 물질적 문제들

  • 그는 말하기를 언어 시스템(랑그)의 진정한 처소로 보고 글쓰기는 단지 말하기에서 파생된 것으로 본다. “언어와 그것의 글쓰기 형식은 두 개의 서로 다른 기호 체계이다. 후자가 존재하는 유일한 이유는 전자를 현존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언어학의 연구 대상은 문어와 구어의 결합이 아니다. 구어만이 연구 대상이다.”(72)
  • 데리다는 글쓰기가 소쉬르의 주장처럼 파생물이기는커녕 말하기에 선행한다고, “언어학적 기호는 기원적 글쓰기를 내포한다”고 주장하기 위해 많은 논의들을 정리한다.
  • 데리다는 소쉬르가 “역사, 생산, 제도 등의 권리”를 삭제했다는 주장을 자신의 글에서 충분히 발전시키지는 않았지만, 물질성이 유의미한 제약을 부여한다고 인정한 것은 코드에서 핵심적인 중요성을 갖게 되었으며, 말하기와 글쓰기에서도 마찬가지이다.(73)
  • 현대에는 실리콘 기반 칩에서 소형화의 한계가 머지 않았다고 우려한다. 물질적 제약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컴퓨터로 전환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 그렇다면 코드의 경우 기호가 자의적이라는 가정은 기호가 유의미하게 작동하고 중요성을 획득하게 되는 범위를 한정하는 물질적 제약에 의해 수정되어야 한다.(74)
  • 소쉬르의 기호 개념이 확실히 비물질화를 지향하기 때문에 컬러가 물질적 제약보다 차이적 관계를 강조한 것이 잘못은 아니다. “[말하기] 회로의 물리적 부분은 즉시 고려 대상에서 빼버릴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 중요한 것은 코드에 교정이 일어나는 곳이 인간 이론가가 창조한 시스템이 아니라 전자장치라는 사실이다. 즉 정신적인 작용이 아니라 물리적인 작용이며 이론적 모델에서 소급적으로 일어나기보다는 코드가 실행되는 동안 일어난다.(75)
  • 소쉬르의 이론과 물질적으로 결정되는 코드의 실행 간의 괴리는 기표와 기의 같은 레거시 용어들을 코드에 사용해도 되는지의 문제를 제기한다.
  • 말하기와 글쓰기에 내재된 가정들이 코드와 관련해서 일어나는 교환, 갈등, 협력은 네트워크화되고 프로그램이 가능한 매체에만 기반을 둔 이론틀에서는 미처 보지 못한 채 흘려버리게 될 수도 있다. 새로운 가정으로 전환될 때는 오래된 세계관이 새로운 것과 끊임없이 협상하고 상호매개하는 방식이 가려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 그렇다면 코드의 맥락에서는 무엇을 기표와 기의로 간주할 수 있을까. 나는 이진법 기반의 중요성을 고려하여 전압을 기표로 보자고 제안한다. 궁극적으로는 디지털 컴퓨터의 모든 것이 전압의 변화로 환원된다는 프리드리히 키틀러의 주장에서 이미 암시된 제안이다.(76)
  • 기계 레벨에서의 전압은 그것을 해석하는 상위 레벨에 대하여 기표의 기능을 하고, 이러한 해석은 다시 그것과 접속하는 더 상위 레벨에 대해 기의가 된다. 이렇게 한 레벨에서의 기의가 다른 레벨에서는 기표가 되면서 코드의 다른 레벨들은 기표와 기의가 서로 맞물린 연쇄적 사슬을 구성하게 된다.
  • 기호들 간의 차이가 의미 작용을 가능하게 한다는 소쉬르의 전제는 컴퓨터 아키텍처에 잘 들어맞는다.(76)

데리다의 차이와 코드의 명료성

  • 소쉬르는 두 개의 언어학적 기호에 초점을 맞추어 그것들을 연결하는 관계를 추론하고, 데리다는 간극을 중요한 요소로 보고 여기에 초점을 맞추어 소쉬르의 현존의 가정을 부재의 생성적 힘으로 바꾸어놓는다고 할 수 있다.(77)
  • 시스템이 컴파일러, 인터프리터, 스크립팅 언어 같은 프로그래밍 언어들의 레벨을 쌓아올리면서 이 언어들은 선택에서 허용되거나 용인되는 한, 점점 더 큰 모호성을 허용하는 가능성을 발전시킨다. - (ms 워드 맞춤법 예 - 프로그램이 아무리 정교하다 할지라도 모든 명령어는 기계가 이해하려면 이진 코드로 분해되어야 한다.(78)
  • 디지털 컴퓨터의 맥락에서 모호성보다 훨씬 옹호하기 힘든 것은 기표가 기의를 지시하지 않고도 의미가 있다는 명제이다.
  • 코드의 세계관에서는 기의 없이 기표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전혀 말이 안된다. 기계의 행동에 영향을 주려면 모든 전압 변화가 정확한 의미를 가져야 한다. 기의 없는 코드는 아무런 효과도 갖지 못할 것이다.
  • 마찬가지로 전압의 모든 변화가 명확히 해석되지 않으면 프로그램이 의도한 대로 기능하지 않을 것이므로 부유하는 기표(데리다의 미끄러지는 기표)도 말이 되지 않는다. 기계에서 구식이 된 코드는 더이상 실행 능력이 있는 발화가 아니다.(79)
  • 계산적 세계관은 데리다가 소쉬르의 말하기 시스템에서 간파한 초월적 기의를 가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라마톨로지와 유사하지만 그것은 또한 데리다가 그라마톨로지에서 본질적인 것으로 보는 미끄러짐도 용인하지 않는다.(80)
  • 코드는 C++와 같은 고급 객체 지향 언어에서만 인용가능성과 반복가능성의 장점을 회복하며 그런 의미에서 그라마톨로지적이 된다.(81)
  • 울만은 코드의 가차 없는 성격을 강조하면서 코드의 기능성에 방점을 둔다. 코드는 디지털 컴퓨터의 행동을 바꿀 힘이 있으며, 그렇게 하여 거의 모든 종류의 첨단 기술 속으로 스며들 수 있기 때문에 현대 세계에서 중요한 행위자가 되었다.(81)
  • 그 장면은 코드의 세계관이 말하기에 대한 소쉬르의 비물질적인 관점이나 언어의 불확정성에 대한 데리다의 강조와는 다르다는 사실을 다른 식으로 보여준다.(83)
  • 기계에서 실행되는 코드는 언어보다 훨씬 더 강한 의미에서 수행적이다.
  • 코드는 네트워크로 연결된 포트와 다른 인터페이스들을 통해 코드의 전송과 수행으로 실행되는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코드가 인간 저자와 독자로부터 비롯된다 하더라도 일단 기계 속으로 들어가면 기계 자체를 주된 독자로 갖게 된다.(83)
  • 코드의 이러한 특징(수행적, 기능적 특징)은 어떤 말하기 행위나 글 한 편이 이해되고 실행 능력이 있는 발화를 구성하는지의 여부를 공동체가 결정하는 것과는 확실히 대조를 이룬다.(84)
  • 코드의 세계관과 다른 한편으로 소쉬르가 가정하는 화자들의 공동체와 데리다가 언급하는 무한히 다양한 기입 맥락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코드의 경우에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우 95와 이전 버전들과 소급하여 호환되지 않는 윈도우 xp 같은 새로운 운영체제를 만들어낼 때처럼, 소수의 전문가들이 중대한 시스템상의 변화를 일으켜서 이전의 시스템이 해독할 수 없게 만들어버리는 일이 종종 있다. 게다가 코드에서의 단절은 말하기나 글쓰기의 경우보다 훨씬 더 확실하고 완벽하다.(85)
  • 코드가 고전적인 형이상학에서 낡은 인습을 거의 혹은 전혀 이어받지 않았다 해도 코드에는 자본주의 정치학과 경제학이, 그것들과 연관된 내재된 가정과 저항적인 실천과 헤게모니적인 재기입이 전반적으로 스며들어있다.(86)

코드의 계층

  • 게다가 코드의 역사적 지층은 골치 아픈 형이상학적 유산이 아니라 골치 아픈 깊은 층의 어셈블러 코드와 관련이 있다.(86)
  • 레브 마노비치가 뉴미디어의 언어에서 말하듯이 말하기나 글쓰기에서 통합성은 페이지 위에 나타나는 반면, 계열성은 실재라기보다는 가상으로 존재한다.(88)
  • ‘책 읽는 목소리들’에서 게릿 스튜어트는 문학 언어가 문학적인 이유는 어느 정도는 가상의 단어들 - 소리, 의미, 혹은 페이지상에서 실제로 사용하는 것들의 용례 - 을 동원하여 텍스트의 의미를 확장하고 풍부하게 하는 이형들의 만발하는 소음으로 인쇄된 텍스트를 에워싸는 능력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88)
  • 전자 문학이 사용자에게 복수의 내러티브 경로들을 이끄는 하이퍼텍스트적 선택권을 제공할 때, ‘가상의’ 가능성들을 일으키는 전략은 개개의 단어 수준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가닥, 결과, 해석들이 서로 상호간에 공명하는 내러티브 수준에서도 발생한다.(89)
  • 그런 의미에서 가상의 통합적 시퀀스와 실제의 계열적 데이터베이스 간의 상호작용은 울프람, 프레드킨, 해럴드 모로비츠가 몇 가지 논리적 관계와 이진법적 구분의 단순성에서 높은 수준의 복잡성이 출현한다고 보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의 동역학과 닮은 데가 있다.(89)
  • 하이퍼텍스트 문학 특유의 수많은 선택에서 문학성이 드러나기 때문에 복잡성을 성취하기 위해 코드의 특징을 나타내는 단순한 규칙, 복잡한 행동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계산 체제와 겹치는 부분이 있다.(89)
  • 코드에서는 계층적 성격과 더불어, 숨김과 드러냄의 역학이 말하기와 글쓰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식으로 작동한다.
  • 객체 지향 언어의 한 가지 이점은 객체 안에 코드를 묶어 넣어서 객체를 어느 정도 자율적인 단위로 만들어 그 영역에서 다른 객체에 영향을 주지 않고서도 변경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그럴 만한 이유가 있거나 원할 때 코드를 드러내는 것 또한 중요한 이점이 있다.(90)
  • 이러한 숨김과 드러냄의 실행은 미학적, 예술적 탐색을 위한 비옥한 기반을 제공한다.

이산화(discretization) 그리고 코드와 언어의 상호침투

  • 글쓰기와 말하기와의 관계에서 코드를 이론화하려면, 계층이 수반하는 권한과 제한뿐만 아니라 이러한 계층을 구성하는 실천에 대해서도 이해해야 한다.
  • 아날로그 프로세스는 모든 점에서 이런 디지털화와 상호침투하며 협력한다. 예를 들어, 책을 많이 읽은 독자들은 단어들을 개개의 문자들이 아니라 한눈에 인식되는 패턴으로 본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간의 시너지는 각각 고유한 힘을 활용한다.(93)
  • 디지털화는 정밀한 오류 제어와 깊이 있는 코딩을 허용하는 반면, 아날로그 프로세스는 고도로 진화된 인간의 패턴 프로세싱 능력과 일치한다.
  • 말하기에서 글쓰기로, 코드로의 진보에서 각각의 후발 체제는 예전에는 없는 특징들을 도입한다. 그라마톨로지에서 데리다는 글쓰기를 단지 말하기 패턴의 전사로 이해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알파벳 글쓰기에서 단어들 사이의 여백을 거듭 언급한다. 글쓰기는 말하기를 넘어서므로 이 이전 체제 속에 압축될 수 없다고 그는 주장한다.(94)
  • 이와 비슷하게 코드는 말하기나 글쓰기에서 발생하지 않는 특징들, 즉 이러한 레거시 시스템을 넘어섬으로써 단절을 나타내는 프로세스를 가지고 있다.
  • 절차 언어(포트란, 베이직)는 프로그램을 기계에 명령어로 기능하는 모듈화된 절차들의 흐름으로 개념화하는 반면, 객체 지향 언어들은 자연어를 본떠서 만들어지고 명사나 동사에 상응하는 것을 이용하는 문법을 만들어낸다.
  • C++는 기계의 행동과 인간의 인식 사이에서 번역하는 작업을 수행하는 언어의 구조를 가지고 해결책과 문제를 모두 동등한 용어로 표현할 수 있도록 해줌으로써 개념적인 부담을 줄여준다.
  • 객체는 그것을 하나의 유닛으로 정의하는 제약들을 포함하며 그 유닛에 적합한 행동들을 그 안에 압축해넣었다. 예를 들어 형태의 각각의 객체는 이동되고 삭제되며 다른 크기가 되는 등의 능력을 계승할 수도 있지만 각각의 객체는 이러한 클래스의 특징에 자체의 해석을 부여하기도 한다. (95)
  • 추상화, 캡슐화, 계승은 객체 지향 프로그램을 더 유연하게 설계하기 쉽도록 만드는 전략들이다.
  • 이제 우리는 객체 지향 프로그램들이 기본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해부하는 방식, 즉 그것들이 세계를 조각내는 방식으로 유용성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상당히 기술적인 이러한 논의의 요점은 간단하다. 글쓰기나 말하기에는 컴파일링에 상응할 만한 것이 없으며 하물며 컴파일링과 실행 시간의 구분조차 없다. 아마도 가장 근접한 비유는 말하기의 소리나 그래픽 문자 형태를 인간두뇌의 시냅스로 번역하는 것이겠지만, 이러한 비유를 제시하는 것조차 말하기와 글쓰기의 생산을 인간 이용자에 의한 그것의 해석과 혼동할 위험이 있다. (97)
  • 디지털 기술에서 컴파일링의 중요성은 말하기와 글쓰기에도 이런 점들이 없지는 않지만, 네트워크화되고 프로그램할 수 있는 매체에 고유한 방식으로 작용하는 코드에서 새로운 강조점들이 출현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98)
  • 결과적으로 코드는 인간과 컴퓨터 사이의 언어적 실천이 서로 영향을 주고 상호침투하는 파트너십을 시사한다.
  • 브루스 에켈은 이렇게 쓴다. “컴퓨터 혁명의 기원은 기계에 있었다. 그래서 우리 프로그래밍 언어의 기원은 그 기계와 유사해 보인다. 그러나 컴퓨터는 기계라기보다는 마음을 확장한 도구이며, 다른 종류의 표현 매체이다. 그 결과, 이 도구들은 기계처럼 보이기보다는 우리 마음의 일부처럼, 그리고 글쓰기, 그림, 조각, 애니메이션, 영화 제작과 같은 다른 표현 매체들처럼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98)
  • 고급 컴퓨터 언어가 자연어에 가까워질수록 두 언어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상호매개의 프로세스는 가속화되고 심화된다.
  • 이러한 역학은 컴퓨터가 더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우리가 실재라고 부르는 것을 구성하도록 도와주는 조건, 이데올로기, 가정, 실천들을 점점 더 많이 생산해내는 복잡한 시스템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한다.
  • 거대 기업의 헤게모니적 통제에 저항하고 전복하기 위해 이용할 수 있는 코드를 깊이 있게 이해한다면 거기에서 전략들이 나올 수 있다.(비판적 소프트웨어 연구)
  • 코드와 언어의 병치에 내포되어 있는 것은 인간의 사고와 기계 지능의 상호매개와 이 상호매개가 담고 있는 모든 위험과 가능성, 해방, 복잡성들이다.(100)

에필로그 : 재귀와 창발

  • 연금술이 번성하고 점성술이 국가 과학이었던 시대에 주관적인 것과 객관적인 것을 분리하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전략이 필요했다 할지라도, 그의 전략은 영향을 주면서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다는 전제를 밑에 깔고 과학을 지배, 통제, 통치와 연결시키는 해로운 유산을 남겼다.(363-364)
  • 20세기 중반의 사이버네틱스가 기여한 주요 공헌은 인간과 기계, 지배자와 피지배자, 주체와 객체를 연결하는 피드백 루프들을 예화한 이론들과 실행 가능한 기술들을 구축한 것이다. 하지만 가장 통찰력이 있는 재귀적인 사이버네틱스 학자들조차 미처 보지 못한 것은 재귀성이 자체의 조직을 지속적으로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자기생성 시스템을 창조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되돌아가는 것 이상의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364)
  • 그것은 재귀성이 원이라기보다는 창발적 행위들의 역동적 위계를 가져오는 나선형일 수 있다는 깨달음이다.
  • 이 책의 관심사는 계산 체제를 받아들이는 ‘새로운 종류의 과학’이 세계와 동떨어져 있기보다는 세계 안에 있다는 것 지배자이기보다는 공동 창조자가 된다는 것, 우리가 만드는 것과 우리가 무엇인지를 연결하는 복잡한 역학 관계의 참여자가 된다는 것이 가지는 의미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어떻게 깊게 해줄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였다.(364)
  • 계산 체제가 만들어내는 불확실성, 가능성, 그리고 위험들의 와중에서 시뮬레이션들 - 계산적이고 내러티브적인 - 은 언어와 코드, 전통적 인쇄 매체와 전자 텍스트성, 그리고 주체성과 계산의 얽힘을 탐색하고 이해할 수 있는 강력한 자원으로 기능할 수 있다.(365)
  • 경계를 가로지르는 교통의 흐름이 있다 해서 경계가 중요하지 않거나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니다. 자연어는 코드가 아니다. 살을 가진 피조물은 인공 생명 형태와 질적으로 다른 체현으로 구성되어 있다. 경계는 스며드는 것이면서 동시에 의미도 가지고 있다. 인간과 지능 기계가 점점 더 얽히는 상황에서도 인간은 지능 기계와 다르다.(365)
  • 이러한 권력 투쟁이 어떤 식으로 전개되든 그리고 그 결과가 무엇이든, 주체 / 객체 이분법과 주체가 객체를 지배할 권리가 있다는 함의는 건드려지지 않고 남아 있다. 만일 인간과 지능 기계의 관계를 이 패러다임 안에서만 해석한다면 지배와 통제라는 저변 구조가 계속해서 상호작용의 조건을 결정할 것이다.(366)
  • 이 책은 주체 / 객체 이분법에서 벗어나는 길을 제공하는 다른 종류의 내러티브에 초점을 맞추어왔다.
  • 내가 보기에 지능 기계와 관련된 윤리적 문제를 다루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우리가 그것들과 상호작용할 때 상호성을 인정하는 것, 우리가 그들을 창조할 때 그들도 우리를 창조한다는 복잡한 역학을 인정하는 것이다.
  • 이러한 관점으로 지능 기계를 마주하면서 나는 그것들이 지배할 객체도, 나를 지배하려는 위협하는 주체도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보다 그것들은 내가 체현된 인간 주체로 예화하는 과정과 상호작용하는 과정을 예화하는 체현된 개체들이다. 그것들과 상호작용하는 경험은 나를 엄청나게 변화시켜서 그 만남에서 창발하는 사람은 그 만남을 시작한 그 사람과 정확히 같은 사람이 아니다.(366)
  • 내가 보기에 우리가 해결해야 할 도전적 문제는 이러한 상호관계를 지배의 구조로 기입하기를 거부하고 그 대신 그 상호관계들의 복잡한 상호성을 인정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이해하는 일이다.’우리가 만드는 것’과 ‘우리가 무엇인지’는 공진화한다.(367)
  • 인식은 연속적으로 순환하며 도착하고 각각의 인식은 바로 전에 온 인식 위에 하나씩 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