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과 저널리즘

볼터&그루신과 마노비치를 결합한 미디어 진화 설명 모델

이성규 2019년 04월 18일

마노비치의 소프트웨어 연구와 볼터&그루신의 뉴미디어 계보학을 비교하는 작업은 여러 함의를 제공한다. 두 연구자들은 ‘다이나모북’에서 비롯된 앨런 케이의 이론과 구상을 대상 삼아 매클루언의 부족분을 채우거나 확장하기 위한 이론적 틀을 만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디지털 미디어의 진화 양상을 설명하기 위해 유사한 개념과 프레임워크를 창안했다는 점은 이론적으로 충분히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두 이론의 공통점

두 이론은 이후의 뉴미디어가 이전의 미디어를 내재화하고 포함하는 경향을 설명하기 위해 각각 메타미디엄과 재매개라는 개념을 고안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알려져 있다시피, 매클루언은 기계적 미디어에서 전기적 미디어로 옮아가는 당대의 미디어 흐름을 ‘감각의 확장’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해냈다. 하지만 디지털 미디어의 보편화를 경험하지 못한 그로서는 이후의 달라진 양상을 온전하게 분석할 수 있는 틀을 갖추기가 어려웠다.

먼저 볼터와 그루신은 그들 저작의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디지털 미디어 버전의 ‘미디어의 이해’를 써내려가려는 의도를 분명하게 드러냈다. 각 챕터의 구성도 매클루언의 ‘미디어의 이해’를 유비한 것은 이러한 맥락이라고 해석해볼 수 있다. 일단 두 연구자는 하나의 미디어가 다른 미디어를 포괄하는 현상을 ‘재매개’라는 개념으로 연결시켰다. 그리고 결합의 과정과 방향을 ‘하이퍼매개’와 ‘비매개’의 진동이라고 기술했다.

르네상스 이후 다른 미디어들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디지털 미디어는 비매개와 하이퍼매개 사이를, 즉 투명성과 불투명성 사이를 진동한다. 이러한 진동은 한 미디어가 선행 미디어들이나 다른 동시대적 미디어들을 어떻게 개조하는지를 이해하는 열쇠다.(p.18)

재매개는 디지털 시대에 미디어가 개조되고 변형되는 과정, 그리고 방향을 지시하는데 탁월한 통찰을 제공해줬다. 투명성을 상징되는 비매개, 불투명성으로 상징되는 하이퍼매개를 통해 하새로운 미디어는 이전의 미디어와 상호작용하고, 융합하며 변형된다는 의미다. 이들은 비매개의 대표적인 사례로 가상현실을 들었다. 더 깊은 몰입을 추구하기 위해 디지털 미디어들은 스스로의 미디어적 존재를 지우고 감추려는 욕망을 지속해왔다는 것이다. 반면 하이퍼매개의 대표 사례라고 할 수 있는 월드와이드웹은 링크를 클릭하는 순간 또다른 미디어의 존재를 드러내고, 확인시키려는 속성을 알려주는 중요한 형태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마노비치의 소프트웨어 연구는 디지털 시대에 미디어의 변형 과정을 메타미디엄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미디엄과 미디엄을 포괄하면서 진화하는 형태, 뉴미디어가 이전의 미디엄을 포괄하며 진화하는 형태와 과정으로서 메타미디엄의 재매개라는 개념에 대응된다. 그는 진화의 방향을 설명하기 위해 혼종화라는 경향성을 중요하게 다뤘다. 혼종화는 이전의 미디엄과 미디엄이 결속되는 관계에서 화학적 결합을 의미하는데, 이는 멀티미디어라는 개념과는 차별되는 방향이라고 설명한다. 볼터와 그루신이 진화의 방향으로 설정한 비매개의 형태를 그는 혼종화라는 개념을 가져와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무엇보다 마노비치는 미디어의 분석 대상을 소프트웨어로 미시화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상현실이라는 표상적 기술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이러한 표상을 만들어내는 하부 단위로서 소프트웨어를 관찰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그가 설명하는 미디어의 진화 방향을 소프트웨어적 속성에 기인한 바 크다. 굳이 멀티미디어와 미디어 혼종성을 구분한 것은 미디엄 간의 병렬적 결합을 극복해가는 과정을 더 드러내고 싶어서일 것이다. 그의 구분법을 조금더 구체적으로 들어보면 이렇다.

필자가 보기에 미디어 혼종성은 미디어 세계를 멀티미디어보다 더 근본적으로 재구조화한다. 두 경우 모두에서 다중적인 미디어 유형들의 결합을 보게 된다. 그렇지만 멀티미디어는 각기 다른 미디어들의 자율성을 위협하지 않는다. 멀티미디어는 자신만의 고유한 언어, 즉 미디어 데이터를 조직화하고 이런 데이터에 접근하고 이를 수정하는 방식을 견지한다.(p.220)

하지만 두 연구자들은 미디어 기술의 진화를 설명하는데, 구성주의적 시각을 견지하면서도 기술의 방식에선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볼터&그루신은 ‘계보학‘ 접근을 미디어 진화을 설명하는 중요한 기술법으로 차용하고 있다. 하이퍼매개와 비매개는 디지털 미디어에서 갑자기 나타난 속성이 아니라 선형 원근법의 탄생에서 보듯,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한다. 이는 매클루언이 기술결정론자라는 평가를 받아왔던 한계에서 거리를 두고 싶어서일 것이다. 가상현실을 이해하기 위해 르네상스 시대의 미술 작품 이래로 내려왔던 비매개의 욕망을 수많은 사례를 통해 증명함으로써, 그것은 하나의 역사적 방향이었다는 점을 누차례 강조한다.

마노비치는 자신이 기술결정론으로부터 이격돼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면서도 그의 서술 방식은 다분히 소프트웨어 결정론에 가까운 형태를 보인다. 그의 접근법과 서술에서 시뮬레이션 된 소프트웨어가 어떤 사회적 구성과정을 거쳐 필연적으로 도출됐는지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소프트웨어 자체를 해체함으로써 그것에 녹아든 수많은 미디엄들의 요소들을 파헤치는데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메타미디엄이라는 진화의 방향을 앨런 케이의 논문에서 뽑아냈고, 그것의 논리적 타당성을 끊임없이 검증하고 있지만, 그것의 사회적 구성과정을 기술하는 데는 소홀했다.

요컨대, 두 접근법은 디지털 시대, 소프트웨어로 시뮬레이션된 미디어의 진화 방향을 설명하기 위해 부분적으로 통합되거나 연결될 필요가 있다. 메타미디엄화의 단계마다 이를 촉발한 사회, 문화적 요인을 미시적인 레벨에서 계보학적 접근으로 보완한다면, 지금의 디지털 미디어의 진화 방향을 이해하는데 빼어난 틀을 제공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드시 계보학적 접근을 고수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행위자네트워크이론이나 기술의사회적구성주의를 접맥함으로써 마노비치의 빈틈을 충분히 메우면서 현재의 미디어 변화를 설명해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