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스스터디

마침내 흑자 전환 가디언, 무엇을 배워야 할까

핵심 가치 제시 못하는 기계적 구독 모델은 성과 거두기 쉽지 않다

이성규 2019년 05월 02일

뉴스 : ‘적자지만 훌륭한 언론’의 대명사 가디언이 마침내 흑자 전환 됐습니다. 캐서린 바이너 편집국장이 취임한 이후 시행된 턴어라운드 전략(흑자 전환 전략)이 성과를 냈습니다. 가디언이 5월1일 발표한 기사를 보면, 2018-2019년도 재정 추계 결과 80만 파운드의 흑자를 기록했네요. 우리 돈으로는 12억1300만원 정도 수준입니다. 미미한 숫자에 불과하지만 흑자를 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3년 전만 하더라도 가디언의 적자 규모는 5700만 파운드(864억원)였습니다. 고작 3년 만에 900억원에 가까운 적자 규모를 흑자로 돌려세웠습니다. 대단한 성과죠.

image 출처 : https://www.themediabriefing.com/analysis/what-do-the-guardians-2015-results-tell-us-about-its-ongoing-transformation/

왜 중요하냐면 : 앞서 언급했지만 가디언은 대표적인 적자 언론사였습니다. 스콧 트러스트 재단의 재정적 후원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문을 닫아도 일찍 문을 닫았을 언론사죠. 역으로 스콧 트러스트 재단의 꾸준하고 지속적인 후원이 있었기에 훌륭한 저널리즘을 포기하지 않고 존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자유주의를 전세계 누구나에게 전파한다‘는 스콧 트러스트와 가디언의 미션은 유료 접근장벽(Paywall)을 거부하는 선택으로 이어졌습니다. 뉴욕타임스나 파이낸셜타임스와는 그래서 다릅니다. 유료 장벽을 치지도 않고 그렇다고 인쇄 유가 부수도 많지 않은 가디언이기에 수익성에 대한 우려는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스콧 트러스트 재단의 존재가 얼마나 위대한가를 실감케 하긴 합니다.

그런 가디언이 흑자로 전환됐습니다. 수용자 수익과 광고만으로 말이죠. 수용자 수익과 관련된 공개된 지표를 보면, 30만명의 일회성 지불 수용자를 포함해 65만5000명이 멤버십 및 후원 명목으로 가디언에 돈을 냈다고 합니다. 35만5000명은 월마다 정기적으로 지불하는 독자라는 의미죠, 인쇄 신문 광고는 전체 매출의 8%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이를 종합하면, 디지털 광고와 디지털 등의 수용자 수익으로 흑자를 만들어냈다는 결론을 낼 수 있습니다.

저널리즘 가치를 훼손하지 않고, 그렇다고 유료 접근 장벽을 올리지도 않고 견실한 성장과 턴어라운드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사실 이런 사례는 찾기가 어렵습니다. 이례적인 경우입니다.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죠. 강력한 유료 접근 장벽을 올리지 않고, 그 흔한 Clickbait 콘텐츠를 제작하지 않고, 디지털 중심의 수익 전략에 집중하면서 이 정도의 성과를 내기란 정말 어렵습니다. 그래서 니먼랩의 조슈아 벤턴은 “가디언은 독특한(weird) 신문사다”라고 평합니다.

물론 직원 해고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가디언은 2017년 자발적 퇴직 등을 포함해 영국에서만 250명을 내보냈습니다. 2016년에는 미국 지사 인력을 140명에서 100명으로 감축한 바 있습니다. 이 또한 흑자 전환 전략의 일환이었습니다. 어찌됐든 가디언은 흑자를 만들어보겠다는 3년 계획을 완성했고, 성과로 일궈냈습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 : 저는 지난 4월 구독 모델에 대한 역사를 글로 정리한 적이 있습니다. 최초의 구독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구독과는 개념이 조금은 달랐습니다. 그 글에서도 썼지만 구독은 크라우드펀딩에 가까웠습니다. 확정되지 않은 제품에 대한 일종의 후원 개념으로, 하지만 완성품을 받아볼 수 있다는 기대로 비용을 지불한 것입니다. 확정된 물리적 상품의 거래와는 약간의 거리가 있었습니다. 구독은 이러한 개념 위에서 광고가 등장할 때까지 신문과 언론사의 주된 수익원으로 자리를 잡아갔습니다.

(언론사에 한정된) 광고 수익 중심의 시대가 저물어가면서 다시금 구독이 부상하고 있는데요. 이를 위해 염두에 둬야 할 몇 가지 사항을 니먼랩의 조슈아 벤턴이 잘 정리를 해두었습니다. 그는 돈으로 얽히는 독자와의 관계에 대해 단순한 거래로 이해하면 안된다고 강조를 합니다. 그리고 아래와 같이 강조를 합니다.

  • “난 너희가 지향/대변하는 바를 좋아해. 그래서 난 너희에게 돈을 낼 거야“(I like what you stand for, I give you money)
  • 난 다른 사람들도 니네 기사를 읽게 하고 싶어. 그래서 난 너희에게 돈을 낼 거야“(I want others to be able to read your stories, I give you money)
  • 난 널 지지하는 부류의 한 명이고 싶어. 그래서 난 너에게 돈을 낼 거야“(I want to be the sort of person who supports you, I give you money)

조슈아 벤턴의 견해는 옳습니다. 충분히 동의하는 바이고요. 다만 그의 이야기는 수용자 수익 모델 전반에 대한 문제임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넓은 의미의 구독(수용자 수익 모델)은 예전 토우 센터 보고서가 지적했듯 지금은 기부, 구독, 멤버십으로 분화됐습니다. 벤턴의 주장은 멤버십과 기부에 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좁은 의미의 구독은 상품 거래의 관계라를 점을 잊어선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정리하면, 가디언과 같은 멤버십 모델을 작동시키기 위해서는 벤턴의 이야기에 귀기울어야 합니다. 그들에게 유무형의 가치를 동시에 복합적으로 제시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것에 동의를 얻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지향하는 가치와 상품에 대한 가치 모두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거죠. 분명 어려운 과정입니다. 하지만 이 길이 저널리즘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고 지속할 수 있는 방안이기에 도전할 만한 것이죠.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해당 언론사의 뚜렷한 목표(지향점)와 고유성(차별성)이 결합돼 제시돼야 합니다. 벤턴은 이를 정체성(‘Identity’)으로 설명하는데요. 저는 프로덕트 필드의 두 가지 개념으로 설명하는 편입니다.

먼저 고유성(Uniqueness)는 같은 고객 집단을 타깃으로 할 때 경쟁사와 다른 차별점을 의미합니다. 아시다시피 국내 기성 언론사들은 넓은 범위의 이념적 가치를 제외하면 고유성을 확인하기가 어렵습니다. 진보, 보수 언론이라는 수식어 외에 고객을 공감시킬 수 있는 고유성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지혜롭고 맥락이 풍부한 보수 or 진보 언론’도 아니고, ‘다른 이념도 설득할 수 있는 보수 or 진보 언론’도 아니죠. 그저 대결적 보수, 진보 언론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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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는 미래상과 관련이 깊습니다. 그 언론을 지지하고 비용을 지불하면 어떤 세상에 더 가까워진다는 이상적 지향점을 의미합니다. 지향하는 가치가 실현된 세상의 모습 그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거죠. 언론사라면 적어도 이 정도의 그림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디언은 아시다시피 영국 맨체스터의 ‘피털루 학살’이 도화선이 돼 창간된 신문입니다. 자유주의와 평화라는 지향점과 미션도 여기서 파생된 것입니다. 스콧 트러스트 재단의 스콧이라는 이름은 50여년 간 가디언 에디터로 근무한 CP 스콧에서 따왔죠. 스콧은 이런 말도 남겼죠. 논평은 자유롭게 하지만 팩트는 신성하다(‘Comment is free, but Fact is sacred’). 고유성과 목표가 무척 뚜렷하고, 그 가치와 정신은 지금의 가디언의 지향점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가디언 멤버십에 가입하고 비용을 지불한다는 건 바로 이러한 가치에 동의한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모든 언론사가 가디언 같을 수는 없을 겁니다. 그래서 가디언은 독특한 사례에 속한다는 거죠. 그렇다고 이러한 지향과 가치가 배제된 채로 수용자 수익모델이 작동할 것을 기대하기는 무리입니다. 명확한 거래 관계를 전제로 하는 좁은 의미의 구독은 그나마 작동시킬 순 있을 겁니다. 그만큼 높은 품질의 저널리즘을 제공해줄 수 있을 때 말이죠.

우리가 배워야 할 건 바로 이러한 조건들입니다. 핵심 가치를 제시하지 못하는 기계적 구독 모델, 혹은 수용자들에게 명확한 유익과 경험을 주지 못하는 준비되지 않은 구독은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기가 쉽지 않다는 말씀을 드리려고 하는 겁니다. 이것만 이해하고 있어도 새로운 수용자 기반 수익모델이 어느 정도는 움직일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이 참 어려워서 탈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