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과 저널리즘

CMS 만능론과 이해론, 그 갈림길에서

'내용 지배' 형식으로서 저작/편집 소프트웨어를 명확하게 인지하고 이해해야 한다

이성규 2019년 05월 10일

CMS라는 저작/편집 소프트웨어에 대하여

이정환 대표님의 댓글에 대한 짧은 생각을 정리를 하다가 좀 길어져서 여기에 옮겨 적습니다.

지금은 CMS로 통칭되는 뉴스 저작/편집 소프트웨어(그 전에는 기계)는 저의 부족한 관찰이긴 하지만 3가지 속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지속적으로 변화해왔다고 합니다.

1) 생산 등 속도의 향상 : 예전 윤전기의 역사에 대해 글을 쓸 때도 이 점을 주목했었는데요. 인쇄 기계를 시뮬레이션한 저작/편집 소프트웨어도 속도라는 욕망과 압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속성은 앞선 기계 인쇄 시대 때부터 계승돼왔다는 점을 우리는 확인해볼 수 있는데요. 1847년을 전후해 리차드 호의 활판윤전인쇄기가 등장하고, 마리노니 윤전기가 개발된 사회경제적 맥락은 인쇄 즉 생산 속도 향상을 향한 압력을 제외하고 설명하긴 어렵습니다.

이후 등장한 준자동 조판 기계인 라이노타이프(주조식자기), 모노타이프이나 CTS 등도 이 흐름에서 벗어나진 않았습니다. 라이노타이프의 경우 활자의 제작과 배열(식자), 조판을 동시에 실행할 수 있게 되면서 조판 시간이 크게 단축이 됐죠. CTS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적인 예로 1997년 서울신문이 새 CTS 시스템 도입을 홍보하면서 “시간당 15만부 초고속 인쇄”를 강조한 문구를 제목에 올린 적이 있습니다. 미디어로서 저작/편집 영역은 속도의 향상이 중요한 목표였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image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Typesetting#/media/File:Linotype_CRTronic_360.jpg

2) 표현의 풍부성 : 약물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약물‘(sign)은 특수 문자, 부호, 기호를 통칭하는 인쇄 업계 용어입니다. 인쇄 기계의 시대에 다양한 약물은 구비해두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워낙 방대한 탓이죠. 한글 인쇄의 경우, 영어와 달리 한글 활자뿐 아니라 한자, 기타 부호 등을 모두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가운데 점‘을 예로 들어볼까요? 아래아한글이나 구글 닥스에선 이 문자를 입력하는 게 너무나 쉽고 당연합니다. 하지만 저작/편집 도구가 소프트웨어화 되기 전인 인쇄 기계 시대엔 이조차도 별도의 입력 키를 배치한 뒤, 매번 활자를 주조해야 했습니다. 가운데 점이 이러할진대, 수학 부호 등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죠.

CTS 상반신 입력/조판 영역이 소프트웨어화 하면서 약물 사용은 쉽고 다양해졌고, 신문 인쇄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한때 모 신문사가 CTS 상반신 소프트웨어 도입으로 다양한 괘선 인쇄가 가능해졌다며 고무된 반응을 보였던 적도 있었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괘선은 조판공들이 상당이 공을 들여야 하는 세밀한 작업이었기 때문입니다. 인쇄 업계의 숙원이었던 표현의 풍부함이 소프트웨어화로 상당 부분 해결될 수 있었습니다.

image 서울시스템의 기사 입력기와 약물 표현

CMS는 이러한 전통 위에서 개발되고 진화하고 있습니다. 인쇄 기계 시대엔 기대하지도 못했던 각종 수학 기호들, 그래프, 테이블, 인터렉티브 시각화 표현 등이 모두 가능해지고 있습니다. 저자들의 다양한 표현 욕구를 반영하기 위해 CMS 자체가 표현의 풍성함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진화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기도 합니다.

표현의 풍성함은 소프트웨어의 혼종화라는 경향성을 잘 드러내는 영역이기도 합니다. 뉴스 이외 영역에서 등장하는 새로운 표현 양식들을 뉴스는 수용하려는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압력에 지속적으로 노출이 되게 됩니다. 동영상이 수용자들의 주류적 표현 양식으로 등장하게 되면, 뉴스도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는데, 뉴스가 게시되는 인터페이스에서도 동영상이 적용될 수 있는 형태로 바뀔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이게 됩니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저작/편집 소프트웨어가 이를 다룰 수 있는 형태로 변형돼야 하죠. 외부의 영상을 HTML이나 스크립트 코드를 임베드할 수 있게 되거나 아예 자체 영상 객체를 삽입하고 편집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화하게 됩니다. 텍스트만을 저작/편집할 수 있었던 소프트웨어가 포토샵이나 프리미어의 일부 기능을 수용하게 됨으로써 혼종화한 새로운 소프트웨어로 재탄생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다양한 표현 양식(미디어)의 등장과 풍성하게 표현하려는 저자들의 강력한 압력은 CMS 소프트웨어의 혼종화라는 경향을 지속적으로 밀어붙이게 됩니다. 따라서 CMS는 끊임없는 ‘업그레이드‘의 숙명을 지닐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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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협업의 효율화 : 신문이든 방송이든 하나의 뉴스 저작물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수많은 관계자들 간의 협력을 전제로 합니다. 기계 인쇄 시대를 잠시 들여다볼까요? 기자가 원고지에 작성한 기사는 데스크의 검토를 거쳐서 공무국으로 넘어갑니다. 공무국엔 주조(글자 제작), 채자(글자 선별, 모으기), 식자(글자를 배열하는 조판), 제판 담당자들이 신문 제작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기자의 원고는 워낙 필체가 다양하다 보니, 채자공(문선공)의 수난을 불러왔죠. 날려 쓴 글씨체를 해독해 해당하는 글자를 뽑아내야 했습니다. 만약 그것이 한자라면? 더 골치 아픈 문제였습니다. 이처럼 기계 인쇄 시대만 하더라도 편집국과 공무국 간의 원활한 협업이 이뤄져야만 제 시간이 신문이 발행될 수 있었습니다.

CTS에서 부분 도입된 저작/편집 소프트웨어는 협업의 과정을 보다 원활하게 만들었습니다. 원고를 주고받는 과정이 단축됐고, 원고의 문자를 해독하기 위한 불필요한 논쟁도 사라졌습니다. 원고 자체가 텍스트 파일로 편집부에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물리적 공간도 가까워졌죠. 공무국은 납이라는 유해한 물질이 제작되고 다뤄지는 공간이어서 편집국과는 일정 거리 이격돼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작/편집이 소프트웨어화 하면서 협업의 물리적 거리는 훨씬 가까워질 수 있었습니다.

CMS는 뉴스 제작을 위한 협업을 훨씬 효율적으로 개선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이젠 공간적으로 떨어져있더라도 실시간 커뮤니케이션이 쉬운 방향으로 개발되고 있습니다. 기자-데스크, 데스크-편집부, 편집부-발행/운영의 거리는 공간적 이격에 의존하지 않는 방향으로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심지어 CTS 시절, 노트북에 해당 소프트웨어를 설치하지 않아도, 스마트폰만 있으면 언제든지 협업을 진행할 수 있는 상태로 개선되고 있죠. 이러한 역할을 CMS가 담당하게 됐습니다.

여기서도 혼종화의 경향성을 발견하게 되는데요. CMS 소프트웨어는 챗앱과 같은 채팅 소프트웨어와 뒤섞이게 됩니다. 협업의 효율화에 대한 압력은 단순한 저작/편집 소프트웨어에 메신저 소프트웨어를 결합하는 결과를 낳게 된 것이죠.

현재까지 국내 CMS 논의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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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작/편집 소프트웨어는 기자들에게 인지되지 않는 소프트웨어 유형에 속합니다. 당연히 있어야 할 소프트웨어였고, 자연스럽게 접촉하는 대상이었기 때문입니다. 너무 친숙해서 그 존재나 가치조차 제대로 인식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CMS 소프트웨어는 외부 저작/편집 환경이 변화하거나 그 소프트웨어 자체에 변경이 발생했을 때 갑작스럽게 이물감을 확인하게 되죠. 그래서 참 독특합니다.

국내에서 CMS 소프트웨어에 대한 논의가 편집국이 아닌 다른 부서 위주로 전개된 이유도 이와 관련이 깊습니다. 기자들은 이 소프트웨어에 너무 친숙해진나머지 그것의 가치와 기능, 변화에 대해 관심이 잘 두지 않습니다. 생산 속도의 향상, 표현의 풍부성, 협업의 효율성 등에 대한 욕망이 강렬하지 않는 한 이 소프트웨어의 존재는 그저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겁니다. 기자들의 피드백이 CMS 소프트웨어로 투영되지 않아왔던 전통은 바로 이런 환경에서 연유한 것이라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영상 표현의 확장에 관심이 많은 유튜버가 있다고 가정을 해볼게요. 이들이 주로 사용하는 저작/편집 소프트웨어는 프리미어, 일러스트, 애프터이팩트 정도일 겁니다. 이러한 소프트웨어가 만약 10년 동안 업그레이드 되지 않고, 과거 기능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면 당장 교체를 검토할 겁니다. 자막에 쓸 수 있는 폰트의 다양성이 부족해도 민감하게 반응을 사용자들이기도 하죠.

이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기업들은 이러한 사용자들의 요구에 기민하게 반응합니다. 수시로 버전을 업그레이드 하면서 속도, 표현, 협업의 문제를 해결해 갑니다. 하지만 유독 기자들은 이러한 변화에 둔감합니다. 그저 텍스트만 입력해서 넘기는 분업 체계의 한 고리만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의 한계를 쉽게 인지하지 못하는 거죠.

디지털 환경으로 진입하게 되면 분업 체계에 변동이 발생합니다. 저작과 편집 업무가 통합되면서 저작자가 곧 조판의 업무를 포용하게 됩니다. 신문으로 찍어낼 이유가 없기 때문에, 조판용 소프트웨어의 일부 기능은 CMS 소프트웨어로 녹아들게 되는 거죠. 혼종화한 CMS 소프트웨어에서 표를 그리고 그래프를 담고, 영상을 부착하는 기능이 필요해지게 된 맥락입니다.

레거시 미디어를 보유하고 있는 쪽은 이런 압력이 덜합니다. 여전히 인쇄를 주축으로 삼고 있고, 그 인쇄에 적합한 분업 체계를 고수하기 때문이죠. 기자들은 텍스트로 원고를 넘기는 단계 정도에서만 저작/편집 소프트웨어를 활용하게 됩니다. 이러한 레거시 기반의 분업 체계에 변화가 발생하면 CMS 소프트웨어로 그 압력이 전달되게 됩니다. 이때서야 비로서 소프트웨어로서 CMS가 눈에 보이기 시작하는 겁니다.

CMS 만능론과 CMS 이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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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했듯이, CMS 소프트웨어는 해당 사회, 조직 내에 작용하는 압력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을 띨 수밖에 없습니다. 생산 속도나, 표현의 풍부성, 협업의 효율성을 위한 압박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 CMS 소프트웨어에 뒤섞이는 미디엄의 종류가 달라집니다. 협업 효율성에 대한 압력이 강하지 않은 조직에 메신저 소프트웨어가 CMS 소프트웨어로 스며들 이유는 없습니다. 굳이 다양한 표현물을 제작하고 싶지 않은 언론사에 리니어 편집기가 시뮬레이션된 영상 편집 소프트웨어가 CMS 소프트웨어로 결합될 이유도 없는 거죠. 이런 맥락에서 CMS 만능론은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CMS 소프트웨어는 기계 인쇄 시대부터 내려온 속도와 표현, 협업의 압력들을 담아내는 중요한 미디어라는 사실을 인지할 필요는 있습니다. 매클루언이 말한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의미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매클루언은 미디어의 내용보다 형식을 더 중요한 분석 대상으로 여겼습니다. 이는 미디어라는 형식이 내용을 지배하고 규정짓기 때문입니다. 매클루언은 이렇게 말을 합니다. “매체가 지각방식들과 그리고 목표설정의 틀을 제공하는 모태적인 전제들을 결정짓기 때문이다”라고. 미디어를 인간 감각의 확장으로 봤던 그의 관점이 잘 녹아든 표현이기도 합니다.

다소 기술결정론적으로 이해될 수도 있겠지만, 내용을 지배하는 형식으로서 저작/편집 소프트웨어를 우리는 보다 명확하게 인지하고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언어라는 형식이 사유라는 내용을 한정하는 것처럼, 저작/편집 소프트웨어는 우리의 표현 내용을 한정하고 틀짓습니다. CMS 소프트웨어의 만능론에 빠질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그것의 위상과 존재, 가치에 대해서만큼은 깊이 인지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정말 많이 길어졌는데요. CMS 소프트웨어의 혼종화는 앞으로도 진행될 겁니다. 그리고 기자들은 그것이 틀 지운 조건 안에서 내용을 구성하게 될 겁니다. 혼종화의 압력은 전적으로 기자들과 저작자들, 뉴스 제작에 관련된 수많은 이들에 의해 점점 커져나갈 겁니다. 뉴스 영역 바깥의 기술 및 콘텐츠 영역도 외재적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고요. 이를 CMS 소프트웨어가 흡수하지 못한다면, 익숙해진 기자들의 사유는 그 조건 안에만 머물게 될 것이고, 새로 유입된 기자들은 압력을 토해내다 결국엔 이탈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CMS 소프트웨어의 ‘진화 피드백’이 상시적으로 작동해야 하는 이유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