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미디어문헌

인터뷰의 역사와 저널리즘 기법

이성규 2019년 09월 16일

저널리즘은 진실에 근접하기 위한 실천 행위입니다. 당연히 그것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기술적, 기법적 방법이 필요합니다. 저널리즘은 그러한 기술과 기법이 진화하는 과정이자 역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인터뷰는 기자들에게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진실 접근법입니다.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저널리즘 집단이 고안해낸 훌륭한 발명품이죠. 지금은 일상처럼, 비판적 접근 없이 당연한 듯 활용하는 기법이지만, 하나의 실천방식으로 자리잡힌 건 그리 오래되지 않습니다. 이 글은 저명한 사회학자이자 언론학자인 마이클 셔드슨이 발표한 논문을 토대로 인터뷰 기법이 밟아온 과정과 역사를 요약한 것입니다.

인터뷰 기법의 등장 : 셔드슨의 말을 조금 인용하면 인터뷰 기법은 “미국 저널리즘(americaness)의 발명품”입니다. 저널리즘의 오랜 역사를 개발해온 유럽의 전통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셔드슨은 이렇게 말합니다. “1820년 대까지 미국 저널리즘에서 질문하기는 전혀 정규적인 실천방식은 아니었다”라고 말이죠. 호라스 그릴리가 1859년 몰몬 리더인 브리검 영에 대해 뉴욕트리뷴에 글을 쓸 때까지 이름조차 붙여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논문의 제목처럼 1860년 대에 들어서기 전까지, 보편적인 저널리즘 기법은 아니었던 셈입니다.

인터뷰 기법에 대한 초기 평가 : 유럽 기자들은 전형적인 미국식 취재 기법인 인터뷰에 대해 부정적으로 묘사했습니다. 대표적으로 ‘더 네이션‘의 유럽 스타일 저널리스트였던 고드킨은 “인터뷰라는 방식은 별 볼일 없는 정치인의 햄버그와 또 다른 신문 리포토의 햄버그를 결합시킨 생산물”이라고 조롱했습니다. 이게 1869년의 일입니다. 이를 셔드슨은 ’미국식 야만’이라고 기술했죠.

반면 미국 기자들은 획기적인 발명품이라는 평가를 내리는 상황이었습니다. 1867년 맥쿨라(McCullagh)가 미국 대통령인 앤드류 존슨과 인터뷰를 한 것을 두고, 볼티모어 선의 프란시스 리차드슨 기자는 “흥분되는 사건이며 새로운 형식이 여론화하는 것, 대중화하는 것을 도왔다”라고 했습니다. 대략 1860년대에 들면서 미국 기자들 사이에서 획기적인 보도 포맷으로 호감을 사기 시작했다는 것이죠. 그렇다고 지금처럼 공인의 발언을 직접 인용하는 형식으로 기사를 써내려가진 않았다고 합니다.

이후의 흐름 : 1900년대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영국 기자들도 인터뷰라는 포맷을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프랑스를 위시한 유럽권은 이러한 형식에 부정적인 태도를 견지했습니다. 앵글로 색슨 저널리즘이라고 불릴 만한 흐름이라고 봐야하겠죠.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인터뷰 형식이 유행하던 초기, 노트를 꺼내들어 받아적은 걸 추천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1867년 앤드류 존슨 대통령을 인터뷰 할 때, 매쿨라는 노트에 받아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심지어 기사를 작성할 때까지도 그는 아무 것도 받아 쓰지 않았답니다. 온전히 기억에만 의존했다는 거죠. “잘못 올려준 노트나 연필은 그 즉시 뉴스를 억제해버릴 수도 있다, 리포터들은 그들의 기억력 배양을 배워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의견도 있다고 합니다. 줄리언 랄프 같은 선도적인 기자들도 노트에 받아적는 행위에 반대했을 정도니까요. 그러다 1920년대를 전후해서 서서히 기억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행위가 잘못된 인용으로 나타날 수 있기에 노트를 현명하게 활용할 것을 제안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