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과 저널리즘

기술을 동원한 정부의 폭력과 버스안내양 3만명 실업

최종구 위원장의 '말'은 홍남기 부총리와 국회로 향했어야 했다

이성규 2019년 05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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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3만 명에서 불과 2년 만에 0명으로 사라진 직업이 있다. 버스 뒷문에서 요금을 수납하고 ‘오라이~’ 하며 버스 등벽을 두들기던 버스안내양이다. 동생, 오빠들의 학비를 책임지려 미싱공장 시다 대신 선택했던 초중졸 여성들의 마지막 선택지. 버스 요금 ‘삥땅’을 감시하겠다며 속옷까지 내려 검사받는 노동을 감내해야 했던 극한의 일자리.

그들을 이 사회의 시궁창으로 내몬 건 정부였다. 올림픽을 명분으로 1982년부터 도입된 시민자율버스, 그 버스는 토큰과 요금함, 뒷문 통제기기와 같은 낮은 수준의 자동화 기술만을 갖추고 있었다. 단순하고도 간단한 3가지 기술의 조합은 군사 정부의 폭력적 제도 집행을 등에 업고, ‘서구에 부끄럽지 않은 사회’라는 명분을 달고, 이 사회 가장 아랫단을 받쳐주던 안내양을 향해 잔혹한 폭력을 행사했다. 버스안내양 식솔의 건사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들을 위한 안전망은 검토조차 되지 않았다. 1989년 국회는 자동차운수사업법 33조 안내원 의무 조항을 삭제함으로써 확인사살까지 마쳤다.

그렇게 뿔뿔이 흩어진 안내양들은 술집으로 집창촌으로 다시금 이 사회의 하층을 구성하는 운명으로 내몰렸다(박재용, 2018, p.108). 김호선 감독일 연출한 ‘영자의 전성시대’는 그런 비루한 숙명을 온몸으로 받아들인 버스안내양의 삶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던 작품이다. 지금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종종 소환되지만, 기술을 동원한 정부의 무자비한 폭력을 받아냈던 그 시대의 누이들은 이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바닥으로 숨어들며 스스로의 존재를 지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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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카 이재웅 대표와 최종구 금융위원장 간의 말싸움이 언론을 도배한다. 지금도 여진은 계속된다. 누구의 편을 들고 픈 생각은 없다. 생존을 위해 물러설 곳 없는 택시 기사들의 극단적 선택, 시민의 편익을 제고하기 위한 기술 역량의 개입, 어느 쪽이 덜 절박하다 말하긴 어렵다.

"(혁신 서비스) 지원은 지원대로 해야 하지만, 그로 인해 소외당하고 피해를 보는 계층을 돌보는 일이 정부의 중요한 책무"라는 최 위원장의 발언은 전적으로 옳다. “택시업계가 공유경제 등 혁신사업으로 인한 피해를 직접 크게 입는 계층인데, 이분들은 기존 법과 사회 질서 안에서 자기의 소박한 일자리를 지키겠다는 분들이다. 최소한의 존중과 예의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말도 옳다. 버스안내양의 비극이 정부와 기술의 결탁에 따른 폭력으로 반복되는 시대적 오류가 다시금 반복되지 않아야 때문이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한 가지가 틀렸다. 말의 방향이다. 최 위원장의 '말'은 홍남기 부총리와 국회로 향했어야 했다. 예산 집행권과 입법권이라는 강력한 권력을 지닌 주체들로 향했어야 했다. 갈등의 중재와 협의, 타협의 소명과 의무를 지닌 권력에게 말의 물줄기를 돌렸어야 했다.

1980년대 군사정권이 기술을 동원해 저소득층을 이 사회에서 지워버렸다면, 지금의 정부는 기술에 대한 방관을 통해 저소득층을 지워내려 한다. 플레이어들끼리의 싸움을 뒷짐지고 지켜보기만 한다. 세금의 할당과 제도 설계라는 강력한 자원과 권력을 보유한 정부의 책임 방기는 국가가 행사하는 ‘간접 폭력’이다. 군사정권이 나쁜 깡패였다면 민주정권은 착한 깡패라는 차이 정도일 뿐이다.

이재웅 대표의 언사가 거칠었던 문제는 본질이 아니다. 그의 뉘앙스에서 묻어나는 기술에 대한 확신과 오만한 태도가 핵심이 아니다. 갈등 조정에 나서야 할 주체들이 대안을 둔 논쟁과 싸움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관망하고 훈수만 두고 있다는 것이 이 사건의 본질이다. 지난 3월의 카풀 대타협이 사실상 문건너 간 이후 국회의 움직임은 잠잠하기만 하다. 언론은 ‘공방 보도’ 놀이나 하며 한가한 관찰자로 물러서있다.

권력과 권한을 지닌 정부와 국회의 침묵, 그 꽉 닫힌 입과 의자 위에 본드 바른 듯 붙어있는 그들의 엉덩이가 화를 돋운다. ‘방관의 폭력’도 폭력이다.

image 1978년 10월 20일자 경향신문

참고 문헌

  • 박재용. (2018). 4차 산업혁명이 막막한 당신에게. 뿌리와이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