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과 저널리즘

1970년 이후 CTS에 대한 신문 보도량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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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규 2019년 06월 11일

1971년

[8월] 일간지 공무국장 세미나가 제주에서 개최된다. 이날 세미나에 초대된 발제자는 일본신문협회 공무위원장이었던 대택정씨로 ‘CTS에의 도전’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하게 된다. 국내에서 개인용 컴퓨터가 처음으로 소개된 1981년으로부터 무려 10년 전의 일이다. 이미 일본에서는 CTS가 기술적 흐름으로 자리를 잡았다는 신호임과 동시에, 일본 기술에 의존적이었던 인쇄 기술 문화를 상징하는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1972년

image 동아일보 1972년 4월2일자에 게재된 사진식자기 작업 사진

[9월] 신문 제작 자동화에 대한 논의가 지속적으로 진행되는 상황이었다. 물론 일본 의존적인 모델을 큰 변화가 없었다. 1972년 9월 동아일보가 개최한 세미나의 하위 세션의 제목은 ‘매스미디어의 기술개발과 이에 따른 저널리즘의 전망’이었다. CTS 관련 기술 도입에 선제적이었던 아사히신문의 담당자가 발표를 위해 방한했다. 후지다 마사다까 아사히신문 신문주임기술연구원은 한자의 텔레타이프화, 자동 텔레타이프를 결합해 신문 제작의 자동화에 성공했다는 사례를 소개했다. 이를 기반으로 NELSON이라 이름붙인 “새로운 편집시스템을 개발 중에 있다”라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동아일보 관계자의 발언이 눈길을 끈다. 권오철 당시 동아일보 공무부국장은 “한국매스콤이 건물을 새로 짓고 색체인쇄기(컬러인쇄기)를 도입하는 외양의 변화만 있을 뿐 편집과 제작기술은 수십년 전과 다름없는 답보 상태에 머물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매스콤이라는 신문 제작 기술 기업이 신문 제작 과정의 혁신을 주도하지 못하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한 비판은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또다른 현황을 덧붙이면, 이 당시 모노타이프가 국내 신문사에 도입되는 사례가 중앙일보 등에서 관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1975년

새로운 전기가 시작되는 시점이다. 1975년 3월17일 ‘코리어헤럴드’를 발행하던 대한공론사가 국내 신문으로는 최초로 전자사식기와 옵세트 윤전기를 도입했다. 이 기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대한공론사는 1963년 라이노타이프를 국내에선 처음으로 도입해 신문제작 과정을 기계화한 첫 번째 언론사였다. 어느 언론사들보다 기술 도입에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해당 전자사식기가 어떤 소프트웨어로 구성이 됐는지는 현재로서는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대한공론사는 공기업이다. 1953년 8월13일에 사단법인 형태로 설립됐다. 코리아헤럴드는 1953년 8월15일에 창간된 ‘코리아 리퍼블릭’이 제호를 변경해 발간된 신문이다. 1978년 한국무역협회에 인수됐다가 대농을 거쳐 지금은 ㈜헤럴드의 자산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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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1975년 대한공론사의 CTS 도입 소식 이후 국내에서 CTS에 대한 뉴스는 장기간 등장하지 않았다. 그러다 1981년 경향신문에 광고 한 건이 게재된다. 동경기계제작소 의뢰로 게시된 이 광고는 ‘오프셋 윤전인쇄기’라는 이름으로 소개됐다. ▲로터리식 잉크 펌프 ▲불수강용착 구조의 판동, 프랑켓동 ▲동관피복의 잉크 동 ▲이배경 공통압동부 사색쇄 유닛 ▲시퀀셜 스타트업 시스템 ▲인쇄개시 전 잉크 조정의 프리세트 장치 등을 주요 특성으로 내세웠다.

동경기계제작소는 1948년 일본문 전용 모노타이프를 개발하는 등 앞선 인쇄 기술을 보유한 인쇄 기계 전문기업으로, 이후 국내 윤전기 도입 때 주요 구매 검토 대상으로 자주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1982년

[4월]

@ 동아일보의 기획 기사 '컴퓨터 제작 스크린지면 신문 「제3·제4世代(세대)」로'는 CTS 기술을 획기적인 혁신의 사례로 평가하고 있다. 이때부터 ‘컴퓨터화‘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게 된다. 동아일보가 신문제작의 기술적 변화를 4단계로 정의한 부분은 눈길을 끈다.

  • 1세대 : 사람의 손으로 일일이 활자를 문선하여 아연판을 만들고 이를 인쇄판으로 쓰는 단계
  • 2세대 : 사진식자기를 이용함으로써 아연판을 축출한 단계
  • 3세대 : 컴퓨터로 신문의 편집 제판을 자동화한 단계
  • 4세대 : 컴퓨터가 편집한 내용을 컴퓨터에 입력시켰다가 안방에 앉아 원하는 뉴스를 골라 TV 스크린에 비춰보거나 혹은 스크린에 비친 내용을 인쇄해서 볼 수 있는 단계

1982년 당시 국내 신문사들은 다수가 2세대로 넘어가는 중이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사진식자기는 기계에 의한 준 자동화 단계로 볼 수 있다. 소프트웨어의 개입은 동아일보의 단계론으로 보면 3단계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1982년은 소프트웨어화에 대한 인식이 점차 확대되면서 제작의 자동화에 대한 열망이 커져가던 시점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8월] 신문 노동 시장에도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동아일보가 사원 채용 공고에 ‘CTS 요원’을 별도로 분류해 모집했다.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국내 언론사 가운데 빠른 행보라고 볼 수 있다. CTS 요원의 자격 조건은 ‘4년제 대학 기계공학과 출신’으로만 한정했다. CTS의 제어를 위해 기계공학에 대한 지식이 필수적이었음을 유추해볼 수 있다.

image 언제 어느 지면에 게재된 광고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1983년

[2월] 이진의 문공부장관의 관훈클럽 토론회 발언은, 정부가 신문 기술의 변화를 언론사에 주문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 장관은 당시 토론회에서 “한국신문도 납을 사용하는 제작 과정을 탈피하는 CTS 시스팀 도입을 연구할 시기가 됐다”고 말했다. 대다수 신문사들이 납활자를 기반으로 하는 제작공정에서 탈피하지 못함으로써 경쟁력이 뒤처진다는 의미로도 해석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4월] 동아일보의 ‘안방에 앉아 원하는 뉴스만 골라 읽는다’는 기사는 1982년 기획기사의 내용이 거의 흡사하다. 기술의 변화에 따른 신문의 미래를 타진하고 전망을 제시한다는 점에서도 큰 차이가 없다. 각 가정에 설치된 터미널로 원하는 기사를 검색해서 보고, 인쇄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전해와 달라지지 않았다.

image 동아일보 기획기사에 게시된 일본 아사히신문 신문 제작과정

1984년

4월 : 신문 윤전부장 세미나에 ‘신문CTS와 인쇄’라는 주제가 다뤄졌다. 채광국 서울신문 전산실장이 발표를 맡았다. CTS에 대한 신문사 윤전부의 관심이 지속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같은 달 열린 교열기자 세미나에서도 ‘신문의 CTS 제작에 따른 교열기자의 새지평’이라는 주제가 등장하는데, 당시의 CTS 기술이 언론 노동에 가져올 변화를 예측하는데 다들 관심이 컸던 것으로 풀이 된다.

이 시기 경향신문의 사설은 특별하다. 신문의 날을 맞아 게시된 이 사설은 당시 신문산업에 팽배해가고 있는 위기감을 읽어낼 수 있다. 사설의 첫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오늘날의 신문은 보도면에서 전파 매체에 밀리고 있다는 말을 흔히 듣는다‘. 방송과 라디오의 확산이 신문사가 누려왔던 영향력을 서서히 위협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 결과 ’호외‘의 반응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는 사례도 언급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신문이 CTS 시스템 도입으로 물적 현대화에만 치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기술혁신 담론이 확대되면서 신문의 질이 하락하고 있다는 우려를 확인해볼 수 있다.

매일경제도 사설로 이러한 조류를 거론하고 있다. CTS 등 기술혁신으로 가로쓰기, 활자키우기, 단수 조정 등이 원활해졌다는 변화상도 확인할 수 있다.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 개발이 중요하다는 언급도 관심을 끈다. 이처럼 사설이 CTS 등 기술혁신을 언급하게 된 배경은 1984년 신문의 날 표어가 ‘현대화를 다지는 언론’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10월 : 서울신문의 CTS 도입을 주도한 채광국 전산실장이 ‘한국신문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신문산업 내 기술 분야 인사가 한국신문상 수상자로 등장한 특별한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추가 자료

1985년

[2월]

@ 동아일보의 ‘생활혁명 다가온다 – 인쇄문화의 꽃 CTS’에는 두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아시아권에서는 니혼게이자이신문이 1978년 처음으로 CTS로 전환했다는 사실과, 국내에서는 1982년 동아출판사가 편집, 교정 부분에 CTS 시스템을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사실. 당시 동아출판사는 이 시스템 도입에 3억5000만원을 투자했다고 이 기사는 적고 있다.

대략 이 시기를 전후해서 CTS는 Cold Type System(뜨거운 아연판의 제거)이 아니라 컴퓨터조판시스템(Computerized Typesetting System)으로 번역되고 있다. 동아출판사가 1차적으로 컴퓨터화, 정확하게는 소프트웨어화를 진행한 공정이 편집, 교정이라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시의 소프트웨어가 이 부분에서 우선적으로 개발됐음을 유추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5월]

@ 동아일보의 장원호 미주리대 교수 인터뷰는 당시 한국과 미국의 CTS 현황을 비교해볼 수 있는 중요한 근거자료라다. 당시 미국의 신문사들은 99%가 대분의 신문 제작 공정을 소프트웨어화 했지만 국내에서는 1~2군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이 기사를 통해 알 수 있다. 특히 미국 신문사들은 기사작성, 송고, 편집문선, 조판, 교열 전과정을 컴퓨터화했다고 장 교수는 말하고 있다. CTS에 대한 국내 신문사들의 인식에 대해 장 교수는 “언론 경영자나 종사자들이 컴퓨터 제작에 대한 사전 준비가 돼 있지 않은 것 같다”고 꼬집기도 했다.

8월 : 제17회 한국기자상 신문편집 부문 수상자에 채광국 전산제작국장이 이끄는 서울신문 편집부가 ‘CTS 편집체제 개발’을 근거로 선정했다.

11월 : 한국정보과학회가 주최한 ‘정보산업 리뷰 심포지엄’은 정보기술을 수용하려는 당시 움직임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행사였다. 당시 정부는 ‘국가기간전산망’ 구축 계획을 발표하고, 데이터통신 행정전산사업단을 꾸렸는데, 이동욱 단장이 해당 행사에서 발표를 맡기도 했다. 1984년 한국신문상을 수상했던 채광국 서울신문 전산제작국장은 이날 심포지엄에서 이미 편집, 조판 과정이 소프트웨어화 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채 국장은 “기사나 광고 처리 시간이 빨라졌으며 조판처리의 신뢰성도 높아졌다. 제작시간이 활판 때에 비해 1시간이나 단축됐다”며 편집, 조판 작업의 소프트웨어화에 따른 효과를 설명했다.

1986년

[3월] 서울시스템(당시 표기 ‘서울씨스템’, 대표 이웅근)이 컴퓨터 식자조판시스템을 자체 개발해 화제를 모았다. 이웅근은 한글 서체의 소프트웨어화에 기여한 인물로 서울시스템을 통해 조판의 소프트웨어화를 주도한 대표적인 기업인이다. 이 당시만 하더라도 다수의 조판 소프트웨어 및 하드웨어는 해외 수입이 주를 이뤘다. 서울시스템은 당시 자체 개발한 조판 소프트웨어와 함께 하드웨어, 레이저 프린터를 묶어 상품화했다. (검색어 : 이웅근)

image 서울시스템이 개발한 컴퓨터 식자조판시스템

[11월] 동아문화센터와 과학동아는 일본첨단기술견학단을 구성해 이공대생 5명을 일본으로 파견했다. 견학 대상에 일본 아사히신문이 포함돼 있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아사히신문의 CTS를 첨단 기술로 상정하고 이를 둘러보게 했다는 사실은, 당시 국내 언론사가 일본의 CTS 기술의 위상을 어느 정도로 평가하고 있었는지 짐작케 한다. 일본 CTS 기술에 대한 한국 언론사의 선망이 견학단 코스 선정에 잘 드러나고 있다.

1987년

[12월] 경향신문은 전석호의 신간 ‘정보사회와 언론’을 소개하면서 ‘CTS와 데이터베이스’를 언급했다.

image 1987년 8월10일자 매일경제에 게재된 서울시스템의 '세종' 시리즈 광고

1988년

[9월] 한겨레신문은 지령 100호를 맞아 좌담회 기사를 게재했는데 여기서 언급된 내적 기술 평가에 대한 발언들은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특히 전산제작 체제에 대한 좌담 내용을 보면 당시 한겨레신문이 보유하고 있는 편집 관련 소프트웨어 및 하드웨어는 “30대의 워드프로세서, 1기가바이트의 기억용량을 갖춘 편집기 8대, 3대의 고속출력기”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워드프로세서의 수량을 ‘대’라고 표현한 것으로 볼 때, 당시 워드프로세서는 하드웨어 일체형에 가까웠을 것으로 추정이 된다. 아울러 “국내 처음인 전면 CTS 편집 체제는 우리나라 신문제작을 한세대 전진시킨 것”이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아울러 당시 소프트웨어 중심의 제작 기반을 두고 “창간호 제작이 시작되던 날 새벽에 며칠 밤을 새운 전산제작부장이 계속 말썽을 부리는 출력기를 붙잡고 울음을 터뜨렸던 일화도 이제는 역사속으로 묻히겠지요”라고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image 출처 :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287983.html

[10월] CTS 소프트웨어화에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됐다. 엘렉스컴퓨터(이후 사명을 인큐브테크로 변경한다)가 애플과 쿽(Quark)사의 협조를 받아 ‘X프레스‘라는 소프트웨어를 한글화해 출시한 것이다. 쿽사의 X프레스는 인디자인이 보편화하기 전까지 거의 모든 조판 소프트웨어를 대체하게 된다. 기존 전산사식기와의 관계는 여기서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당시 매일경제는 “X프레스는 조판은 물론, 편집과 레이아웃을 자동으로 처리, 기존 사진식자작업을 완전 전산화한 시스팀”이라고 적고 있다. 당시 이 소프트웨어가 구동하기 위해 엘렉스컴퓨터는 “매킨토시 II와 1200, 2400DPI 고해상도 레이저프린터, X프레스 소프트웨어 등”으로 묶어 판매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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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인쇄업를 대상으로 한 전자출판 소프트웨어와 CTS가 서서히 분화하는 징후를 이때부터 발견할 수 있다. 11월23일자 매일경제 기사는 ‘전자출판 시스팀 개발 경쟁, 신문제작 등 활용 확산 업계 군침‘이라는 제목으로 당시의 경쟁 상황을 소개하고 있다. 이때만 하더라도 신문사의 CTS는 주로 일본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수입하는 경향을 주를 이뤘다. 하지만 경쟁구도가 첨예해지면서 기존 DTP 관련 기업들이 신문 CTS 시장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 기존 전산식자 및 DTP : 서울시스템, 한국컴퓨그라피, 한국컴퓨터기술
  • 신규 기업 : 현대전자, 엘렉스컴퓨터, 쌍용컴퓨터

무엇보다 서울시스템은 자체 개발한 전산식자시스템 ‘세종500과 800, 1500’을 바탕으로 CTS 시장에 도전을 하게 된다. 시장 1위였던 한국컴퓨그라피는 10여 종의 한글서체를 바탕으로 시장의 우위를 유지하겠다는 전략을 취했다. 한국컴퓨터기술은 DTP용 소프트웨어인 ‘슈퍼라이터’를 신문사용으로 변형해 확장하고 있었다.

[12월] 매일경제의 12월10일자 기사 ‘88 새풍속도 – 전자 인쇄혁명’은 인쇄기술에서 소프트웨어의 관여가 대략 언제쯤부터 시작됐는지를 유추할 수 있는 문구가 등장한다. “전자출판시스팀이 국내에 상륙한 것은 2~3년 전이다”라며 대략 1985년을 전후해 도입이 시작됐음을 알 수 있다. 주로 작은 규모의 인쇄시장을 시작으로 신문사와 같은 대규모의 인쇄 미디어로 영역을 확장해나간 것으로 보인다.

1988년 서울올림픽은 인쇄의 소프트웨어화에 중요한 기점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인쇄 물량이 증가하면서 신속한 인쇄기술의 도입이 절박했기 때문이다. 기사는 “올림픽 등으로 인쇄의 홍수가 일자 올해 들어 급격히 확산, 이제 웬만한 잡지나 정기간행물은 컴퓨터로 제작하고 있다”고 적고 있다. 특히 전자사진식자기의 발명, 색분해 제작기술, 새인쇄 재료물과 인쇄 방법 등이 하드웨어의 기술 향상과 맞물리면서 이러한 소프트웨어화가 진전을 이룬 것으로 이 기사는 분석하고 있다.

1989년

[1월] 한겨레의 지역신문 창간 기획 시리즈는 87년 6월항쟁 이후 지역언론의 변화 양상을 짚고 있다. 특히 6월 항쟁 이후 언론자유화의 흐름을 타고, 지역언론사 창간이 봇물 터지듯 이어지는 상황을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이 당시 CTS는 지역신문 창간의 최소 기술 요건으로 자리를 잡았음을 알 수 있다.

[2월] 소프트웨어 중심의 CTS가 둘러싸인 당시의 기술적 환경을 매일경제가 짚었다. ‘정보의 맥을 짚는다’는 제목의 매일경제 기사는 OA(사무자동화)라는 용어가 보편화하면서, 다수의 사무작업들이 워드프로세서와 스프레드시트, 데이터베이스와 같은 소프트웨어로 처리되는 풍경을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특히 출판의 소프트웨어화도 함께 거론하는데, 사보 제작 등에 이러한 소프트웨어들이 활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다. 당시 사보제작에 워드프로세서 등이 활용되긴 했지만, 레이아웃 등의 제한으로 DTP 전용 소프트웨어의 도입이 필요했다는 소식도 담고 있다. 개인용 컴퓨터의 도입과 활성화가 서서히 시작되고 있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5월] 삼성전자는 같은 달 25일 ‘제1회 정보통신 관련 세미나’를 개최했는데, 주제 가운데 하나가 ‘신문자동조판시스팀’(CTS)이었다. CTS를 자동화 기술의 하나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추론해볼 수 있다.

[6월] 동아일보의 짧은 단신 기사는 CTS 기술 도입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을 가늠하는데 중요한 자료로서 평가할 수 있다. 당시 동아일보는 ‘대전일보 분규 타결’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는데 합의한 내용에는 “CTS 도입에 따른 인원 불감축”이 포함돼있었다. 언론자유화를 타고 지역신문이 연이어 창간하고 있는 시점에, CTS 도입은 일종의 붐을 이뤘고, 이 과정에서 몇몇 언론 노동자들이 고용의 불안을 겪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7월] 서울언론재단은 1989년 7월 7일 ‘신문 전산제작(CTS)에 관한 세미나’를 개최하는데, 초빙된 인물의 구성이 흥미롭다. 일본 중심의 기술 수용 방식에 서서히 미국 기술 수용이 뒤섞이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 장원호 미국 미주리대 교수
  • 오가자기 준페이 요미우리신문 편집국 국차장
  • 이와사기 히로무 쥬고쿠신문 제작국 국차장

7월 26일 매일경제에 게재된 ‘전자 출판시스템 인쇄 매체의 혁명’ 기사는 “전자출판시스팀 시대가 온 것”이라고 선언한다. 늘어나는 관련 기업들, 시장의 성장 등이 이러한 선언을 가능케한 것으로 보인다. 이 기사는 당시 전자 출판시스템의 강점으로 “사진보다 더 선명한 그림을 무한대의 색상으로 그려내고 출판 인쇄보다 보기 좋은 글자를 다양한 모양과 크기로 나타내준다”고 설명한다. 구현할 수 있는 색상의 확장, 폰트의 다양화 등이 출판시스템의 소프트웨어화로 가능해졌다는 뜻이다.

또한 매일경제는 이 시스템의 시작을 1985년 애플의 ‘페이지메이커’ 출시로 봤다. 페이지메이커의 등장으로 문자, 그래픽, 그림이 포함된 문서를 처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국내에 보급되던 워드프로세서로는 이러한 기능을 충분히 구현하기 어려웠음을 읽어낼 수 있는 대목이다.

하드웨어와의 관계도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 기사는 “퍼스컴보다 월등한 워크스테이션이 활용돼 컬러그라픽 기능까지 동원되는 추세”라고 적고 있다. 개인용 컴퓨터 수준으로 구현할 수 없었던 색상의 조합과 처리 등이 한층 업그레이드 된 하드웨어의 등장으로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또한 전자출판시스템을 3단계로 분류하면서 각각의 역할을 아래와 같이 분류했다.

  • 입력시스템 : 워드프로세서나 전용에디터, 스캐너를 이용한 그래픽, 사진입력장치
  • 편집, 조판시스템 : 출판물의 효과를 높이기 위한 레이아웃 기능 장치다
  • 출력 시스템 : 고해상도의 레이저 프린터

하지만 여전히 풀지 못한 몇 가지 숙제가 존재했는데, 한글서체의 부족, 핵심 하드웨어의 해외 의존 등이 그것이다. “한글코드 체계의 문제점 해결과 폰트의 자체 개발”은 무엇보다 시급했다고 이 기사를 적고 있다.

image 매일경제의 MEET 서비스

7월 26일자 매일경제의 ‘언론 뉴미디어 산업 정보대중화 꽃 피운다’는 언론 산업을 둘러싼 기술의 정보화를 3개 분야로 나눠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 전자 신문 : 매일경제는 당시 한국 전자신문 기술이 미국에 비해 20년, 일본에 비해 10년 뒤처졌다고 서술한다. 매일경제의 MEET, 한국경제신문의 KETEL은 국내 전자신문 서비스의 초기 형태로 설명한다. 이외 중앙일보 등이 관련 서비스를 준비 중이라고 적고 있다. 매일경제의 MEET는 일본 닛케이 텔레콤의 정보도 함께 제공한다고 밝혔다. PC 통신판 신문 서비스다. 이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한 하드웨어 조건으로 16비트 IBM 호환 XT, AT 기종을 추천하고 있으며, 애플 컴퓨터에서도 사용이 가능하다고 적고 있다. 또한 ‘MEET | AI’라는 전용 단말기도 개발해 출시했다고 설명했다.(가격은 대당 20만원) 무엇보다 이 단말기를 활용하면 매일경제의 MEET뿐 아니라 천리안, 국내BBS, 해외BBS 등도 접근 가능하다고 한다.

  • 비디오텍스 : 매일경제는 한국데이터통신과 비디오텍스 시스템 운영에 관한 공급계약을 체결해 이 서비스를 개시했다. 주로 공공장소 및 사업장을 대상으로 시스템을 공급했다고 한다. 이 기사는 “한국경제신문과 조선일보의 뉴스 속보판 등이 일종의 비디오텍스 정보의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매일경제는 “조만간 가정용 TV에 연결, 광범위한 서비스를 할 계획”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 전망/문제점 : “언론의 뉴미디어 산업은 단편적인 예로서 CTS의 제작시스팀의 설비 투자가 말해주듯이 엄청난 비용의 투자 없이는 하루 아침에 달성되기 어려운 일이다”라며 “비근한 예로 일본경제신문사의 뉴미디어 사업은 20년이 지난 오늘에야 손익의 분기점을 계산한다는 말이 장기적인 투자의 뒷받침이 절실하다는 것을 실감나게 한다”고 적고 있다.

[8월] 매일경제는 이 시기 전자출판시스템의 확산에 주목했다. 1989년 당해 전자출판시스템의 시장 규모가 600억원에 달할 만큼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매일경제가 주요 사업자들은 다음과 같다. 1988년 보도와 비교할 때 신명시스템이 추가됐다.

  • 기존 전산식자전문업체 : 한국컴퓨그래피, 서울시스템, 정주기기, 한국컴퓨터기술, 신명시스템
  • 컴퓨터 하드웨어 업체 : 현대전자, 쌍용컴퓨터, 엘렉스컴퓨터

이 기사에서는 당시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와 국내 신문사 및 출판사 간 관계를 파악해볼 수도 있다. 한국컴퓨그래피는 자체 개발한 한글, 한자 서체를 한겨레에 공급했다. 서울시스템은 스피드I 2000이라는 전산식자시스템을 자체 개발해 80여 출판 업계에 납품했다. 한국컴퓨터기술은 ASP300, ASP600 콘트롤러를 개발한 것으로 확인됐다.

동아일보는 당시 자매지인 과학동아의 시리즈물을 소개하면서 “과학동아 8월호는 컴퓨터가 이룩한 출판 혁명인 전자 출판을 특집으로 다루고 이를 활용, 신문의 조판까지 해내는 CTS 시스템을 소개했다”고 적었다.

경향신문은 같은 달 10일 신우식 언론연구원장 인터뷰 기사를 게재하면서 “CTS 도입 추진 등 언론계가 기술적, 외형적으로는 발전을 거듭했지만 언론인의 자질인 내용, 질적인 면에서의 발전은 더딘 편”이라는 신 원장의 발언을 인용했다. 기술의 속도와 언론인의 자질 사이에 편차가 발생하고 있음을 짐작케한다.

더 참고할 문헌들

1990년

image 동아일보 단말기로 읽는 전자신문 확산 기사에 첨부된 사진 자료. 본체가 없는 것을 보면 일반 PC가 아니라 전용 단말기임을 알 수 있다

[2월] 매일경제는 '매일경제신문 활자가 커집니다'라는 사고를 2월23일자로 내보냈다. 이 기사에서 CTS와 기계식 조판이 병존하고 있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활자 크기 확대를 발표하면서 “현재 일부 지면의 전산제작(CTS) 문자도 새 활자와 동일하게 확대됩니다”라고 설명하고 있어서다. 이 당시까지도 매일경제는 20면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4월] 동아일보는 창간 7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신문제작의 완전 CTS화를 내세웠다. 4월1일 게시된 이 기사는 “92년 신사옥 준공과 함께 신문제작의 전공정을 전산화할 계획”이라는 약속이 담겨있다.

[8월] ISDN과 CTS. 1990년 국내 미디어 환경의 변화를 설명하는데 빠져서는 안되는 두 가지 기술이 소개된다. 경향신문은 8월1일 ‘높은 제3의물결 2000년대 생활 이렇게 달라진다’ 기사를 통해 2000년대 뉴스 소비의 달라진 풍경을 가상 시나리오 형태로 제시했다. 더 이상 신문이 배달되지 않는 시대, 컴퓨터 ‘단말기’ 앞에서 필요한 뉴스를 선택해 소비하는 김씨의 일상을 그린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이러한 시대가 ISDN이라는 네트워크 기술의 발전으로 도래하게 됐다고 강조한다.

ISDN은 전화용 음성망, 데이터망, 팩스망 등 분리된 통신망을 하나로 통합시킨 네트워크다. 별도로 존재하든 망을 통합함으로써 단말기를 통해 다양한 정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뉴스도 이 망을 통해 전달할 수 있게 되면서, 2000년대 뉴스 소비 패턴이 변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 기사는 내다보고 있다. 이 기사는 당시 신문사가 TV나 라디오에 비해 속보성이 떨어지는 문제에 봉착해있었다고 토로한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ISDN을 주목했고, CTS와 연계될 경우 사건 발생 시점과 독자 열독 사이의 시차를 빠르게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한 “신문을 읽으면서 느끼는 독자의 의견을 컴퓨터를 통해 수렴해 신문제작에 반영할 수 있는 장점도 갖고 있다”며 새로운 피드백 루프의 구성을 상상하기도 했다.

‘테크노 저널리스트‘라는 표현도 등장하는데, “손가락으로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 각종 정보 유통경로를 더듬어 그때그때 흐르는 정보를 체크하는”로 정의했다.

[11월] ‘전자신문‘이라는 용어가 보편화하고 있는 흐름을 확인할 수 있다. 동아일보는 11월7일자 기사 ’단말기로 읽는 뉴스 – 전자신문 급속 확산‘에서 한국경제를 필두로 매일경제, 국제신문 등이 잇달아 전자신문 발행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전자신문은 일종의 전화망을 이용해 PC 통신처럼 서비스되는 온라인 뉴스 서비스다. 전자신문은 CTS와 관련이 깊다. 기사에서도 설명하고 있듯, “전자조판시스템(CTS)이 완성되지 않아 서비스 시간이 다소 느려지기도”도 했다. 마감이 완료된 기사가 데이터베이스로 전송되고, 이곳에 저장된 기사가 통신망을 통해 서비스되는 구조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12월] ‘한국전자출판정보학회’가 12월 10일 정식으로 창립됐다. 첫 번째 세미나 주제로 ‘신문과 전자출판의 전산화’, ‘전자신문과 CTS’를 잡았다.

1991년

[1월] CTS의 시장 확대는 삼성전자까지 불러냈다. 삼성전자는 1월, ‘퍼블리스‘라는 CTS용 시스템을 개발해 공급을 시작했다. 유닉스를 OS 갖추고 있는 이 소프트웨어 및 하드웨어 패키지는 신문사와 대형출판업체를 타깃 고객으로 상정했다고 매일경제는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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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한겨레신문의 ‘입력-조판’ 인력 채용 공고문은 당시 소프트웨어 조판 노동자에게 필요한 조건이 무엇인지 짐작케한다. 당시 채용 공고문을 보면 “한글타자 3급 실력 이상인 사람, 66년 1월1일 이후 출생한 사람‘으로 한글타자 실력을 갖추면 지원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었다. 모집인원도 10명 안팎으로 소프트웨어 조판의 필요 인력이 적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기사 입력을 기자가 아닌 조판 전문 인력에게 맡기고 있었다는 점도 확인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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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CTS의 활성화는 새로운 사업자의 등장을 낳았다. 매일경제는 7월22일자 보도를 통해 의영전산(대표 김명의)이라는 기업이 의영기기를 회사를 설립해 CTS 시장에 뛰어들었다고 보도했다. 특정 기업의 참여 확대라는 신호뿐 아니라 당시 CTS 상품의 구성을 이 기사를 통해 엿볼 수 있다.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어떤 방식으로 결합돼 있는지 개략적으로나마 유추할 수 있다. 의영기기가 내놓은 CTS 상품 EY-600 구성을 보면 다음과 같다.

  • 입력기 : 2만 단어의 한자 지원, 6000여자의 약물 지원
  • 편집기 : Dual 20(20인치), Dual F(풀페이지용), Dual P(15인치용)
  • 레이저빔프린터 : 600dpi
  • 스캐너 : 300dpi
  • 소프트웨어 ‘한PAGE/PRO’ : 마우스로 편집, 수정 편집 및 출력 가능 10가지 글자체

[10월] 공무국장 세미나와 함께 조사기자협회도 제작 공정의 소프트웨어화에 따른 역할 재정립에 적극 나서는 흐름이다. 한국조사기자협회는 10월9일 ‘신문제작 CTS에 따른 기사 데이터베이스 구축과 전망’을 세미나 주제 중 하나로 삼았다. 당시 발표자는 아사히신문의 농택동언씨 뉴미디어 본부장.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하기 어렵지만, 기사 데이터베이스 구축이 전자신문 발행 등에 필수적인 요소라는 정보가 오갔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여전히 일본 쪽 인사를 연사로 삼는 흐름은 크게 줄어들지는 않았다.

[11월] 매일경제는 니혼게이자이신문의 종합정보시스템인 NEEDS를 제휴협약을 맺고 국내에도 서비스한다고 11월22일 발표했다. 당시 니혼게이자이신문의 데이터베이스는 세계 3대 정보시스템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고 소개했다.

[12월] 한겨레신문은 1991년 격동이라 평할 수 있는 한해를 되돌아보는 기획 기사 ‘면은 늘고 상업주의 판치고’를 내보냈다. 이 시기를 전후해 미디어를 둘러싼 기술적, 정치적, 문화적 변화가 격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신문의 형식적 측면에서 “제목과 사진의 무분별한 키우기 경쟁과 선정주의, 화려한 색상의 도입과 함께 증면경쟁의 대표적 특성이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무한경쟁이 “신문제작의 CTS화, 전산신문의 개시, 서울-지방 동시 인쇄, 조석간화의 움직임으로 더욱 과열될 조짐”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CTS화가 증면경쟁에 동원돼 뉴스의 질적 하락을 불러온다는 경고 메시지였다.

1992년

[3월]

@ 방송과 신문의 네트워크 연결이 시도됐다. 1992년은 14대 총선이 실시된 해로, 방송과 신문 기술이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전기가 마련되곤 한다. 당시 MBC는 선거방송에 쌍용VAN을 활용함으로써, 선거 관련 정보를 전국 네트워크로 내보낼 수 있는 기술적 초석을 마련했다. 이를 보도한 동아일보 3월26일자 신문은 “투개표 전산 데이터를 동아, 한국, 중앙 등 일간신문 CTS와 직접 연결하는 등 첨단컴퓨터를 동원한 선거 실황 중계방송이 됐다고 평했다”고 적었다. 소프트웨어화 한 CTS로 방송과의 연결성이 높아졌음을 유추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 MBC는 3월4일 정보데이트라는 코너에서 ‘새로운 신문 인쇄기법 – CTS’ 프로그램을 오후 8시에 방영했다.

[4월]

@ 제호를 물려받은 일요신문이 전면 CTS화를 창간호를 발행했다.

@ 교수신문이 창간하면서 전면 CTS를 도입했다는 사실을 경향신문이 보도했다. 당시 CTS는 새로운 신문 발간의 전제 조건이 됐음을 암시한다.

@ 충북 청주에서 창간된 동양신문이 CTS 풀페이지네이션 제작방식을 도입해 50여명의 기자가 오퍼레이터 기능에서 편집, 출력까지 도맡는 편집국을 실현했다고 경향신문 4월11일자 신문이 소개했다. 기자 조판제라는 새로운 편집국 노동문화가 싹트고 있는 흔적이라고 볼 수 있다.

[5월]

@ 경향신문 ‘신문기사 정보은행 일반에 개방’ 기사는 한국언론연구원의 KINDS 서비스를 소개하고 있다. 이 기사는 KINDS 구축에 각 신문사의 CTS 구축이 기여했다는 사실을 짐작해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 기사는 “한국언론연구원 부설 신문기사정보은행이 각 언론사의 CTS화 진전과 함께 각광을 받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무엇보다 이 서비스가 등장하기 전과 후의 뉴스룸 변화를 엿볼 수 있어 의미가 깊다. 이 기사는 이 서비스의 등장으로 변화하게 될 업무상을 다음과 같이 예측했다.

“이에 따라 수록됐던 어떤 기사 내용을 찾기 위해 지금까지 신문사 조사부에 가서 스크랩을 뒤져보던 방식은 멀잖아 없어지고 대신 단말기로 이 은행코드와 소속 회원사의 비밀번호를 부른 뒤, 원하는 기사 번호만 치게 되면 책상 앞에서도 모든 기사 내용을 받을 수 있게 된다.”

@ 동아일보 노조의 파업에 CTS 투자가 일정 부분 기여했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동아일보는 5월12일자 신문에서 “그러나 신사옥과 CTS 등 첨단 시설에 막대한 투자 지출을 해야 하는 회사의 형편으로는 노조의 요구를 수용할 수가 없었습니다”라며 임금인상 요구를 수락하지 못한 배경을 설명했다.

image 동아일보 1992년 6월3일자에 게재된 삼성전자의 CTS 광고. 시스템의 업무 플로우를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7월]

@ 1992년은 국내 신문사 기자들에게 뉴스 생산, 입력 하드웨어로서 노트북 컴퓨터가 본격적으로 보급되던 시기다. 경향신문의 7월16일자 기사 ‘기사 송고 전송 체제 본격화’는 이 현황을 비교적 자세하게 전달하고 있다. 이 기사의 현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연합통신 : 외근 기자들에게 랩탑 보급, 전화코드로 기사 전송 국내 처음 가동
  • 중앙일보 : 올해초 삼성 노트북 기자들에게 지급
  • 조선일보 : 삼성 및 금성 제품 대부분 기자들에게 지급
  • 서울신문 : 외근 기자들에게 60여대의 전송 장비 지급, 회사 내 데스크톱(입력용) 200여대 배치
  • 경향신문 : 내외근직에 170대 지급 및 교육
  • 동아, 한겨레, 한국 : 기사 전송화 작업 진행
  • 한 경제신문 : 200만원대 가격 중 30%를 기자들에게 부담시켜 물의

@ 파업을 벌여왔던 한국일보 노조가 사측과 전격 합의하면서 ‘전산제작시스팀 관련 비편집국 인원정리 논의 연내 마련’을 조건에 포함시켰다. CTS 도입으로 인원 감축이 진행되고 있었고, 이를 저지하기 위한 노조 측의 반발과 사내 진통이 작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한겨레 7월12일자 기사 ‘한국일보사 노조 파업 배경’을 보면, 그 내막이 자세히 나와 있다. 한국일보 사측은 89년 CTS 도입으로 93년까지 정리해고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자 이를 검토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겨레는 당시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었다.

“89년 노사가 93년 6월까지는 전산제작시스템(CTS) 관련 해고를 하지 않기로 합의했는데, 이는 뒤집어 말하면 이 기간이 지났을 때엔 조합원 상당수에 대해 정리해고를 할 수 있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져”

[10월]

@ 경향신문의 10월6일자 기획기사 ‘2000년 경향 애독자 안방PC에 정보 직송’은 CTS 도입으로 달리지게 될 신문 생산, 유통, 소비 구조의 변화상을 구체적으로 전망해 보여주고 있다.

우선 뉴스 생산 단계에서 휴대용 노트북 컴퓨터의 지급이 보편화하고 있는 흐름을 확인할 수 있고, 전송망으로서 전화선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흐름을 확인할 수 있다. 오탈자 확인과 같은 교열부의 업무는 소프트웨어로 대체되고 있으며, 인쇄과정도 자동화되고 있다고 전한다. 네트워크망의 발전으로 전국, 해외 동시인쇄는 이제 보편적인 인쇄 전략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 기사가 전망하는 신문사라는 공간의 미래상은 독특하다. ‘시민들의 문화, 휴식 공간’으로 변모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정보가 집적되는 공간으로서 신문사는 자연스럽게 사람이 모일 수밖에 없는 물리적 공간으로 변화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결과적으로 그런 흐름으로 나아가지는 못했다.

@ 한국언론연구원의 데이터뱅크국(국장 이호조)이 KINDS를 구축한 공로로 올해의 한국신문상을 수상했다. 여기서도 언급되고 있지만 “CTS 시대를 맞아 공용신문 기사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할 수 있었다.

@ 대표적인 CTS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개발 기업인 코닉시스템이 10월20일부로 상호를 현대미디어시스템으로 변경했다. 88년 설립된 코닉시스템은 신문사의 CTS와 전자출판 등을 담당하며 시장을 확장해왔다. 현대미디어시스템은 사명 변경뿐 아니라 현대전자의 전자출판영업부를 흡수했다. 국내 CTS 시장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는 사건으로 이해해볼 수도 있다.

[11월]

@ 한국언론연구원이 운영하는 신문기사 데이터베이스 서비스인 KINDS가 데이콤의 천리안II를 통해 일반인들에게 개방됐다. 한겨레는 이 소식을 11월15일자로 전하면서 “전산제작시스팀(CTS)을 갖춘 한겨레신문을 비롯해 국민일보, 서울신문, 세계일보 등 4개지의 경우 지난 1월1일치부터 문화면, 과학면 기사도 수록돼있다”고 전했다. 각 신문사의 CTS 도입이 전산망을 통한 뉴스 서비스의 개시에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 동아일보 11월26일자에 게재된 삼성전자의 광고는 CTS 시장이 대기업이 뛰어들 만큼 큰 시장으로 확장하고 있음을 실감케한다. 당시 삼성전자는 이 광고 문구에서 “삼성전자가 동아일보 신문제작에 컴퓨터 시대를 열었다”고 홍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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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 경향신문의 CTS 구축이 완료됐다. 서울시스템에 의뢰해 약 1년 동안 진행된 경향신문 CTS 구축사업은 ‘전면 컬러 풀페이지네이션’를 특징으로 한다. 경향신문은 ‘최단기간 최소비용 실현’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경향신문의 CTS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모두 순수 국내기술로 개발된 점을 강조했다. 외산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시스템에 비해 비용이 10%에 불과하다는 점도 언급했다. 서울시스템이라는 CTS 생태계의 중요한 행위자는 경향신문을 비롯해 동아일보, 매일경제, 내외경제신문 및 지방일간지 등도 함께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이 기사는 밝히고 있다.

경향신문은 12월31일자 1면에 ‘본지 오늘부터 전면 전산제작’ 사고를 내보내면서 “본지와 서울시스템(대표 이웅근)이 1년간의 개발 끝에 완성을 본 경향시스팀은 순수한 국내 소프트웨어로 최단기에 가장 경제적으로 개발된 신문제작시스팀으로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고 홍보했다.

당시 시스템은 크게 집배신 시스템과 편집 시스템으로 구성돼있다고 신문을 밝혔다. 집배신 시스템은 기자들이 온라인으로 기사를 전송, 수집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소프트웨어이고, 편집 시스템은 수집된 원고를 바탕으로 조판 작업을 진행하는 소프트웨어다. 또한 팩시밀리를 통해 대구, 광주 공장으로 조판 결과물이 전송돼 인쇄를 진행할 수 있게 됐다.

1993년

[2월]

@ 폰트 다양성이 점차 대세로 굳어지는 시기다. 경향신문은 2월1일자 ‘탁상 출판 시대 PC용 서체 개발 경쟁’이라는 기사에서 고품질의 인쇄를 위한 폰트 개발 경쟁이 다양화하고 있는 경향성을 일목요연하게 소개하고 있다. 눈여겨 봐야 할 대목은 당시 워드프로세서가 단순한 입력부의 역할을 넘어서 조판부의 역할까지 통합하는 일종의 소프트웨어 혼종화 경향성이 뚜렷해지고 있는 흐름이다. 아래아한글 2.0 버전은 개인 DTP용으로 활용해도 적합할 만큼 다양한 조판 기능을 추가하고 있다고 이 기사는 적고 있다. 소규모 자가 출판에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서체 개발 경행이 이러한 조류를 타고 심화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기사가 소개하고 있는 서체 개발사 명단은 다음과 같다.
*서울시스템, 휴먼, 한양, 신명, 한국컴퓨그래피, 창인 등

가격은 윤곽선 폰트가 2000~5000만원, 비트맵 폰트가 1000~2000만원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3월]

@ 매일경제는 CTS 도입으로 달라지게 될 뉴스 소비 양상을 기획기사를 통해 그려냈다. 기술의 도입에 따른 생산과 유통, 소비의 변화상을 당시의 관점에서 예측해본 것이다. 기자들은 노트북을 통해 기사를 전송하고, 중앙컴퓨터에 모아진 기사는 네트워크망을 통해 구독자들의 PC로 실시간 전송될 것이라는 내용이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로도 해당 기사가 전송될 수 있다는 사실에 의미를 뒀다. 그 규정적 기술로서 매일경제의 기사는 “결국 CTS를 통해 신문제작시간의 단축으로 독자들에게 가장 빠른 최신정보를 공급할 수 있게 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4월]

image 경향신문 기사 캡처

@ 1993년부터는 ‘통신 기술’이 주목을 받는다. 컴퓨터와 통신의 결합이 사회상을 완전히 변화시키고 있다는 관점이 도드라지는 시점이다. 경향신문의 4월22일자 기사 ‘시간은 돈, 광속 정보 전달’은 “통신에 활용하지 않으면 컴퓨터는 자기가 가진 기능의 20%밖에 쓰지 못한다‘는 문구로 시작된다. 그만큼 당시의 통신 기술이 정보 유통에 상당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었음을 유추해볼 수 있다.

통신 기술의 발전으로 달라진 뉴스 생산 방식이라면 이메일을 통한 원거리 저자의 원고 획득 방식이다. 해외통신원이 신문에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시점과도 맞물려 있다. 기사는 이렇게 설명한다.

“신문에 글을 기고하는 ㅊ씨(39)는 전자우편을 이용해 원고를 담당기자에게 보낸다. 그러면 담당기자는 자신의 컴퓨터를 이용해 원고를 다운로드 하여 약간의 수정을 한 뒤 곧바로 신문편집시스팀(CTS)으로 전송한다. 재타이핑을 하는 불편함이 없을 뿐더러 그 원고는 곧 자료(데이터베이스)가 된다.”

당시 국내 PC통신 서비스도 개괄하고 있다. “국내의 PC통신 서비스는 데이콤의 천리안, 한국PC통신의 하이텔, 포스데이타의 포스서브 등 3개다. PC통신 가입자는 대략 10여만명, 국내 컴퓨터 보급대수를 150만대로 볼 때 15명 중 한 명꼴로 PC통신을 하고 있는 것이다.”

[6월]

@ 동아일보가 6월 전국동시인쇄를 강화하기 위해 광주사옥 기공식을 올렸다.

@ 경향신문이 6월5일부터 KINDS를 통해 뉴스 PC 서비스를 시작했다. 천리안II를 통해 KINDS에 접속하면 경향신문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기사는 “본지 컴퓨터 제작 시스템(CTS)에 입력된 최신 뉴스들이 재입력 작업없이 즉시 전용 회선을 통해 한국언론연구원의 언론종합정보은행에 전송되면...”이라고 적었다.

1994년

[1월]

@ 동아일보가 1월1일 1994년 신년호 별지 16개면을 CTS로 제작했다고 밝혔다.

@ CTS로 모든 지면을 제작하기 이전 동아일보 구독자는 “이들 지면의 인쇄상태가 전반적으로 흐려 읽기에 불편했다”고 호소했다. 특히 텔레비전 프로그램 안내 지면의 인쇄 상태가 심각하다고 독자 모니터 광장을 통해 의견을 개진했다. 소프트웨어를 활용한 조판과 최종 인쇄품질 간의 관계에 대한 기술적 경험이 높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4월]

@ 동아일보는 4월1일부터 전면 CTS 방식으로 제작을 개시했다고 공식적으로 알렸다. 제목은 ‘DELTA 동아일보 CTS 본격 가동 신문제작 완벽의 시대 열다’였다. 이 기사에 따르면, 동아일보는 89년부터 CTS를 추진해왔다고 밝히고 있다. 본격적인 가동까지 약 5년의 시간이 소요됐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DELTA는 Dong-A Editing and Layout Total Automation의 약자다.

이 기사에는 미국 기자들의 신문 제작 방식과 비교하는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서울올림픽 당시 우리나라 기자들은 미국 기자들이 경기장에서 곧바로 컴퓨터를 이용해 기사를 보내는 광경을 보면서 부러워했다” 서울올림픽의 취재 경쟁이 CTS 도입을 유발한 원인 가운데 하나였음을 추정할 수 있다.

CTS 제작 방식 전환이 가져온 풍경도 이렇게 묘사했다. “CTS의 가장 큰 수확은 마감시간을 늦춰 독자들에게 그만큼 뜨끈뜨끈한 뉴스를 전달하게 된 점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현장에서 기자가 기사를 부르면 본사에서 이를 받아적고 데스크가 수정한 다음 문선교열 편집 정판 등 여러 단계의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CTS는 이러한 과정을 몇 단계 생략했다. 따라서 그만큼 마감시간을 뒤로 미룰 수 있게 된 것”

통신 기술의 결합으로 유통 속도가 빨라졌다는 사실도 적고 있다. “컴퓨터로 입력된 기사는 곧바로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져 하이텔, 천리안 등 컴퓨터통신망이나 세종로네거리에 설치된 전광판에 보내져 종이가 아닌 화면으로 독자들을 찾아간다.”

전국동시인쇄에 활용된 통신망에 대한 정보도 포함돼있다. 이 기사는 “본사와 지방 분공장 인쇄시설을 연결한 초고속 팩시밀리망은 서울과 지방의 뉴스 격차를 해소했다. 종전에는 본사엗서 인쇄해 밤새도록 트럭으로 신문을 날라야했기 때문에 지방독자들은 초저녁에 인쇄한 신문을 받아볼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초고속 팩시밀리는 언론사를 위한 디바이스로, 통신망도 별도로 마련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방대한 지면 분량을 원본의 훼손 없이 빠른 속도로 지방 분공장에 전달하기 위해서는 전용회선이 요구됐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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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 한겨레는 5월15일자 기사에서 “올해 초 가장 경제적인 예산으로 ‘한겨레’에 적합한 집배신시스템이 탄생해 현재 안정적으로 본궤도에 올랐다”고 소개했다. 조판의 소프트웨어화 이후 기자와 조판 소프트웨어 간의 원활한 전송을 위한 환경으로서 집배신이 이후에 도입되는 프로세스임을 대략적으로 확인해볼 수 있다.

1995년

[2월]

@ 동아일보가 월 구독료를 6000원에서 7000원으로 인상한다는 기사 ‘用紙代(용지대)부담 2년새 70.6% 증가’를 게시했다. 70.6%에 달하는 용지대를 명분으로 삼고 있지만, 이를 압박한 요인에 CTS가 자리하고 있었다. CTS 투자를 위한 막대한 출혈 경쟁, CTS 도입에 따른 증면 활성화 그리고 컬러화는 비용 상승의 주된 요인으로 지목될 수밖에 없었다. 기사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본사는 막대한 증면 및 인력투자 부담과 설비 투자 부분은 내부 경영합리화와 광고수입으로 최대한 흡수한다는 방침 아래 계속 투자했으며 지국의 배달인건비 상승에 따른 본사의 지원을 강화하는 데에도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습니다. 사실 구독료만으로는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는 인력과 시설투자는 불가능하며 광고 수입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선후 관계의 파악이 더 필요하겠지만 CTS 설비 투자는 당대의 광고 시장 확대와 깊은 연관이 있으며, 이를 통한 증면과 광고 수익 흡수 등이 맞물리면서 신문사 매출이 증가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증면 경쟁과 용지대 인상(용지 자체의 인상인지, 증면에 따른 추가 비용의 소요인지는 불확실) 등은 광고 수익의 증대에도 불구하고 구독료 인상을 유발할 수밖에 없었다.

[4월]

@ 동아일보가 CTS 전면 가동 1년을 맞아 변화상을 홍보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무엇보다 그들의 시스템 구조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담고 있어 유익하다. 먼저 기자들은 노트북과 연결된 전화선을 통해 집배신 전용 중형 컴퓨터로 연결을 한다. 당시 집배신 중형 컴퓨터 기종은 SSM-6000모델. 그리고 노트북에 탑재된 모뎀의 전송 속도는 9600bps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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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철훈, 유승화 (1993). 무정지형 상용컴퓨터 SSM6000 개발. 전자공학회지, 20(7), 817-829

조판용 컴퓨터는 개별 컴퓨터가 아닌 메인컴퓨터와 연결된 일종의 단말 시스템이었다. 기사는 “LDT 조판 단말기는 본사 CTS의 꽃으로 제4세대 CTS에서 가능한 WISIWIG 시스템이다”라고 쓰고 있다. 이를 통해 미루어보면, 집배신 소프트웨어 및 하드웨어와 조판용 소프트웨어 및 하드웨어는 서로 분리돼있었으며 처리, 저장되는 구조도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조판용 소프트웨어는 메인 컴퓨터에 설치돼, 제한된 인원만이 동시 접속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말 그대로 조판 담당자는 모니터 중심의 단말기 위에서 조판 작업을 진행한 것이다.

사진 전송 기술의 변화도 확인해볼 수 있다. 촬영된 사진은 니콘 NT3000 디지털 전송기를 통해 컬러 데이터로 압축, 전화선으로 매킨토시 컴퓨터로 전송했다고 적고 있다.

image 매일경제 1992년 5월14일자

NT-3000은?
NT-30000은 니콘이 로이터와 교도통신 협업으로 개발해 1992년 출시한 이미지 전송 하드웨어(Telephoto Transmitter)다. 1992년 알베르빌 올릭픽을 맞아 처음으로 선보였다. 네거티브 필름을 스캔해서 파일 형태로 전송해주는 역할을 담당했다. 84년 1000시리즈부터 이어져온 니콘의 사진 전송 전용 디바이스인 셈이다.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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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향신문 창간기념호 10월6일자 신문 기사 ‘온라인 통해 지구촌뉴스 광속 처리 경향신문 이렇게 만든다’를 통해 CTS 중심으로 재편된 경향신문의 제작 환경을 엿볼 수 있다. 경향신문이 자랑하는 자사 시스템의 강점은 분산처리시스템이다. 서울시스템이 개발한 이 구조는 기존의 CTS가 메인컴퓨터 중심으로 작동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개별 조판 시스템들이 병렬적으로 연결되는 형태를 갖는다.

추론해보면, 메인컴퓨터는 사내에 설치된 서버 시스템을 의미하고, 조판용 워크스테이션은 이 서버와 LAN으로 연결돼 주요 파일을 주고받는다. 기자들이 전화선을 거쳐 송고한 기사는 서버를 거쳐 조판 소프트웨어로 전달되는 방식이다. 기사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 시스템은 또한 중앙집중방식의 미국이나 일본 CTS와 달리 네트워크 컴퓨팅으로 유명한 미국 선마이크로시스템의 워크스케이션을 이용, 분산처리 방식으로 구성된 최신의 클라이언스-서버 시스템이다”

경향신문은 이 시스템의 장점으로 “증면이나 지면의 질 향상 시 추가로 새로운 컴퓨터만 붙여주면 되는 확장용이성으로 인해 국내 CTS의 표준이 됐다”고 설명했다. 개별 조판용 워크스테이션이 호스트의 역할도 수행하기 때문에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기만 하면 기자들로부터 기사와 사진을 곧바로 전송받을 수 유형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1996년

[3월]

@ PC 통신을 통해 서비스되는 전자신문이 신문와 경쟁하게 됨에 따라 불안감이 서서히 신문업계를 휩싸고 있는 분위기다. 매일경제는 3월26일자 기사 ‘뉴스도 주문시대 인쇄신문의 미래 신문은 사라지지 않는다 해설·전문성으로 승부’에서 신문이 살아남게 될 방안에 대해 스스로 전망하고 검토하고 있다. 특히 매일경제는 “새로 등장한 전자신문은 라디오와 텔레비전과 달리 모든 면에서 인쇄신문을 압박하고 있다”고 전하면서 인쇄신문을 틈새로 밀어넣을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를 전한다.

하지만 광고 측면에선 우위에 있다고 위안하는 내용도 다수 포함돼있다. 기사를 보면 “광고에 관한 한 전자신문의 앞날은 결코 장밋빛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용자들은 전자신문에 게재되는 광고를 선택하지 않을 확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PC 사용자 대부분이 구매력이 떨어지는 남성들이어서 소비 결정권자인 주부 가독률이 저조하다”고 진단했다.

이를 돌파하기 위해 매일경제는 “보다 세분화하고 전문화하는 가운데 컴퓨터 통신매체(전자신문)와 영상매체 상업용 데이터베이스 등 분야에 진출, 복합미디어사로 거듭나려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아울러 매일경제는 해외 인터넷신문(매일경제 표기로는 ‘전자신문’) 현황을 정리한 기사도 내보냈다. PC통신을 통해 서비스하는 신문 유형과 인터넷을 통해 내보내는 유형을 동일하게 전전자신문으로 칭하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 CTS 사업에 경쟁적으로 뛰어든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인터넷 사업으로 전환하거나 확장하는 전략적 선택이 이뤄진다. 동아일보는 3월14일자 기사 ‘SW업체 변신 몸부림’에서 이러한 흐름을 짚었다. 동아일보는 이러한 사업 전략의 전환 배경을 해외업체의 진출과 소프트웨어 판매업의 침체 때문으로 봤다. 워드프로세스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단연 두각을 보였던 한글과 컴퓨터는 “장기적으로 소프트웨어만으로 힘들다”고 보고 온라인 사업에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 그룹웨어 시스템으로도 진출한다고 덧붙였다. 서체와 DTP로 유명했던 휴먼컴퓨터도 “사업 규모가 큰 CTS 사업에 컨소시엄으로 참가”했다고 소개했다.

마이크로소프트 등의 해외사업자들의 진출과 웹의 등장이 전통적인 국내 CTS 행위자들에게 위협이 됐음을 짐작할 수 있는 기사다.

[4월]

@ 한겨레가 ‘인터넷 한겨레신문‘을 4월27일부터 시험서비스를 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정식 서비스는 5월15일 창간 8주년을 맞아 시작한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한겨레신문은 1995년 한겨레21을, 1996년 초엔 씨네21을 인터넷으로 서비스하기 시작했다.

[11월]

매일경제 11월21일자 보도를 보면, CTS 시장을 주도해 온 서울시스템이 소프트매직과 전략적 제휴를 맺은 것으로 확인이 된다. 소프트매직은 MIT 출신인 김민수 대표가 설립한 신명시스템즈가 상호를 변경해 등록한 회사다. 이후 쿼크사의 쿽익스프레스를 대체하기 위한 엠레이아웃을 개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엠레이아웃은 이후 웹 퍼블리싱 툴로도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지면과 웹 편집의 가교 역할을 했던 소프트웨어라고 볼 수 있다.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6112100099111004&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6-11-21&officeId=00009&pageNo=11&printNo=9607&publishType=00010

1997년

[1월]

@ 소프트웨어 중심이었던 서울시스템이 윤전기 사업에 뛰어들었다. 매일경제는 1월22일자 기사 ‘서울시스템 윤전기사업 참여’에서 서울시스템이 미국 오토로직사와 기술제휴를 맺었다고 보도했다. 이를 통해 “현 시점에서 설비투자 규모가 큰 윤전기 사업에 진출, 사업규모 확장을 통해 본격적인 사업다각화를 추진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고 썼다. 윤전기에서 최종 인터넷신문 발행에 이르를 전과정을 통합함으로써 더 높은 이윤을 꾀하려는 목적으로도 이해되지만, 당시 소프트웨어 산업의 침체와 맞물려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도 해석해볼 수 있을 것이다.

[5월]

@ 인터넷 발행을 위한 CTS의 도약이 시작되는 시점이다. 한겨레신문은 5월14일자 기사를 통해 ‘5세대 CTS’라고 명명했다. 한겨레가 말하는 5세대 CTS는 입력, 데스크, 교열, 편집, 조판, 필름 출력을 모두 소프트웨어화 한 데 더 나아가, “지면에 실린 모든 정보를 자동 분류해 담아두는 데이터베이스와 이를 인터넷 자료로 자동 변환해주는 시스템을 통합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사내통신망을 인터넷 중심으로 재편한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브라우저로 데이터베이스에 접근할 수도 있게 됐다. 또 한 가지 특별한 점은 기사가 적어내려가고 있듯 “제작과정 이후 지면에 실리지 못한 기사를 포함한 그날치의 모든 기사, 사진, 도표 정보가 색인어 분류 프로그램에 의해 자동으로 데이터베이스에 쌓인다”는 것이다. 이전 시스템과의 차별성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전체적으로 네트워크가 인터넷 회선 중심으로 재구축된 것을 특징으로 한다는 점을 짐작해볼 수 있다. 이는 인터넷신문 발행에 최적화하기 위한 차원으로 분석된다. 시스템 개발사는 현대정보기술이 담당했다.

이어진 기사에서도 이러한 추정이 현실에 가깝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강태원 현대정보기술 부장 인터뷰 기사에서 강씨는 “신문제작의 전산자동화뿐 아니라 기사, 사진의 데이터베이스, 인터넷 서비스 등 모든 디지털 공정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통합했다는 점에서 국내 최첨단 시스템이라 할 만하다”고 밝히고 있다. 엄밀하게는 새롭게 등장한 발행 채널인 인터넷신문으로 발행 가능한 네트워크 연결성을 강화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 서울시스템이 인터캐스트라는 방송기술 시장 영역에 도전한다고 매일경제가 보도했다. 인터캐스트는 PC에서 TV와 인터넷을 결합한 형태로 하드웨어 시장에 가깝다. 해당 기사는 “방송장비, 수신자용 인터캐스트 보드, 소프트웨어와 관련 콘텐츠 제작 등의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고 소개하고 있다.

[8월]

@ 서울시스템이 광주매일신문사에 40억 규모의 CTS와 데이터베이스 시스템을 공급한다고 발표했다. 구축되는 시스템은 기사 집배신, 영상 집배신, 편집 시스템 등이다. 이를 통해 텍스트 중심의 기사 전송수집 소프트웨어와, 영상용 전송수집 소프트웨어, 조판 소프트웨어 등이 분리돼 개발돼왔음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9월]

@ 신문 제작의 소프트웨어화로 조판 작업이 보다 쉬워지면서 노동 관계의 변화도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성균관대 등이 주최한 세미나를 보도한 동아일보 9월11일자를 보면, 신문제작PD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학계로부터 제기됐다. 배경은 “신문 출고 부서 편집제와 편집자 조판제 등이 부분적으로 이뤄짐에 따라 편집부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신문PD는 이러한 조류를 반영해 “취재, 편집, 제작 등 다기능을 갖춘 저널리스트”로 이러한 모델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1999년

[2월]

@ 서울시스템이 1998년 10월 부도를 거쳐 2월9일 화의 개시 결정을 법원으로부터 받았다. 문장방송 사업 등 경쟁력 약한 사업부서를 정리하고 인력을 70% 이상 구조조정했다고 기사를 전했다. 1997년 사업 확장 기조가 스스로의 발목을 잡는 결과로 이어진 것으로 분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