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과 저널리즘

1970년 이후 CTS에 대한 신문 보도량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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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규 2019년 06월 11일

1971년 : 일간지 공무국장 세미나가 제주에서 개최된다. 이날 세미나에 초대된 발제자는 일본신문협회 공무위원장이었던 대택정씨로 ‘CTS에의 도전’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하게 된다. 국내에서 개인용 컴퓨터가 처음으로 소개된 1981년으로부터 무려 10년 전의 일이다. 이미 일본에서는 CTS가 기술적 흐름으로 자리를 잡았다는 신호임과 동시에, 일본 기술에 의존적이었던 인쇄 기술 문화를 상징하는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1972년 : 신문 제작 자동화에 대한 논의가 지속적으로 진행되는 상황이었다. 물론 일본 의존적인 모델을 큰 변화가 없었다. 1972년 9월 개최된 세미나의 제목은 ‘매스미디어의 기술개발과 이에 따른 저널리즘의 전망’이었다. CTS 관련 기술 도입에 선제적이었떤 아사히신문의 담당자가 방한했다. 후지다 마사다까 아사히신문 신문주임기술연구원은 한자의 텔레타이프화, 자동 텔레타이프를 결합해 신문 제작의 자동화에 성공했다는 사례를 소개했다. 이를 기반으로 NELSON이라 이름붙인 “새로운 편집시스템을 개발 중에 있다”라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동아일보 관계자의 발언이 눈길을 끈다. 권오철 당시 동아일보 공무부국장은 “한국매스콤이 건물을 새로 짓고 색체인쇄기(컬러인쇄기)를 도입하는 외양의 변화만 있을 뿐 편집과 제작기술은 수십년 전과 다름없는 답보 상태에 머물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매스콤이라는 신문 제작 기술 기업이 신문 제작 과정의 혁신을 주도하지 못하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한 비판은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또다른 현황을 덧붙이면, 이 당시 모노타이프가 국내 신문사에 도입되는 사례가 중앙일보 등에서 관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1975년

새로운 전기가 시작되는 시점이다. 1975년 3월17일 ‘코리어헤럴드’를 발행하던 대한공론사가 국내 신문으로는 최초로 전자사식기와 옵세트 윤전기를 도입했다. 이 기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대한공론사는 1963년 라이노타이프를 국내에선 처음으로 도입해 신문제작 과정을 기계화한 첫 번째 언론사였다. 어느 언론사들보다 기술 도입에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해당 전자사식기가 어떤 소프트웨어로 구성이 됐는지는 현재로서는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대한공론사는 공기업이다. 1953년 8월13일에 사단법인 형태로 설립됐다. 코리아헤럴드는 1953년 8월15일에 창간된 ‘코리아 리퍼블릭’이 제호를 변경해 발간된 신문이다. 1978년 한국무역협회에 인수됐다가 대농을 거쳐 지금은 ㈜헤럴드의 자산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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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1975년 대한공론사의 CTS 도입 소식 이후 국내에서 CTS에 대한 뉴스는 장기간 등장하지 않았다. 그러다 1981년 경향신문에 광고 한 건이 게재된다. 동경기계제작소 의뢰로 게시된 이 광고는 ‘오프셋 윤전인쇄기’라는 이름으로 소개됐다. ▲로터리식 잉크 펌프 ▲불수강용착 구조의 판동, 프랑켓동 ▲동관피복의 잉크 동 ▲이배경 공통압동부 사색쇄 유닛 ▲시퀀셜 스타트업 시스템 ▲인쇄개시 전 잉크 조정의 프리세트 장치 등을 주요 특성으로 내세웠다.

동경기계제작소는 1948년 일본문 전용 모노타이프를 개발하는 등 앞선 인쇄 기술을 보유한 인쇄 기계 전문기업으로, 이후 국내 윤전기 도입 때 주요 구매 검토 대상으로 자주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1982년

[4월] 동아일보의 기획 기사 '컴퓨터 제작 스크린지면 신문 「제3·제4世代(세대)」로'는 CTS 기술을 획기적인 혁신의 사례로 평가하고 있다. 이때부터 ‘컴퓨터화‘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게 된다. 동아일보가 신문제작의 기술적 변화를 4단계로 정의한 부분은 눈길을 끈다.

  • 1세대 : 사람의 손으로 일일이 활자를 문선하여 아연판을 만들고 이를 인쇄판으로 쓰는 단계
  • 2세대 : 사진식자기를 이용함으로써 아연판을 축출한 단계
  • 3세대 : 컴퓨터로 신문의 편집 제판을 자동화한 단계
  • 4세대 : 컴퓨터가 편집한 내용을 컴퓨터에 입력시켰다가 안방에 앉아 원하는 뉴스를 골라 TV 스크린에 비춰보거나 혹은 스크린에 비친 내용을 인쇄해서 볼 수 있는 단계

1982년 당시 국내 신문사들은 다수가 2세대로 넘어가는 중이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사진식자기는 기계에 의한 준 자동화 단계로 볼 수 있다. 소프트웨어의 개입은 동아일보의 단계론으로 보면 3단계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1982년은 소프트웨어화에 대한 인식이 점차 확대되면서 제작의 자동화에 대한 열망이 커져가던 시점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8월] 신문 노동 시장에도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동아일보가 사원 채용 공고에 ‘CTS 요원’을 별도로 분류해 모집했다.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국내 언론사 가운데 빠른 행보라고 볼 수 있다. CTS 요원의 자격 조건은 ‘4년제 대학 기계공학과 출신’으로만 한정했다. CTS의 제어를 위해 기계공학에 대한 지식이 필수적이었음을 유추해볼 수 있다.

image 언제 어느 지면에 게재된 광고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1983년

[2월] 이진의 문공부장관의 관훈클럽 토론회 발언은, 정부가 신문 기술의 변화를 언론사에 주문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 장관은 당시 토론회에서 “한국신문도 납을 사용하는 제작 과정을 탈피하는 CTS 시스팀 도입을 연구할 시기가 됐다”고 말했다. 대다수 신문사들이 납활자를 기반으로 하는 제작공정에서 탈피하지 못함으로써 경쟁력이 뒤처진다는 의미로도 해석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4월] 동아일보의 ‘안방에 앉아 원하는 뉴스만 골라 읽는다’는 기사는 1982년 기획기사의 내용이 거의 흡사하다. 기술의 변화에 따른 신문의 미래를 타진하고 전망을 제시한다는 점에서도 큰 차이가 없다. 각 가정에 설치된 터미널로 원하는 기사를 검색해서 보고, 인쇄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전해와 달라지지 않았다.

image 동아일보 기획기사에 게시된 일본 아사히신문 신문 제작과정

1984년

4월 : 신문 윤전부장 세미나에 ‘신문CTS와 인쇄’라는 주제가 다뤄졌다. 채광국 서울신문 전산실장이 발표를 맡았다. CTS에 대한 신문사 윤전부의 관심이 지속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같은 달 열린 교열기자 세미나에서도 ‘신문의 CTS 제작에 따른 교열기자의 새지평’이라는 주제가 등장하는데, 당시의 CTS 기술이 언론 노동에 가져올 변화를 예측하는데 다들 관심이 컸던 것으로 풀이 된다.

이 시기 경향신문의 사설은 특별하다. 신문의 날을 맞아 게시된 이 사설은 당시 신문산업에 팽배해가고 있는 위기감을 읽어낼 수 있다. 사설의 첫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오늘날의 신문은 보도면에서 전파 매체에 밀리고 있다는 말을 흔히 듣는다‘. 방송과 라디오의 확산이 신문사가 누려왔던 영향력을 서서히 위협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 결과 ’호외‘의 반응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는 사례도 언급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신문이 CTS 시스템 도입으로 물적 현대화에만 치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기술혁신 담론이 확대되면서 신문의 질이 하락하고 있다는 우려를 확인해볼 수 있다.

매일경제도 사설로 이러한 조류를 거론하고 있다. CTS 등 기술혁신으로 가로쓰기, 활자키우기, 단수 조정 등이 원활해졌다는 변화상도 확인할 수 있다.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 개발이 중요하다는 언급도 관심을 끈다. 이처럼 사설이 CTS 등 기술혁신을 언급하게 된 배경은 1984년 신문의 날 표어가 ‘현대화를 다지는 언론’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10월 : 서울신문의 CTS 도입을 주도한 채광국 전산실장이 ‘한국신문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신문산업 내 기술 분야 인사가 한국신문상 수상자로 등장한 특별한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1985년

2월 : 동아일보의 ‘생활혁명 다가온다 – 인쇄문화의 꽃 CTS’에는 두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아시아권에서는 니혼게이자이신문이 1978년 처음으로 CTS로 전환했다는 사실과, 국내에서는 1982년 동아출판사가 편집, 교정 부분에 CTS 시스템을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사실. 당시 동아출판사는 이 시스템 도입에 3억5000만원을 투자했다고 이 기사는 적고 있다.

대략 이 시기를 전후해서 CTS는 Cold Type System(뜨거운 아연판의 제거)이 아니라 컴퓨터조판시스템(Computerized Typesetting System)으로 번역되고 있다. 동아출판사가 1차적으로 컴퓨터화, 정확하게는 소프트웨어화를 진행한 공정이 편집, 교정이라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시의 소프트웨어가 이 부분에서 우선적으로 개발됐음을 유추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5월 : 동아일보의 장원호 미주리대 교수 인터뷰는 당시 한국과 미국의 CTS 현황을 비교해볼 수 있는 중요한 근거자료라다. 당시 미국의 신문사들은 99%가 대분의 신문 제작 공정을 소프트웨어화 했지만 국내에서는 1~2군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이 기사를 통해 알 수 있다. 특히 미국 신문사들은 기사작성, 송고, 편집문선, 조판, 교열 전과정을 컴퓨터화했다고 장 교수는 말하고 있다. CTS에 대한 국내 신문사들의 인식에 대해 장 교수는 “언론 경영자나 종사자들이 컴퓨터 제작에 대한 사전 준비가 돼 있지 않은 것 같다”고 꼬집기도 했다.

8월 : 제17회 한국기자상 신문편집 부문 수상자에 채광국 전산제작국장이 이끄는 서울신문 편집부가 ‘CTS 편집체제 개발’을 근거로 선정했다.

11월 : 한국정보과학회가 주최한 ‘정보산업 리뷰 심포지엄’은 정보기술을 수용하려는 당시 움직임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행사였다. 당시 정부는 ‘국가기간전산망’ 구축 계획을 발표하고, 데이터통신 행정전산사업단을 꾸렸는데, 이동욱 단장이 해당 행사에서 발표를 맡기도 했다. 1984년 한국신문상을 수상했던 채광국 서울신문 전산제작국장은 이날 심포지엄에서 이미 편집, 조판 과정이 소프트웨어화 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채 국장은 “기사나 광고 처리 시간이 빨라졌으며 조판처리의 신뢰성도 높아졌다. 제작시간이 활판 때에 비해 1시간이나 단축됐다”며 편집, 조판 작업의 소프트웨어화에 따른 효과를 설명했다.

1986년

[11월] 동아문화센터와 과학동아는 일본첨단기술견학단을 구성해 이공대생 5명을 일본으로 파견했다. 견학 대상에 일본 아사히신문이 포함돼 있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아사히신문의 CTS를 첨단 기술로 상정하고 이를 둘러보게 했다는 사실은, 당시 국내 언론사가 일본의 CTS 기술의 위상을 어느 정도로 평가하고 있었는지 짐작케 한다. 일본 CTS 기술에 대한 한국 언론사의 선망이 견학단 코스 선정에 잘 드러나고 있다.

1987년

[12월] 경향신문은 전석호의 신간 ‘정보사회와 언론’을 소개하면서 ‘CTS와 데이터베이스’를 언급했다.

image 1987년 8월10일자 매일경제에 게재된 서울시스템의 '세종' 시리즈 광고

1988년

[9월] 한겨레신문은 지령 100호를 맞아 좌담회 기사를 게재했는데 여기서 언급된 내적 기술 평가에 대한 발언들은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특히 전산제작 체제에 대한 좌담 내용을 보면 당시 한겨레신문이 보유하고 있는 편집 관련 소프트웨어 및 하드웨어는 “30대의 워드프로세서, 1기가바이트의 기억용량을 갖춘 편집기 8대, 3대의 고속출력기”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워드프로세서의 수량을 ‘대’라고 표현한 것으로 볼 때, 당시 워드프로세서는 하드웨어 일체형에 가까웠을 것으로 추정이 된다. 아울러 “국내 처음인 전면 CTS 편집 체제는 우리나라 신문제작을 한세대 전진시킨 것”이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아울러 당시 소프트웨어 중심의 제작 기반을 두고 “창간호 제작이 시작되던 날 새벽에 며칠 밤을 새운 전산제작부장이 계속 말썽을 부리는 출력기를 붙잡고 울음을 터뜨렸던 일화도 이제는 역사속으로 묻히겠지요”라고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10월] CTS 소프트웨어화에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됐다. 엘렉스컴퓨터(이후 사명을 인큐브테크로 변경한다)가 애플과 쿽(Quark)사의 협조를 받아 ‘X프레스‘라는 소프트웨어를 한글화해 출시한 것이다. 쿽사의 X프레스는 인디자인이 보편화하기 전까지 거의 모든 조판 소프트웨어를 대체하게 된다. 기존 전산사식기와의 관계는 여기서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당시 매일경제는 “X프레스는 조판은 물론, 편집과 레이아웃을 자동으로 처리, 기존 사진식자작업을 완전 전산화한 시스팀”이라고 적고 있다. 당시 이 소프트웨어가 구동하기 위해 엘렉스컴퓨터는 “매킨토시 II와 1200, 2400DPI 고해상도 레이저프린터, X프레스 소프트웨어 등”으로 묶어 판매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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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인쇄업를 대상으로 한 전자출판 소프트웨어와 CTS가 서서히 분화하는 징후를 이때부터 발견할 수 있다. 11월23일자 매일경제 기사는 ‘전자출판 시스팀 개발 경쟁, 신문제작 등 활용 확산 업계 군침‘이라는 제목으로 당시의 경쟁 상황을 소개하고 있다. 이때만 하더라도 신문사의 CTS는 주로 일본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수입하는 경향을 주를 이뤘다. 하지만 경쟁구도가 첨예해지면서 기존 DTP 관련 기업들이 신문 CTS 시장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 기존 전산식자 및 DTP : 서울시스템, 한국컴퓨그라피, 한국컴퓨터기술
  • 신규 기업 : 현대전자, 엘렉스컴퓨터, 쌍용컴퓨터

무엇보다 서울시스템은 자체 개발한 전산식자시스템 ‘세종500과 800, 1500’을 바탕으로 CTS 시장에 도전을 하게 된다. 시장 1위였던 한국컴퓨그라피는 10여 종의 한글서체를 바탕으로 시장의 우위를 유지하겠다는 전략을 취했다. 한국컴퓨터기술은 DTP용 소프트웨어인 ‘슈퍼라이터’를 신문사용으로 변형해 확장하고 있었다.

[12월] 매일경제의 12월10일자 기사 ‘88 새풍속도 – 전자 인쇄혁명’은 인쇄기술에서 소프트웨어의 관여가 대략 언제쯤부터 시작됐는지를 유추할 수 있는 문구가 등장한다. “전자출판시스팀이 국내에 상륙한 것은 2~3년 전이다”라며 대략 1985년을 전후해 도입이 시작됐음을 알 수 있다. 주로 작은 규모의 인쇄시장을 시작으로 신문사와 같은 대규모의 인쇄 미디어로 영역을 확장해나간 것으로 보인다.

1988년 서울올림픽은 인쇄의 소프트웨어화에 중요한 기점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인쇄 물량이 증가하면서 신속한 인쇄기술의 도입이 절박했기 때문이다. 기사는 “올림픽 등으로 인쇄의 홍수가 일자 올해 들어 급격히 확산, 이제 웬만한 잡지나 정기간행물은 컴퓨터로 제작하고 있다”고 적고 있다. 특히 전자사진식자기의 발명, 색분해 제작기술, 새인쇄 재료물과 인쇄 방법 등이 하드웨어의 기술 향상과 맞물리면서 이러한 소프트웨어화가 진전을 이룬 것으로 이 기사는 분석하고 있다.

1989년

[1월] 한겨레의 지역신문 창간 기획 시리즈는 87년 6월항쟁 이후 지역언론의 변화 양상을 짚고 있다. 특히 6월 항쟁 이후 언론자유화의 흐름을 타고, 지역언론사 창간이 봇물 터지듯 이어지는 상황을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이 당시 CTS는 지역신문 창간의 최소 기술 요건으로 자리를 잡았음을 알 수 있다.

[2월] 소프트웨어 중심의 CTS가 둘러싸인 당시의 기술적 환경을 매일경제가 짚었다. ‘정보의 맥을 짚는다’는 제목의 매일경제 기사는 OA(사무자동화)라는 용어가 보편화하면서, 다수의 사무작업들이 워드프로세서와 스프레드시트, 데이터베이스와 같은 소프트웨어로 처리되는 풍경을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특히 출판의 소프트웨어화도 함께 거론하는데, 사보 제작 등에 이러한 소프트웨어들이 활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다. 당시 사보제작에 워드프로세서 등이 활용되긴 했지만, 레이아웃 등의 제한으로 DTP 전용 소프트웨어의 도입이 필요했다는 소식도 담고 있다. 개인용 컴퓨터의 도입과 활성화가 서서히 시작되고 있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5월] 삼성전자는 같은 달 25일 ‘제1회 정보통신 관련 세미나’를 개최했는데, 주제 가운데 하나가 ‘신문자동조판시스팀’(CTS)이었다. CTS를 자동화 기술의 하나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추론해볼 수 있다.

[6월] 동아일보의 짧은 단신 기사는 CTS 기술 도입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을 가늠하는데 중요한 자료로서 평가할 수 있다. 당시 동아일보는 ‘대전일보 분규 타결’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는데 합의한 내용에는 “CTS 도입에 따른 인원 불감축”이 포함돼있었다. 언론자유화를 타고 지역신문이 연이어 창간하고 있는 시점에, CTS 도입은 일종의 붐을 이뤘고, 이 과정에서 몇몇 언론 노동자들이 고용의 불안을 겪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7월] 서울언론재단은 1989년 7월 7일 ‘신문 전산제작(CTS)에 관한 세미나’를 개최하는데, 초빙된 인물의 구성이 흥미롭다. 일본 중심의 기술 수용 방식에 서서히 미국 기술 수용이 뒤섞이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 장원호 미국 미주리대 교수
  • 오가자기 준페이 요미우리신문 편집국 국차장
  • 이와사기 히로무 쥬고쿠신문 제작국 국차장

7월 26일 매일경제에 게재된 ‘전자 출판시스템 인쇄 매체의 혁명’ 기사는 “전자출판시스팀 시대가 온 것”이라고 선언한다. 늘어나는 관련 기업들, 시장의 성장 등이 이러한 선언을 가능케한 것으로 보인다. 이 기사는 당시 전자 출판시스템의 강점으로 “사진보다 더 선명한 그림을 무한대의 색상으로 그려내고 출판 인쇄보다 보기 좋은 글자를 다양한 모양과 크기로 나타내준다”고 설명한다. 구현할 수 있는 색상의 확장, 폰트의 다양화 등이 출판시스템의 소프트웨어화로 가능해졌다는 뜻이다.

또한 매일경제는 이 시스템의 시작을 1985년 애플의 ‘페이지메이커’ 출시로 봤다. 페이지메이커의 등장으로 문자, 그래픽, 그림이 포함된 문서를 처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국내에 보급되던 워드프로세서로는 이러한 기능을 충분히 구현하기 어려웠음을 읽어낼 수 있는 대목이다.

하드웨어와의 관계도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 기사는 “퍼스컴보다 월등한 워크스테이션이 활용돼 컬러그라픽 기능까지 동원되는 추세”라고 적고 있다. 개인용 컴퓨터 수준으로 구현할 수 없었던 색상의 조합과 처리 등이 한층 업그레이드 된 하드웨어의 등장으로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또한 전자출판시스템을 3단계로 분류하면서 각각의 역할을 아래와 같이 분류했다.

  • 입력시스템 : 워드프로세서나 전용에디터, 스캐너를 이용한 그래픽, 사진입력장치
  • 편집, 조판시스템 : 출판물의 효과를 높이기 위한 레이아웃 기능 장치다
  • 출력 시스템 : 고해상도의 레이저 프린터

하지만 여전히 풀지 못한 몇 가지 숙제가 존재했는데, 한글서체의 부족, 핵심 하드웨어의 해외 의존 등이 그것이다. “한글코드 체계의 문제점 해결과 폰트의 자체 개발”은 무엇보다 시급했다고 이 기사를 적고 있다.

image 매일경제의 MEET 서비스

7월 26일자 매일경제의 ‘언론 뉴미디어 산업 정보대중화 꽃 피운다’는 언론 산업을 둘러싼 기술의 정보화를 3개 분야로 나눠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 전자 신문 : 매일경제는 당시 한국 전자신문 기술이 미국에 비해 20년, 일본에 비해 10년 뒤처졌다고 서술한다. 매일경제의 MEET, 한국경제신문의 KETEL은 국내 전자신문 서비스의 초기 형태로 설명한다. 이외 중앙일보 등이 관련 서비스를 준비 중이라고 적고 있다. 매일경제의 MEET는 일본 닛케이 텔레콤의 정보도 함께 제공한다고 밝혔다. PC 통신판 신문 서비스다. 이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한 하드웨어 조건으로 16비트 IBM 호환 XT, AT 기종을 추천하고 있으며, 애플 컴퓨터에서도 사용이 가능하다고 적고 있다. 또한 ‘MEET | AI’라는 전용 단말기도 개발해 출시했다고 설명했다.(가격은 대당 20만원) 무엇보다 이 단말기를 활용하면 매일경제의 MEET뿐 아니라 천리안, 국내BBS, 해외BBS 등도 접근 가능하다고 한다.

  • 비디오텍스 : 매일경제는 한국데이터통신과 비디오텍스 시스템 운영에 관한 공급계약을 체결해 이 서비스를 개시했다. 주로 공공장소 및 사업장을 대상으로 시스템을 공급했다고 한다. 이 기사는 “한국경제신문과 조선일보의 뉴스 속보판 등이 일종의 비디오텍스 정보의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매일경제는 “조만간 가정용 TV에 연결, 광범위한 서비스를 할 계획”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 전망/문제점 : “언론의 뉴미디어 산업은 단편적인 예로서 CTS의 제작시스팀의 설비 투자가 말해주듯이 엄청난 비용의 투자 없이는 하루 아침에 달성되기 어려운 일이다”라며 “비근한 예로 일본경제신문사의 뉴미디어 사업은 20년이 지난 오늘에야 손익의 분기점을 계산한다는 말이 장기적인 투자의 뒷받침이 절실하다는 것을 실감나게 한다”고 적고 있다.

[8월] 매일경제는 이 시기 전자출판시스템의 확산에 주목했다. 1989년 당해 전자출판시스템의 시장 규모가 600억원에 달할 만큼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매일경제가 주요 사업자들은 다음과 같다. 1988년 보도와 비교할 때 신명시스템이 추가됐다.

  • 기존 전산식자전문업체 : 한국컴퓨그래피, 서울시스템, 정주기기, 한국컴퓨터기술, 신명시스템
  • 컴퓨터 하드웨어 업체 : 현대전자, 쌍용컴퓨터, 엘렉스컴퓨터

이 기사에서는 당시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와 국내 신문사 및 출판사 간 관계를 파악해볼 수도 있다. 한국컴퓨그래피는 자체 개발한 한글, 한자 서체를 한겨레에 공급했다. 서울시스템은 스피드I 2000이라는 전산식자시스템을 자체 개발해 80여 출판 업계에 납품했다. 한국컴퓨터기술은 ASP300, ASP600 콘트롤러를 개발한 것으로 확인됐다.

동아일보는 당시 자매지인 과학동아의 시리즈물을 소개하면서 “과학동아 8월호는 컴퓨터가 이룩한 출판 혁명인 전자 출판을 특집으로 다루고 이를 활용, 신문의 조판까지 해내는 CTS 시스템을 소개했다”고 적었다.

경향신문은 같은 달 10일 신우식 언론연구원장 인터뷰 기사를 게재하면서 “CTS 도입 추진 등 언론계가 기술적, 외형적으로는 발전을 거듭했지만 언론인의 자질인 내용, 질적인 면에서의 발전은 더딘 편”이라는 신 원장의 발언을 인용했다. 기술의 속도와 언론인의 자질 사이에 편차가 발생하고 있음을 짐작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