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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와 오타쿠, 포스트모던 세대의 전면화

뉴미디어 뉴스/소셜미디어와 사회 2013/06/09 17:20 몽양부활

이성규 2019년 06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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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쿠들이 사회적 현실보다도 허구를 택하는 것은 양자를 구별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사회적 현실이 부여하는 가치규범과 허구가 부여하는 가치규범 중 어느 쪽이 그들의 인간관계에 유효한가, 그 유효성을 저울질 한 결과이다. 오타쿠들이 취미의 공동체에 갇히는 것은 그들이 사회성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적인 가치규범이 잘 기능하지 않아 다른 가치 규범을 만들 필요에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아즈마 히로키 (2007).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 57~58쪽)

거대 담론의 쇠락. 그리고 거대 담론을 구성했던 기성 세대의 도덕적 타락. 그런 거대 담론을 지탱했던 기성 세대의 근대적 가치 규범은 해체되고 사라지고 있다. 기성 세대의 모든 이야기들은 포스트모던 세대에게 거짓과 가식으로 인식된다. 그들은 하나의 사표로서 위상과 지위를 잃어버렸으며, 더이상 담론의 상징체계로 기능하지 않는다. 아즈마 히로키의 말을 빌리자면 기성 세대가 주조한 거대 담론의 기능부전이 새로운 문화의 탄생을 꾸준히 추동해왔다는 것이다.

디씨, 일베로 상징되는 한국의 인터넷 문화는 포스트모던적 요소를 여럿 갖추고 있다. 아즈마 히로키가 오타쿠 문화의 포스트모던적 특징을 설명하기 위해 동원했던 두 가지 요소. 즉 2차 창작의 존재와 허구 중시의 태도가 일베, 디씨 등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상징적 인물에 대한 패러디의 생산 및 확산은 2차 창작적 요소를 드러내며, 동시에 일베라는 허구적 공간에 대한 집착적 태도는 허구 중시의 일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보드리야르가 언급한 바와 같이 포스트모던 사회에서는 작품이나 상품의 오리지널과 복제의 구별이 약해져 그 어느 쪽도 아닌 시뮬라크르라는 중간 형태가 지배적인 상황을 이루게 된다.

기존 가치 규범의 기능 부전

일베로 상징되는 이용자들을 근대적 이데올로기의 프레임 속에서 해석하면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구석구석 노출된다. "이데올로기가 존재하지 않기에 세력화하기 어렵다"라는 류의 주장은 그 스스로 근대적 이데올로기의 관점을 채택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들에게 큰 담론으로서 이데올로기란 의미도 기능도 존재하지 않는다.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그들의 태도는 우익의 이데올로기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 스노비즘1적 태도에서 말이암은 것이라고 보는 편이 더욱 설득적이다.

이들의 탄생은 기존 가치 규범의 기능 부전에서부터 시작됐다. 거대 담론을 이야기하던 기존 세대들의 이면은 가식과 거짓, 비리와 퇴폐, 권위주의와 성차별 그리고 무능으로 점철돼있다. 민주화 세대는 목소리는 메시지이기보단 포스트모던 세대에게 그저 '꼰대의 떠들거림'에 불과하다. 그들의 담론은 그 존재의 모순성이 드러나면서 해체되고 쇠락하고 있다. 그들의 가치 규범은 더이상 사회적 규범으로서 기능할 수도 없고 기능하지도 못하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87년 세대의 종언론은 그런 점에서 시사적이다. 이제 더이상 이런 거대 담론조차 생산되지도 욕망되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거대 담론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여러 허구가 생산된다. 아즈마 히로키는 학생운동의 과격화 등이 거대 담론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한 허구 생산의 과정에서 만들어진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일베를 어디에 위치지울 것인가. 완전한 포스트모던 사회로의 이행 과정에서 겪게 되는 과도기적 현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기존 담론의 해체 과정에서 그 빈자리를 허구적 상징으로 메우려는 과정 위에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포스트모던적 특징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포스트모던 세대의 가장 큰 특징은 형식과 본질의 분리이다. 그리고 형식의 자기 증식성이다. 예를 들어보자. 민주화라는 기표가 존재한다. 이 기표는 민주주의의 역사 위에서 사회적으로 수렴된 기의가 존재해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민주화라는 기의가 변형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전효성의 민주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폭넓게 일베 등에서는 민주화라는 단어가 획일화로 통용돼왔다. 이는 곧 기표와 기의가 분리돼 기표 스스로의 자기 증식성을 갖추기 시작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일베에게 민주화라는 기표는 이런 방식으로 소비되며 증식된다.

이데올로기 아닌 대립 그 자체를 소비하는 세대

일부 진보적 커뮤니티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발견된다. 기표로 상징화되고 있는 인물은 그 인물의 본질을 떠나 기표로서만 소비되며 그 이미지 또한 스스로 증식된다. 시뮬라크르로서 그 인물은 이미 본질과 점차 거리가 나타나고 있다. 일베가 전두환을 소비하는 방식도 비슷하며 앞으로 증식과정이 지속된다면 전두환의 본질과 관계 없이 더 파괴적인 상징으로서 전두환이라는 시뮬라크르가 등장할지도 모른다. 형식과 내용의 분리, 기표와 기의의 분리라는 포스트모던적 현상을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포스트모던 세대는 끊임 없이 형식을 내용에서 분리해내면서 형식의 대립 관계를 소비하게 된다. 일베는 우익의 이데올로기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다. 온전하게 내용에서 분리해낸 상징 그 자체, 그로 파생되는 다른 집단과의 대립을 소비하는 것이다. 본질이 곧 대립인 것이다. 따라서 민주화의 정당성과 합리성 등을 설명해내는 것은 의미가 없다. 대립을 소비하기 위해 또다른 근거들이 동원될 것이며 그 과정에서 그들은 더 극단화된 상징 체계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 대립을 소비하기 위한 방식으로서 허구화된 상징의 증식은 필수적이다.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점은 그들은 오프라인에서 충분히 이성적이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충분히 똑똑하며 분별적이다. 다만 다층적 인식 구조를 내화한 경험들을 지니고 있다. 아즈마 히로키의 설명대로라면 "오타쿠들은 현실보다도 허구에 강한 리얼리티를 느낀다"고 한다. 일베 이용자들도 어쩌면 현실보다는 일베라는 가상의 공간 속에서 더 강한 리얼리티를 느끼고 있을지 모른다. 오프라인에서의 커뮤니케이션 부족을 바로 이 공간에서 메우게 되면서 더 강한 리얼리티와 자기 인격을 갖춰가고 있을지 모른다.

오프라인 조직의 가능성

다시 돌아오면. 일본 오타쿠의 경험에서 비춰보건데 일베의 오프라인 조직화 가능성은 결코 불가능하지 않다. 단일한 이데올로기가 조직화의 조건이라는 인식과 접근은 근대적 인식론을 탈근대적 대상에 끼워맞춘 오류의 결과물이다. 그렇다고 운동 세대만큼의 강고한 연대체로 대립을 소비하는 방식으로 오프라인에서 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에 따르면 실제로 오타쿠들은 타자와의 접촉을 피하기는커녕 인터넷 채팅이나 게시판, 현실 세계에서의 판매전이나 오프라인 모임 등을 통해 매우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을 전개하고 있다. 다만 이들의 사교성은 자신에게 유익한 정보가 입수되는 한에서만 유지되며, 동시에 커뮤니케이션에서 거리를 둘 자유 또한 항상 유보하고 있다. 즉 목적이 붕괴되면 약한 유대를 언제든 끊어버릴 수 있는 거리두기에 기반한 사교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조직화라는 개념과 다를 뿐이다.

일베 등으로 상징되는 인터넷 문화는 어쩌면 일본의 오타쿠 문화의 등장처럼, 거대 담론의 붕괴 과정에서 나타나는 포스트모던적 현상의 하나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들 세대를 이해하는 방식 또한 기존의 고루한 근대적 틀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고선 본질적으로 이 현상을 설명하기도 이해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해결책을 찾아내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한국적 포스트모던 세대의 등장을 서서히 인정할 때가 오고 있다.

  • 이 글은 독서 중 스케치 형식으로 휘갈겨 쓴 글입니다.

  1. 지적 허세를 부리려는 경향. 일종의 속물근성을 뜻하는 개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