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과 저널리즘

저널리즘-AI의 혼종과 기자의 업무 변화

강압된 기술 수용은 전통 기자들의 직무를 급격하게 변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이성규 2019년 06월 13일

닉 디아코풀로스의 ‘더컨버세이션’ 기고문은 기자들에게 여러 고민 거리를 안겨줍니다. 앞으로 기자들의 직무와 역할이 어떤 변화를 겪게 될 것인가에 대한 단초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이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기자 직무의 ‘혼종화‘(hybridization)이라고 저는 얘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일단 닉 디아코풀로스가 제시한 AI-저널리즘 결합의 시대 기자 역할의 3가지 유형은 다음과 같습니다.

기자 역량의 증강 : 닉은 보고, 청취, 응답, 취재원과의 협상 그리고 이를 업무를 통합하는 창의성 등은 가장 필수적인 저널리즘 직무임에도 AI가 수행할 수 없는 것들이라고 강조합니다. 기자들은 이 분야에서 증강된 역량을 발휘해 업무를 보다 빨리 그리고 효율적으로 나아가 품질 수준을 개선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뉴스룸은 언제나 그랬듯,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고 수용하는데 익숙했기 때문에 그 뉴스룸의 작업을 변화시킬 뿐 대체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새로운 직무 등장 : AP의 사례를 들고 있습니다. AP는 2017년 비전 인식 AI를 도입해 그들이 축적해둔 사진들의 메타데이터를 입력하는 작업(라벨링)을 자동화했습니다. 이것만 보면 사진 기자들의 역할이 줄어든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 메타데이터 관리를 위해 상당한 인력이 투입되고 있다고 합니다. 어떤 태그를 부여해야 할지, 어디까지 알고리즘에 맡겨야 할지, 테스트세트의 성과를 어떻게 측정하고 관리해야 할지, 더불어, 정확도를 꾸준히 감독하는 작업까지. 사람의 역할이 빠질 수가 없다고 이야기 합니다.

AP는 이러한 작업을 관리하기 위해 월 36명의 작업량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문제는 단순히 기술적 이해가 높다고 해서 관리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거죠. 이 자동화 관련 업무의 1/3은 저널리즘 전문성과 판단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합니다. 기자들의 역할이 오히려 넓어진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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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자동 콘텐츠 생산 및 관리 : 영국의 RADAR를 사례로 제시합니다. RADAR는 한 달에 약 8000건의 지역 뉴스를 생산해 제공하고 있는 뉴스 생산 기업입니다. 이 업무는 6명의 저널리스트들이 관장하고 있는데요. 이들은 기사를 작성하는 업무에 그치지 않고, 데이터를 가공하는 규칙을 만들어 이를 템플릿으로 만드는 작업에 관여합니다. 이 시스템 자체가 반자동 구조여서 기자들의 역할이 필수적인데요. 이 지점에서 기자의 직무는 일종의 혼종화한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선 기본적인 기사 템플릿을 설계하기 이해 기본 기사를 작성해야 하고, 각 조건별로 달라지는 문장과 문구를 정의하기 위해 일종의 조건문 코딩을 수행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기자이면서 동시에 얕은 수준의 개발지이기도 한 거죠.

이들이 사용하는 CMS의 스크린샷이 소개되고 있는데요. 보시면 알겠지만, 어떤 조건일 때 어떤 문장과 단어와 바뀌어야 하는지 일일이 템플릿 속에 정의를 해두고 있습니다. 쉽지 않은 인터페이스지만, RADAR 소속 기자들은 이제 익숙한 모양이라고 합니다. 이들에게 편집(Editing)은 각각의 조건문들이 제대로 기술됐는지 관리하고 감독하는 작업입니다. 우리가 알던 편집의 정의와 업무와는 다소 다를 수밖에 없죠.

한국 언론사에 주의는 함의 : 사실 한국의 언론사들이 기술과 관계맺는 방식을 보면, ‘선망함’-‘주저함’의 뒤섞임 상태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늘 새로운 기술에 관심을 보이면서도 이를 내재화하는데는 주저하는 태도를 보여왔습니다. CTS 기술을 둘러싸고 일본 신문들의 흐름을 면밀히 관찰하면서도 정작 이를 ‘자기것화‘ 하는 작업은 망설여왔습니다.

일부 선행 언론사들이 등장하면(예전 한국일보, 중앙일보) 그들의 추이를 보다가 뒤늦게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저작/조판 소프트웨어화를 보편적으로 수용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는 정부의 강력한 드라이브였습니다. 자생적 내재화가 아니라 강압적 내재화였던 거죠. 지금도 이러한 태도는 크게 변하지 않은 듯합니다. 군부 정권의 산업 기조에 호응하는 방식으로 기술을 내면화하는 안타까운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강압된 기술 수용은 내부의 적응 및 조정 작업을 거칠 여유가 없기 때문에 전통 기자들의 직무를 급격하게 변화시킬 가능성이 높습니다. 당연히 이 과정에서 실직과 같은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직무 변화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이런 흐름이 나타나기도 했고요. 네이버 의존성도 저는 비슷한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까 염려가 되곤 합니다.

자사의 상황과 조건에 맞는 기술 수용방식을 디자인하고 감당가능한 수준에서, 자사 필요의 정도에 따라 기술과의 적절한 관계맺기를 차근차근 이어간다면 노동 조건의 급격한 변동은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문득 이 글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