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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 포퓰리즘을 위하여'를 읽으면서

권력자들에 맞선 패배자들의 동원을 위한 담론 전략으로 포퓰리즘을 정

이성규 2019년 10월 05일

1. 포퓰리즘 계기

  • 라클라우는 자신의 책 '포퓰리즘 이성에 대하여'에서 사회를 두 진영으로 분리하는 정치적 경계를 구성하고, 권력자들에 맞선 패배자들의 동원을 위한 담론 전략으로 포퓰리즘을 정의한다. 포퓰리즘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며 그 속성으로 특별히 프로그램화된 내용을 가지고 있을 수도 없다.

  • 포퓰리즘은 정치 레짐도 아니다. 포퓰리즘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다양한 이데올로기 형태를 취할 수 있고 여러 제도적 틀과 적절히 결합될 수도 있는 정치 활동 방식인 것이다.

  • 포퓰리즘 계기는 빠르게 증가하는 불만족스러운 요구들로 인해 정치적 혹은 사회경제적 전환에 대한 압박에 처한 지배 헤게모니가 불안정해진 때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 제도들은 기존 질서를 지키면서 대중들이 계속해서 이것들을 따르도록 지켜내는데 실패하게 된다. (24)

  • 따라서 포퓰리즘 계기는 신자유주의 헤게모니 시대에 보인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전환들에 대한 다양한 저항의 표현이다. 이 전환들은 평등과 대중주권이라는 민주주의 이상의 두 축이 침식되는 상태를 지칭하는 포스트 민주주의라 불리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26)

  • 이 모든 경우(유럽에서 민주주의 의미)에 문제가 되는 것은 서로 다른 두 전통의 접합을 통해 특징지어지는 정치 레짐이다. 두 전통 중 하나는 법의 지배, 권력 분립, 개인의 자유 보호와 같은 정치적 자유주의 전통이고, 다른 전통은 평등과 대중주권이 중심 사상인 민주주의 전통이다.
  • 칼 슈미트와 같은 학자들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서로를 부정하기 때문에 이러한 접합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체제를 만들게 되었다고 단언한다. 위르겐 하버마스를 따르는 학자들은 자유와 평등 두 원리의 동시성을 주장한다.(28-29)
  • 데모스를 정의하고 자유주의 담론이 가진 추상적 보편주의에 대한 경향성을 전복시키기 위해서는 대중을 구성하고 평등주의적 실천을 수호하는 민주주의 논리가 반드시 필요하다. (30)
  • 자유민주주의의 역사를 다시 보게 되면, 우리는 어떤 경우에는 자유주의 논리가 우세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민주주의 논리가 우세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30)
  • 위 사안들은 오직 정치 레짐으로 그려지는 자유민주주의만을 고려한다. 하지만 이 레짐의 정치적 제도들이 결코 경제 시스템에 각각 각인된 채 독립해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 현 상태는 포스트 민주주의로 묘사될 수 있다. 왜냐하면 자유민주주의를 구성하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원리들 사이의 경합적 긴장이 최근 몇 년 동안 신자유주의 헤게모니가 만든 결과에 의해 제거되어 왔기 때문이다. 평등과 대중권력이라는 민주주의 가치들의 종말과 함께 사회의 여러 다른 기획들이 서로 대결할 수 있는 경합적 공간들은 사라져 버렸고, 시민들은 자신들의 민주주의 권리를 시행할 가능성을 박탈당해 버렸다. (31)
  • 자유 시장을 수호하는 경제적 자유주의가 점점 중심을 차지하고 있고, 정치적 자유주의의 다양한 측면들은 제거되어 버리거나 뒷자리로 떠밀려져 나가게 됐다. 이것이 내가 포스트 민주주의라고 의미하는 바이다. (32)
  • 탈정치 속에서 유일한 것은 중도우파와 중도좌파 정당들 사이 양당 교체일 뿐이다. 중도적 합의 그리고 신자유주의 지구화에 대한 대안은 없다는 신조에 반대하는 모든 사람들은 극단주의자로 보이거나 포퓰리스트로서 정치적으로 실격하게 된다. (32)
  • 민주주의 이상의 근본적인 상징의 두 축 중 하나인 대중 권력은 그 기반이 약해졌다. 왜냐하면 탈정치가 대중주권 시행을 위한 핵심 조건인 사회의 여러 다른 기획들간 경합적 투쟁의 가능성을 제거해 버렸기 때문이다. (33)
  • 포퓰리즘 계기가 파악돼야 하는 지점은 바로 대중주권과 평등이라는 민주주의 이상이 침식되고 있는 포스트 민주주의 상태이다. (중략) 포스트 민주주의 합의에 맞선 대부분의 정치적 저항은 처음에는 우익들에게서 시작됐다. (34)
  • 이 우파 포퓰리즘 정당들은 대중과 기성 정치권 사이 경계를 설정하면서, 지배 합의로부터 배제되었 다고 느끼는 대중적 요구들을 민족주의적 언어로 해석해냈다. (34)
  • 포데모스 전략은 기성 엘리트와 대중 사이에 경계를 설정하면서 대중적 집합 의지를 만드는 전략이었다. 이 전략은 우익 세력인 스페인 인민당을 정부에서 제거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포데모스 당원들은 국회에 입성할 수 있었고 여기에서 상당수의 우익 세력을 물러나게 할 수 있었다. (38)
  • 물론 중도좌파 세력들을 위해서 우파 포퓰리즘 정당들을 극우 또는 네오파시스트로 분류하고 그들의 호소 방식을 제대로 교육 받지 못한 수준으로 돌리는 것이 편리한 방식일 수는 있다. 중도좌파가 우파 포퓰리즘 정당들의 출현에 대한 자신들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서 이 정당을 비하하는 것은 쉬운 방식이다.(39)
  • 양당 합의에 대한 적들을 악마화하는 이런 전략은 도덕적으로는 위안이 되겠지만 정치적으로는 권력을 잃게 만드는 것이다. (39)
  • 우파 포퓰리즘 정당의 출현을 막는 데 필요한 것은 포스트 민주주의에 맞선 모든 민주주의 투쟁들을 연합시키는 좌파 포퓰리즘 운동을 통해서 적절한 정치적 대책을 구상하는 것이다. 우파 포퓰리즘 정당 지지 유권자들을 충동적인 욕정으로 움직이고 그 욕정에 영원히 사로잡힌 자들로 몰아세우면서 이들을 미리 배제하는 대신, 이들의 수많은 요구들 한 가운데 있는 민주적 핵심을 찾아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40)
  • 좌파 포퓰리즘 접근은 이러한 요구들이 보다 더 평등주의적인 목표로 향할 수 있도록 다른 언어로 표현하는 법을 찾아야 한다. (40)
  • 나는 다른 언어가 만들어질 수 있다면 많은 사람이 다른 방식으로 자신들의 상황을 경험하면서 진보적 투쟁에 함께 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 (40)
  • 이러한 좌파 포퓰리즘 전략이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몇 가지 사례들이 이미 존재한다. 예를 들어, 2017년 프랑스 입법 선거에서 멜랑숑을 비롯하여 프랑수아 뤼팽과 같은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의 여러 후보들은 이전 선거에서 마리 르팬을 지지했던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41)
  • 우파 포퓰리즘의 승리는 민주주의를 회복시킨다는 구실과 달리 사실은 민주주의를 철저히 제약하는 신자유주의의 국민주의적인 권위주의 형태로 이어질 수 있다. (43)
  • 좌파 포퓰리즘 전략은 과두제라는 공동의 적과 맞서는 우리, 대중을 구성하기 위해 민주주의 요구들을 집합의지로 연합시키려 한다. 물론 LGBT 공동체의 요구들과 같은 또 다른 민주주의 요구들과 함께 등가사슬을 형성해야 한다. 이와 같은 등가 사슬의 목적은 민주주의의 급진화를 가능하게 할 새로운 헤게모니를 창출하는 것이다. (43)

2 대처주의의 교훈

  • 그러나 1970년대 전반기 동안 경제 성장의 둔화와 상승하는 인플레이션은 케인즈식 타협의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1973년 석유 위기의 영향 아래에서 경제는 고통에 처했고, 이윤은 감소했으며 전후 사회민주주의적 정착점들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47)
  • 우파의 공세에 대항하기위해 우리는 노동당이 자신의 코포라티스트 정치의 단점을 인정하면서 사회적 기반을 확장해야 하고, 신사회 운동들이 키운 노동당 비판자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신사회운동의 요구들은 노동 계급의 요구들과 함께 수용되어야 하는 것들이었다. (50)
  • 우리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민주주의 원리들은 보다 폭 넓은 사회적 관계들로 확장하려는 헤게모니 기획만이 위기에 대한 진전된 결과를 제공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50)
  • 그녀(마거릿 대처)의 전략은 분명 포퓰리즘 전략이었다. 그 전략은 한쪽에는 억압적 국가 관료들, 노동조합, 그리고 국가의 무상 지원으로 이익을 취하는 사람들을 동일시하는 체제 세력, 그리고 다양한 관료 세력과 이들의 여러 동맹 세력에 의한 희생자들인 성실한 '대중' 사이에 정치적 경계를 구성하는 데 있었다. (51)
  • 마거릿 대처는 정치적 경계를 단단히 설정하면서 사회민주주의 헤게모니의 주요 요소들을 해체하고 대중적 합의에 기반을 둔 새로운 헤게모니 질서를 수립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정치에 대한 본질주의적 관점을 가지고 있는 노동당 정치인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52)
  • 대처가 영국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성공적으로 시행할 수 있었던 것은 복지국가를 시행해 왔던 집산주의적이고 관료주의적인 방식에 대한 거부감을 활용한 그녀의 능력 때문이었다. (53)
  • 하이에크에 따르면, 자유주의 사회에서 민주주의라는 관념은 개인의 자유라는 관념보다 부차적이기 때문에 경제적 자유와 사적 소유에 대한 방어는 특권적 가치로서의 평등에 대한 방어를 대체할 수 있다. -중략- 몇 년 후 하이에크는 민주주의의 폐지를 제안하는 극단적 입장에까지 이르기도 했다. (54)
  • 이 상식 속에서 노동당은 토니 블레어를 내세워 1997년 재집권했을 때조차 신자유주의 헤게모니에 도전하려 하지 않았다. 홀이 보여준 것처럼 확실히 신노동당의 담론을 보면 대처주의의 모든 핵심적인 담론 요소들을 발견하게 된다. (55)
  • 대처주의 이데올로기가 토리당의 보수적 주제들과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들의 조합이었던 반면, 이후 헤게모니를 장악한 신자유주의는 전통적인 보수주의 이데올로기에서 멀어져갔다. 포드주의에서 포스트 포드주의로의 이행과 연결된 자본주의 조절 양식의 전환에 대응하기 위해 신자유주의 헤게모니 구성체는 몇 가지 대항문화 주제들을 수용했다.(57)
  • 이것은 놓칠 수 없는 기회이기에 나는 이 국면에서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를 예상하면서 대처의 전략으로부터 배우기를 제안한다. (59)
  • 이것이 바로 좌파가 과거의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되는 매우 중요한 이유이다. 좌파는 헤게모니 차원을 파악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본질주의적 정치 구상을 반드시 내려놔야 한다. 시급히 필요한 것은 '대중'을 구성하기 위한 좌파 포퓰리즘 전략이며 이것은 보다 민주적인 헤게모니 구성체를 세우기 위해 포스트 민주주의에 맞서는 다양한 민주적 저항들을 담아 내야 한다. (61)
  • 그러나 나는 유럽 사회에서 자유민주주의의 레짐들을 파괴하지 않고서도 기존 헤게모니 질서를 전환시킬 수 있다는 것을 대처주의가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61)
  • 대처주의로부터 배운다는 것은 중도 우파와 중도 좌파 사이 탈정치 합의와 단절하는 정치적 경계를 세우기 위한 결정적 움직임이 현 국면에 존재한다는 것을 깨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적자를 정의하지 않고서는 어떤 헤게모니적 공세도 시작할 수 없다. 이것은 바로 신자유주의로 전환된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만들어낼 수 없는 단계이기도 하다.(62)
  • 그러나 이 인식은 그들이 여러 적대가 존재한다는 것을 철저히 부정하고 중립적 영역에 있는 엘리트들 사이의 경쟁으로 정치를 환원시키는 자유주의적 사고를 받아들이게 했다. 나는 헤게모니 전략을 상상해 낼 수 없다는 것이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의 가장 큰 약점이라고 생각한다. (63-64)
  • 또한 코빈이 이끌면서 당원수가 크게 늘어난 노동당은 많은 정치학자들이 주장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전통적 형태의 정당이 아직 한물간 것은 아니며 재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65)

3 민주주의를 급진화하기

  • 이 기획의 중요한 차원은 보다 정의로운 사회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자유민주주의 제도를 내려놓고 완전히 새로운 정치체, 새로운 정치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는 일부 좌파 세력들의 신념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68)
  • 나는 바로 이러한 내재적 비판 속에서 좌파 포퓰리즘 전략이 포스트 민주주의에 개입하여 도전하고 평등과 대중주권이라는 민주주의의 가치의 중심성 또한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68)
  • 대부분의 이 저항들은 금융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직접적인 거부 형태를 취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특권화시키는 정책을 시행해 온 듯한 기성 엘리트들에 대한 고발 형태를 취한다는 것에 주목할 만하다. 따라서 바로 민주주의 언어를 통해서 많은 시민들은 자신들의 저항을 접합시킬 수 있다. (69)
  • 내가 볼 때 좌파 포퓰리즘 전략을 민주주의 전통에 각인시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움직임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대중적 열망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적 가치들을 연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69-70)
  • 권력 관계에 맞선 투쟁은 물론 이 투쟁들이 드러나는 형태에서 중립적이거나 당연한 것은 없다. (71)
  • 더 중요하게도 자유와 평등은 구체적인 해석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는 여러 다른 헤게모니 구성체에 각인된 형태로 존재할 뿐이다. 헤게모니 구성체란 경제, 문화, 정치 그리고 사법의 차원에서 서로 다른 본질들이 가진 사회적 실천들의 배열이다. (73)

  • 분명 민주주의는 평등권, 생산 수단의 사회적 전유, 그리고 대중주권과 접합될 때, 시장자유, 사유재산, 그리고 규제 없는 개인주의와 접합될 때와는 전혀 다른 정치를 이끌어 나갈 것이며, 전혀 다른 사회경제적 실천들을 특징지을 것이다. (74)

  • 좌파 포퓰리즘 전략은 입헌적 자유-민주주의 틀 안에 새로운 헤게모니 질서를 구축하려는 것이지, 다원적 자유민주주의와의 급진적 단절, 그리고 완전히 새로운 정치 질서의 구축을 목표로 하는 것은 아니다. (75)
  • 보통 좌파로 이해되는 것의 스펙트럼 내에는 정치가 세가지로 나눠질 수 있다. 첫번째는 순수 개혁주의이다. 이 것은 자유민주주의의 합법성 원리와 기존 신자유주의 헤게모니적 사회 구성체 모두를 수용한다. 두번째는 급진적 개혁주의다. 이것은 합법성 원리를 수용하지만 전혀 다른 헤게모니 구성체를 실행하려 한다. 마지막으로 혁명적 정치는 기존 사회 정치 질서와의 총체적 파열을 추구한다. (76)
  • 목표는 국가 권력의 장악이 아니라 그람시가 말한 대로 '국가가 되는 것'이다. 이 관점에 따라 급진적 정치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78)
  • 흔히 주창되는 것과 반대로, 좌파 포퓰리즘 전략은 극좌의 아바타가 아니라 민주주의 회복과 급진화를 통해 신자유주의와의 파열을 그려 내는 전혀 다른 방식이다. 신자유주의 질서에 대한 모든 비판에 극좌라는 꼬리표를 붙이면서 이 비판들이 민주주의에 위험한 것으로 보이게 하는 현 상태 수호자들의 최근 동향은 기존 헤게모니 질서에 대한 모든 도전을 막아 내려는 음흉한 시도이다. (79)
  • 분명한 것은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 사이 필연적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마크르스주의는 자유민주주의가 자본주의의 상부 구조라는 혼란을 초래하는 데 기여했다. 진정 유감스러운 것은 이런 경제주의적 접근이 자유주의 국가를 파괴하려는 일부 좌파 세력들 사이에서 여전히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80)
  • 오늘날 광범위한 민주주의 요구들을 진전시킬 수 있게 되는 곳은 바로 자유주의 국가에 있는 원리들 - 권력 분산, 보통 선거권, 다당제, 시민권 - 의 틀 안에서이다. 포스트 민주주의에 맞서 싸우는 것은 이 원리들을 철회하는 것이 아니라 급진화시키는 것이다. (80)
  • 민주주의를 급진화하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반자본주의 차원을 포함한다. 반드시 도전받게 될 수많은 종속 형태들은 자본주의 생산 관계의 결과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자본주의 투쟁에서 노동 계급이 선험적인 특권적 역할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80)
  • 대중이 동원될 수 있는 지점은 바로 반자본주의의 이름이 아니라 그들의 실제 열망과 주체성을 언급하는 민주주의 가치들 사이에 있다. 심지어 데이비드 하비와 같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와 같은 관점에 동의하는 듯하다.(81)
  • 극좌들의 근본적인 실수는 항상 이것을 무시해 왔다는 것이다. 그들은 대중이 현실에서 어떻게 존재하는지가 아니라 자신들의 이론에 어떻게 따라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한다. (82)
  • 좌파 포퓰리즘 전략의 목표는 집권하는 다수 대중을 만드는 것이며, 진보적 헤게모니를 구성하는 것이다. 이것이 어떻게 발생하는지에 대한 청사진이나 최종 목적지란 존재하지 않는다. 대중이 구성될 등가사슬은 역사적 환경에 달려있다. 그 동학은 참조해야 할 모든 맥락들로부터 고립되어 결정될 수는 없다. (82-83)
  • 어쩌면 노베르토 보비오가 자유민주주의 제도들과 여러 사회주의적 특성들을 가진 경제적 틀을 결합시킨 사회구성체를 지칭하기 위해 사용한 '자유사회주의'가 적절한 용어일지도 모른다. (83)
  • 보비오는 사회주의를 국가와 경제의 민주화로 이해하면서 사회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접합에 대한 몇몇 연구를 통해 민주적 사회주의가 일종의 자유사회주의가 되어야 함을 주장한다.(84)
  •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자본과 노동 사이 전후 협약 모델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모델은 더는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민주주의 요구들을 고려해 보면, 환경 보호는 분명 전후 모델로 되돌아가는 것이 가능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이다. (84-85)
  • 다음 장에서 주장하겠지만, 급진 민주주의 기획은 생태적 위기의 도전을 받아들이면서 생태적이고 사회적인 질문들을 접합시켜야 한다. (85)
  • '경합적인 것들'에서 나는 이 관점을 비판하면서 우리는 대의제 민주주의 '그 자체'의 위기가 아니라 이 대의제 민주주의가 최근 포스트 민주주의의 화신이 되어 버린 위기에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주장했다. 이 위기는 경합적 대결이 없기 때문이며, 해결책은 비대의제 민주주의를 세우는 것에 있지 않다. 의회를 넘어선 투쟁만이 민주적 진전을 만드는 수단이라는 사고와 대결함녀서 나는 마이클 하트와 안토니오 네그리가 옹호한 도주와 탈출 전략 대신 필요한 것은 국가와 대의제 제도 그리고 이 모두를 완전히 바꾸고자 하는 목표에 대한 참여 전략이라고 주장했다. (86)
  • 그들에 따르면 따라서 공유재의 원리 위에 세워진 사회는 이미 정보화 과정과 인지 자본주의의 발전을 통해 진화하고 있다. (88)

  • 공유재에 대한 이러한 칭송이 가진 중요한 문제는 가시적인 다양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다른 많은 이론가들의 연구에서도 발견되고 있는데, 이 문제는 부정성과 적대에서 벗어난 다양체에 대한 구상을 상정하다 보니 사회 질서가 가진 필연적으로 헤게모니적인 본질을 인식할 수 있는 여지를 공유재에 대한 칭송이 만들지 못한다는 것이다. (89)

  • 내가 반복해서 주장해 왔듯이 다원주의를 조화로운 반(저항)정치적 형태로 파악하지 않고, 언제나 적대가 존재할 가능성을 인정하는 다원 민주주의 사회는 대표성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90-91)

  • 기존 대의제가 가진 주요 문제는 진동하는 민주주의의 중요한 조건인 사회의 여러 다른 기획들 사이 경합적 대결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민들의 목소리를 빼앗는 것은 대표성 그 자체가 아니라 바로 이 경합적 대결의 결핍인 것이다. 해결방안은 대표성을 제거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제도를 더욱 대표적이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 좌파 포퓰리즘 전략의 목표인 것이다.(91)

4 대중의 구성

  • 왜냐하면 국가는 시민들이 정치 공동체 조직화를 결정할 수 있는 공간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정말로 국가는 대중주권이 실행될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이것은 경합적 대결의 조건이 존재한다는 것을 상정하고 있으며 이것이 바로 신자유주의 탈정치 합의와의 단절이 반드시 이뤄져야 하는 이유이다. (106)

  • 국가만이 개입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은 아니다. 따라서 정당과 운동 사이 대결 또는 의회 투쟁과 비의회 투쟁 사이 대립은 거부되어야 한다. -중략- 그러나 대의제가 중요한 역할을 유지하거나 회복해야 하면서도 새로운 민주적 참여 형태가 민주주의의 급진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107)

몇 가지 고민들과 활용들

  • 검찰을 이기는 방법은 그들을 기득권과 적대세력을 만드는 것. 특히 20대들의 정동을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는 검찰 간부들의 자녀들을 하나하나 파헤쳐 그들이 기득권의 정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

  • 검찰개혁을 누차례 대통령이 언급할 때, 반드시 정치적 경계를 분명히 하는 다른 정책적 아젠다를 동시에 거론할 수 있도록 설득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조국에 적대적인 50%~60% 강고한 집결을 느슨한 상태로 이완시키기 위해 대입 또는 취업, 부동산 문제에서 포퓰리즘적 정치적 경계(대중/다수 중심성)를 뚜렷하게 하는 전략을 구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조국의 수렁에 빠져들지 않기 위함이기도 하다.)

  • 좌파 포퓰리즘 전략은 확정된 사회구성체로서의 어떤 방향을 설정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사회주의로 나아가자'라는 목적지를 설정하는 것이 아니라 헤게모니 전략으로서 대중을 중심에 세우는 전략으로 파악된다. 일종의 '결과로서의 정치 전략'이 아니라 '과정으로서의 정치 전략'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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