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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의 원칙으로서 관용, 그리고 불관용의 범위

View of 몽양부활/세상을 보는 창 2014/09/16 11:49 몽양부활

이성규 2019년 10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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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사상 기반의 행위에 대한 불관용이 타당할 수도 있는 이유

불관용을 관용하면 불관용이 잔존하게 되고
불관용을 불관용하면 그 자체가 불관용이 된다.
불관용을 관용하든, 불관용을 불관용하든, 불관용의 성립을 부정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따라서 불관용의 불관용이라는 조건이 전제되지 않는 관용은 그저 공허한 의미에 불과하게 된다. 이는 '모든' 것이 관용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의미일 게다.

관용의 딜레마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출구는 불관용의 범위와 한계를 명확히 정립하는 것이다. 불관용의 불관용이라는 원칙 속에서 불관용의 범위를 사회적으로 정의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이는 다시 관용이라는 단어와 의미 또한 사회적으로 구성됐고 역사성을 지니며 사회와 상호작용한다는 인식을 필요로 한다. 이 같은 맥락에서 관용의 범위는 정치적 차원, 사회적 차원, 문화적 차원에서 검토돼야 하며 개별 국가 간 정치, 사회, 문화적 토대 위에서 합의 체계 속에서 정의되고 논의돼야 하지 않을까.

이런 차원에서 유네스코 국제규범 '관용의 원칙에 대한 선언'을 인용하자.

"1.3 관용은 인권, 다원주의 (문화적 다원주의를 포함), 민주주의, 법의 지배를 지지하는 책임감이다. 그것은 독단주의와 절대주의에 대한 거부를 뜻하며 각종 국제적 인권문서들이 정해 놓은 기준을 확인하는 것이다." 

현 시점에서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전체주의적 사상까지 관용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독단주의와 절대주의는 사상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관용되고 보호받을 수 있는 영역 밖이라는 의미일 테다. 유네스코 차원에서도 이처럼 관용의 대상으로 제한하고 있으며, 무한대의 관용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볼테르가 직접 말한 바 없음이 증명된 "I disapprove of what you say, but I will defend to the death your right to say it.(나는 당신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당신이 그런 말을 할 권리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우겠다.)"라는 문구를 끊임 없이 남발하며 (주체사상 기반의 행위에 대한) '무한대의 관용' '불관용의 부재'를 설파하는 논리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진보 진영 내부에서 사상의 자유와 관용을 두고 벌이는 설전 또한 이런 맥락에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남는 찜찜함 : 불관용은 누가 정의하는가

물론 경계해야 할 지점이 존재한다. 관용은 서구 자유주의적 전통 속에서 주조됐다. 웬디 브라운(Wendy Brown)은 자유주의적 관용 담론이 내세우는 중립성의 신화가 허구적임을 비판하는 것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서, 문명 담론과 결합한 관용 담론이 국민국가의 경계 안 과 밖을 가로지르면서 관용적인 ‘주체’와 불관용적인 ‘타자’를 정치적으로 구성한다고 비판한다.(공진성, '제국과 관용 : 보편주의의 정치성에 대하여' 재인용)

존 롤즈가 평등의 범위를 설정하면서 "적정 수준의 인민"이라고 (정치적으로) 제한했던 것처럼 관용은 불가피하게 '적정 수준의 불관용'에 대한 정치적 설정을 요구한다. 그렇다면 적정 수준의 불관용은 누가 정의할 것인가.

불관용의 범위는 특권화된 주체 의해 범주화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자크 데리다는 이러한 이유로 관용 자체를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으로까지 나아간다. 반면 하버마스는 이러한 견해를 경계한다.

"하버마스는 관용이 민주적인 공동체의 맥락에서 실행에 옮겨진다면 얼마든지 옹호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민주적인 공동체의 맥락에서 시민들이 서로 상대방에게 평등한 권리를 부여한다면, 그 누구도 관용되어야 할 대 상의 경계를 일방적으로 설정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질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제국과 관용 : 보편주의의 정치성에 대하여', p.552)

결론

이석기를 비롯한 주체사상 대한 불관용의 범위 설정과 관련해 나는 하버마스의 견해에 동의한다. 민주적인 공동체의 합리적 합의에 의해 설정한 불관용의 범위는 존중돼야 하며, 이석기 등을 위시한 NL 계열이 신봉하는 주체사상 기반 행위에 대한 불관용은 현재 한국 사회 내에서 민주적 숙의되어 내려진 선택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주체사상이 지닌 전체주의적 요소, 독단주의, 패권적 위험성 등을 우리 민주적 공동체가 누적된 경험과 합리성을 통해 불관용의 대상으로 설정해왔다고 판단하기에 그렇다. (만약 이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주체사상 기반 행위에 대한 불관용 주장은 무너지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