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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스트타업과 수용자 주도 모델

뉴미디어 뉴스/미디어 스타트업 2018/09/03 16:40 몽양부활

이성규 2019년 10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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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써봅니다. 개인적으로 Audience Driven Media라는 표현을 종종 사용합니다. 수용자 퍼스트라는 뭔가 작위적인 표현대신, 그것의 속성이 잘 드러나고 방향성이 분명한 이 표현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미디어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에 근무하는 업이다 보니, 제법 많은 창업자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들의 사업계획서를 접하고 코멘트하고 심사하는 작업이 반복됩니다. 그럴 때마다 강조하는 주안점이 있다면 9할은 오디언스입니다.

미디어 산업에 종사하다 보면 “국내 미디어 생태계의 문제가 뭘까요?”라는 질문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그만큼 국내 미디어 생태계에 묵힌 문제들이 많다는 의미가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이 질문은 한 가지를 간과하는 사고 프로세스로 이어지게 합니다. 바로 수용자 배제입니다.

국내 미디어 생태계에 대한 질문은 통상 미디어 산업의 기존 행위자에 초점을 둔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성 언론의 수익 모델 부재가 문제다’, ‘포털과 관계가 문제다’, ‘저널리즘 의식을 내팽개치는 관행이 문제다’ 등등 대부분이 생산 행위자로 귀결되는 사유의 경로를 밟게 됩니다. 기존 생산자의 비합리적인 관행과 불균등한 권력 관계, 새로운 수익모델에 대한 고민의 부재와 같은 얘기들로 곧 뻗어나가게 됩니다. 당연히 수용자는 여기에 끼어들 여지가 별로 없습니다.

산업 중심적 질문에서 오디언스 중심 질문으로

적지 않은 미디어 스타트업도 이렇게 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국내 미디어 산업의 문제를 직시하면서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합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수용자는 빠져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공급자, 생산자의 관점만을 강조하며 그것의 해결 방안에 집중하게 됩니다.

저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고 봅니다. “국내 미디어 수용자는 현재 어떤 문제에 봉착해 있을까요?”라고 말이죠. 조금더 확장한다면 “국내 미디어 수용자는 현재 어떤 콘텐츠 및 콘텐츠 서비스를 필요로 할까요?”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이 질문은 산업의 관점에 우선 두지 않습니다. 오디언스, 즉 수용자의 문제에 더욱 관심을 갖도록 유도합니다.

산업과 수용자의 행태가 분리될 순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미디어 스타트업을 시작하려는 팀이건 미디어 산업 종사자건, 수용자의 변화와 흐름에 더 많은 고민의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수용자의 변화를 분석하지 않으면, 그에 걸맞는 구체적인 해결방안과 대안을 설계할 수가 없어서입니다.

수용자와 고객의 일치하는 시장으로서 미디어

미디어 산업은 수용자와 고객이 동일한 시장의 성격으로 서서히 변화하고 있습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수용자가 고객으로 전환되는 형태로 많은 부분 전환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수용자의 부분집합으로서 고객, 그것이 현재의 특성으로 보입니다. 참고로 고객은 돈을 내는 수용자를 의미합니다. 구독모델(Subscription), 조금더 넓게는 오디언스 중심의 수익 모델(Audience Revenue Model)이 요즘은 필수적으로 검토되는 수익원입니다.

이 모델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콘텐츠 자체의 기획부터 콘텐츠를 전달하는 방식, 유통하는 서비스 모두가 오디언스 중심으로 설계되고 제공돼야 합니다. NPR의 가설 기반 설계 방법론이나 뉴욕타임스의 ‘제품 발견 액티비티 가이드‘도 뜯어보면 오디언스 중심 모델을 근간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스토리의 기획부터 서비스 제공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이 오디언스 중심성 위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오디언스 오디언스 오디언스

사실 오디언스는 어떤 분할선을 따라 나누느냐에 따라 성격이 매우 달라집니다. 이를 고객 세그먼테이션이라고들 부릅니다. 연령, 성별, 성격, 지역, 소득, 직장/직종 등에 따라 다양한 축으로 분할해낼 수 있습니다. 그들마다 필요로 하는 콘텐츠가 다르고 스토리텔링의 형식이 다르고, 제공되는 서비스의 형태도 다릅니다.

이렇게 다양한 수용자들의 분할면들이 존재하는데, 그들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그렇게 싶지 않아 보입니다. 기성 미디어건 미디어 스타트업이건 그들의 고객이 되어줄 오디언스에 대해서는 생각 이상으로 무관심합니다. 저는 이를 공급자 관성이라고 얘기하는데요. 저는 이 문제가 그릇된 질문에서 자꾸만 출발하려고 하는데서 비롯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저널리즘의 소명의식은 수용자와 필요, 그들이 당면한 문제와 만났을 때 비로소 빛을 본다고 생각합니다. 소명의식이 너무 앞서게 되면, 수용자들이 관심 없는 결과물을 반복적으로 양산하게 됩니다. 관심 없는 사안이라도 전달 방식과 접근 방식이 달라지면 관심을 가지게 될 수도 있는데, 이 가능성을 차단하는 장애물이 공급자 관성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디언스의 관점을 투영시킬 층위도 다양합니다. 뉴스나 콘텐츠의 주제일 수도 있고, 내러티브일 수도 있고, 배열 방식일 수도 있고, 유통 전략일 수도 있습니다. 이 어느 과정에도 오디언스의 필요와 바람이 녹아있지 않다면, 자족적 행위에 다름 아니라고 보고 있습니다.

세상을 놀래킬 만한 기발한 아이디어는 머릿속 상상을 통해서 도출되는 결론이 아니라는 것이 평소의 생각입니다. 오디언스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수정과 보완을 거치고 또 뒤엎으면서 만들어진, 장인의 손때 묻은 부산물이라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누구보다도 좁은 범위의 표적 오디언스를 제대로 깊이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들의 24시간을 분석해야 하고,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들여다봐야 하며, 그들이 콘텐츠나 제품을 소비하는 행태의 다면성을 꿰뚫고 있어야 합니다.

참 어려운 과정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 시시각각 변화하는 이들의 습관을 주기적으로 조사하고 관찰도 해야 합니다. 그것이 미디어 스타트업의 숙명이고, 미디어 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업입니다.

대부분의 스타트업 멘토들, 혹은 관련된 서적들이 고객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그들을 중심으로 제품을 설계하는 방법을 제안합니다. 미디어 스타트업이라고 다를 순 없습니다. 오디언스 중심 미디어, 그것이 저는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