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주최한 '저널리즘 주간'에서 '대화로서 저널리즘 전략 - 형식'에서 발표했던 내용을 글로 풀어쓴 것입니다.


저널리즘은 대화입니다. 제 책 '사라진 독자를 찾아서'에도 그렇게 언급했습니다. 이 의미를 이해하는 게 쉬울 수도 있고 어려울 수도 있을 겁니다. 단순하게는 강연이 아니라 대화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방성과 쌍방성의 차이입니다. 수용자를 향해서 일방적으로 내뱉는 목소리가 아니라 수용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눈빛을 주고받으며 상호 이해한다는 측면에서 대화인 것입니다.

타르드는 이렇게 쓴 적이 있습니다. "저널리즘은 민주적 행위를 가능하도록 만드는 대화를 촉진하는 것이다"라고요. 그렇습니다. 저널리즘은 수용자와의 대화이면서 동시에 수용자끼리의 독자를 촉발시켜야 합니다. 워치독은 여러 저널리즘 역할과 기능 중 하나입니다. 그것이 저널리즘의 본질과 맞닿으려면 감시의 결과물이 수용자들의 대화를 이끌어내고, 그걸 바탕으로 민주적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현명한 결정을 내리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것이 저널리즘의 궁극적인 존재 이유입니다. 그래서 또 대화입니다.

대화는 참 어렵습니다. 저는 원만하게 대화를 하려면 3가지의 요소가 충족돼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대화의 태도, 대화의 형식, 대화의 내용이 그것입니다. 대화는 상대방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ㄱ. 대화의 태도 :  대화는 상대가 존재합니다. 대화가 성립되려면 서로 언어가 맞아야 합니다. 그래서 눈높이가 중요합니다. 다른 언어를 구사한다면 번역이 필요하죠. 다른 언어권에만 적용되는 게 아닙니다. 같은 언어권이라도 사회적 언어는 다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의 프로토콜을 맞춰야 합니다. 그것을 저는 대화의 태도라고 가정합니다.

ㄴ. 대화의 형식 : 동일한 언어와 용어를 사용한다더라도 대화가 종종 막힐 때가 있습니다. 말하는 투가, 이야기하는 꼴이 지루하거나 지나치게 길거나 하면 대화는 곧 중단됩니다. 상대가 선호하는 말하기의 형식, 이야기의 형식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야기의 포맷이라고 해야 할까요? 저는 그것을 대화의 형식이라고 생각합니다.

ㄷ. 대화의 내용 : 정말 중요합니다. 상대가 관심이 없는 얘기를 꺼내면 곧 대화 상대를 고개를 돌릴 겁니다. 아니면 졸겠죠. 그래서 대화를 하려면 먼저 상대방을 알아야 하고, 그들의 관심을 이해해야 합니다. 대화 상대의 주의를 끌기 위해 음악이냐 스포츠 등도 미리 배워놓는 예의가 필요한 것도 다 이 때문입니다. 내용은 대화를 끌고나가는 힘이기에 반드시 내용에 신경을 써야만 합니다.

수용자의 변화와 수용자 파업

저널리즘이 대화라는 걸 인식했더라도 고려해야 할 게 또 있습니다. '수용자의 변화'입니다. 변화의 폭이 너무 커서 감당하기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제가 존경하는 파블로 보즈코브스키 교수는 수용자의 변화와 관련해 아래와 같이 말한 적이 있습니다.

"수용자들은 예전보다 집단적(tribal)이고, 표현지향적이며, 감정적이고, 회의적인 것같습니다. 적어도 미국 전역의 많은 뉴스룸과 강의실에서 그들에 대한 정식 담론에서 가정했던 것보다 더 그런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집단적 혹은 부족적이고, 표현지향적이다. 게다가 감정적이면서 회의적이다. 이 말만 들어도 어질어질 하실 겁니다. 전 한국의 수용자들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저널리즘이나 뉴스에 대해 미국의 수용자들보다 더 회의적인 태도를 가진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너무 회의적이어서 뉴스를 조롱하기까지 할 정도죠.

저는 이러한 상태를 '수용자 파업'이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파업은 고용 관계에서 사측이 노측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서 합법적으로 감행하는 일종의 저항입니다. 지금 한국의 수용자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수용자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저널리즘 진영에 '우리의 요구를 제발 좀 들어달라'라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덜편향적이고, 가르치려하지 말고, 투명하고 심층적으로 현상을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제목낚시 그만하고, 알 가치가 없는 내용을 비중있게 다루지 말아달라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수용자들의 이러한 요구들은 계속 외면받았습니다. 거절 당했습니다. 결국 수용자들은 파업을 선택했습니다.

기자집단을 조롱하고, 뉴스를 신뢰하지 않으며, '기레기'라는 멸칭을 반복적으로 구사합니다. 온갖 악플을 달아 모욕을 주고 있습니다. 그들만의 저항 방식입니다. 저는 저널리즘을 생산하는 기자 집단이 수용자들의 요구를 외면해온 오랜 시간이 이러한 태도를 만들어냈다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저널리즘을 대화라는 사실을 망각한 상태가 수년 이상 지속되면서 벌어진 일이라고 분석합니다. 특정 언론사를 가리지 않고 이런 태도로 일관합니다.

왜 수용자들은 파업을 감행했고 지속하고 있을까

왜 수용자 파업이 발생하고 지속되는지 조금더 구체적으로 알아보겠습니다. 아직 공개되지 않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조사 결과이긴 합니다. 그리고 뉴스레터 구독에 관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를 통해 전체 파업 사유를 정확히 이해하는 건 무리입니다. 하지만 추정해 볼 수는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왜 뉴스레터를 구독하지 않는가'에 대한 설문인데요. 가장 응답이 높았던 이유가 '뉴스레터가 스팸처럼 느껴져서'(40.5%)였습니다. 이어 '내용은 흥미롭지만 메일로 뉴스레터를 받는 걸 원하지 않아서'(22.6%), '흥미로운 뉴스레터를 발견하지 못해서'(19.7%), '뉴스레터의 내용이 그리 유익하지 않은 것 같아서'(8.9%), 뉴스레터의 문체가 딱딱하고 내용이 고루해서'(6.7%)순이었습니다.

제법 비약을 섞어, 뉴스레터를 뉴스 소비라고 전제할 경우, 수용자 파업의 이유는 저널리즘의 대화 태도, 형식, 내용 모두가 불만족스러워서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이 가운데 뉴스레터가 스팸처럼 느껴진다는 건, 3가지 요소의 복합적인 실패라고 해석해 볼 수도 있습니다. 회의적인 상태로 들어선 수용자들은 대화의 3요소를 충분히 충족되지 않으면 거들떠 보지도 않겠다는 신호를 우리에게 보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뉴스레터 구독을 중단하는 이유도 살펴보시죠. '메일함에 쓸데 없는 게 쌓이는 게 싫어서'라는 응답이 가장 높았고요 '뉴스레터 안에 광고가 많아서'라는 응답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자신에게 유익을 주지 않거나 대화의 태도가 결여된 경향을 보이면 곧장 이탈해 버린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만큼 수용자들은 예민해졌고, 회의적으로 돌변했으며 감정적입니다. 대화로서 저널맂즘의 핵심 요소를 망각할 경우 벌어질 수 있는 빈번한 현상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

성공한 뉴스레터 사례로 본 그들의 저널리즘적 대화법

이젠 해결 방안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두 개의 뉴스레터 사례를 들어보고자 합니다. 경제/비즈니스/재테크 뉴스레터 미디어인 바이트어피티입니다. 바이트는 이미 2만 명 이상, 어피티는 약 20만 명의 뉴스레터 구독자를 보유한 신생 비즈니스 미디어입니다. 이들은 뉴스레터를 통해서 수용자를 모았고 뉴스레터를 통해서 그들과 대화하고 있습니다. 뉴스레터 구독을 추천하는 여러 글들에 이들 이름이 꼭 포함돼 있을 정도로 이름값이 높은 곳들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두 사례를 선택했습니다.(이해충돌 문제는 글 아래에 적어두었습니다.)

저는 두 뉴스레터 미디어 모두 4~5가지의 대화적 특성을 갖추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구술성, 전형성의 파괴, 인지 부하를 고려한 청킹 전략, 피드백의 일상화, 니치 내용 공략 등입니다.

(1) 구술성

먼저 '바이트'의 사례를 보겠습니다. 바이트+는 일관되게 대화/구어체를 사용합니다. 사실 대부분의 뉴스레터들이 비슷합니다. 하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오픈채팅방 링크를 제안하면서 직접 대화도 시도합니다. 퀴즈를 고정적으로 배치해서 말맺음을 하고 있죠. 또하나 주목할 점은 이모지와 이모티콘을 적절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겁니다.

우리는 이모지나 이모티콘의 사용을 별거 아닌 것처럼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구술성에서 이모지나 이모티콘이 상징하는 바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잠시 논문 한 건을 인용하겠습니다. 정혜욱(2018)은 이렇게 주장합니다.

"인간은 얼굴 표정과 음성언어 / 손과 그래픽 기호라는 두 개의 구분된 표현 수단을 통해 음성 언어와 시각 우위 언어 양식인 문자 언어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는 르루이 구랑의 설명이 함축하듯이, 문자 언어와 구술성을 지닌 도상 언어인 이모티콘과의 결합은 원형 회귀적 언어 사용에 대한 욕망의 자연스러운 발로라고 할 수 있다."

한 문장이 한 문단이네요. ㅎㅏㅎㅏ.

제가 조금 풀어 보겠습니다. 음성 언어와 문자 언어를 발전시키는데 있어서 인간의 얼굴 표정이나 그래픽이 적잖은 기여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디지털 공간에서 이모지나 이모티콘이 얼굴 표정의 효과를 대체하게 되면서 문자 언어 중심성을 빈 부분을 채워갔다는 얘기입니다. 이러한 이모티콘이나 이모지의 사용은 결과적으로 문자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대화적 욕망을 메워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쉽게 말해, 이모지나 이모티콘의 사용은 문자라는 대화상의 폐쇄적 속성을 넘어서 구술성을 강화하기 위해 인간이 개발한 도상언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자 문화에서 구술성이 배제되는 것을 경험하자 다시 구술성을 복원하기 위해 인간이 개발해낸 언어 양식인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이모지나 이모티콘의 사용은 구술성의 강화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런 흐름을 바이트가 잘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죠.

이 즈음, 제가 존경하는 월터 옹(구술문화와 문자문화의 저자)의 코멘트를 인용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말하려면 말을 시작하기 전에 말하려는 상대의 정신과 이미 어느 의미에서는 커뮤니케이션 되어 있어야만 한다. 이러한 의식 작용은 두드러지게 '인간적인 것'이어서 참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을 보여준다."

구술적 속성의 이모지나 이모티콘의 사용은 말하기의 전제, 즉 상대방의 정신과 먼저 연결되려는 노력을 의미하고, 나아가 공동체 형성을 위한 행위이자 능력이라고까지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모지나 이모티콘은 가볍게 쓸 수 있지만, 상대에 따라선 불쾌감도 줄 수 있습니다. 사용 자체가 이미 수용자를 고려한다는 태도를 뜻하고, 그들과 대화하겠다는 의지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러한 작은 도상 언어를 사용하는 것을 통해 공동체를 상상하고 염두에 두는 것이죠. 공동체의 참여를 전제로 하는 저널리즘과 잘 연결될 수 있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따라서 이러한 기호의 사용을 가볍게 여겨선 안되며 대화로서 저널리즘에 더 가까워지는 특성을 갖고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2) 인지 부하를 고려한 청킹 전략

두번째는 청킹 전략(Chunking Strategy)입니다. 청킹이라는 용어가 익숙하진 않을 겁니다. 일종의 정보 꾸러미를 말합니다. 청킹 전략을 이해하려면 다시 넬슨 코완의 '매직넘버 4 이론'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은 한없이 많은 정보를 한꺼번에 수용하지 못합니다. 특정 정보 자극점을 넘어서면 잊어버리거나 기억에서 제외합니다. 이렇게 넘어선 상태를 인지 과부하(cognitive overload)라고 합니다. 인지 부하를 고려해서 사람들에게 정보를 전달할 때 수용자들은 정확히 기억하게 됩니다.

넬슨 코완은 그 최적점이 4개라고 말합니다. 정보 꾸러미(청킹) 4개가 넘어서면 잘 인지하지 못한다는 결과합니다. 아래 그래프를 통해서 실험 결과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바이트의 뉴스레터를 보면,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4개의 정보 꾸러미로 구성돼 있습니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정보 꾸러미를 들여다 보면 크게 4개 블록으로 이뤄진 것으로 관찰하실 수 있습니다. 물론 개별 정보 꾸러미는 인지 부하를 덜 고려한 측면들이 있긴 합니다만. 전체 구성물로 보면 4개의 청킹 전략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대화의 형식이자 태도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대화의 상대, 즉 수용자의 인지 부하를 고려한 뉴스레터 구성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죠. 대화의 태도와 형식이 어느 정도 잘 갖춰져 있는 셈입니다.

다음 글(11월5일 발행 예정입니다.)에서 이어집니다. 이것도 청킹 전략일까요? ㅋㅋ

‘바이트‘, ‘어피티’ 통해 본 성공한 뉴스레터 미디어의 대화 전략(1)
저는 두 뉴스레터 미디어 모두 4~5가지의 대화적 특성을 갖추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구술성, 전형성의 파괴, 인지 부하를 고려한 청킹 전략, 피드백의 일상화, 니치 내용 공략 등입니다.

이해관계 설명 : 사례로서 언급된 바이트는 제가 소속된 미디어스피어의 파트너 미디어입니다. 어피티는 제가 소속된 적이 있었던 메디이티의 피투자사 중 한 곳입니다. 이러한 관계를 알고 읽어주시기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