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기본적인 유튜브 스크립트조차 블로그처럼 심을 수 없을까'

'왜 우리 관리자툴은 좀더 기자 친화적으로 바뀔 수 없을까'

사실 이 모든 고민은 한 곳으로 모인다. 조직 내부에서 쓰는 용어로 '집배신 시스템' . 정확히는 언론사 내부의 콘텐츠 관리시스템 즉 CMS이다. CTS에 특화된 모델이다. 기사(사진, 영상 등)입력 및 전송기, 신문사의 경우 조판시스템, DB 관리, 송출에 이르는 제작 라인이 모두 솔루션화돼 있다. 국내에선 양재미디어와 서울시스템스가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이들 업체들에 대한 의존도가 과도하게 높다. 신문 시대에 적합한 솔루션을 소셜과 모바일 시대에 적용하려다 보니 끊임 없이 문제가 발생한다. 이들 솔루션의 업데이트를 진행하려면 막대한 예산이 소요됩니다.(일반적으로 상용 솔루션은 5억원 내외로 알려져있다.) 외부의 지원이 없이는 자체적인 예산으로 진행하기가 상당히 버거운 상황이 지속된다. 뿐만 아니라 이들 솔루션 개발 기업이 기술 개발을 게을리하면 국내 언론사의 디지털 대응 능력은 떨어지게 된다. 사실상 한몸처럼 운명을 같이 하고 있는 경우라 할 수 있다.

국내 언론의 컴퓨터 조판의 역사

CTS(Computerized Typesetting System)가 국내에 처음 도입된 시기는 1983년으로 거슬러 간다. 서울신문이 1983년 7월 1일 사내에 전산제작 연구실을 설치하고 CTS 시스템 도입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당시 연구실장으로 채광국을 선임하고 그에게 해외 CTS를 한글화하는 책무까지 맡겼다.(채광국, 1985)  조판 과정에 있어 CTS로의 교체는 납활자 방식으로 신문을 인쇄했던 국내 언론사로서는 혁신적이고 위험한 선택이었다. 컴퓨터 기반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 투입되는 비용뿐 아니라 신문 제작 체계 전환에 따른 인력 운영의 개편에 이르기까지 모든 제작 관련 이슈가 얽혀있는 대작업이기도 했다.

사실 1979년 중앙일보가 국내 신문사로는 처음으로 CTS팀을 설치하고 도입을 검토한 바 있다. 서울신문보다 4년이나 앞서 CTS 전환을 논의한 사례이지만 이내 해체되면서 별다른 역할을 이어가지는 못했다.(신문과방송, 1987)  

채광국은 당시 서울신문 CTS 도입의 목표를 다섯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정보량 증가에 따른 처리 대응, 제작 공정의 고속화, 작업 환경의 개선, 생산의 합리화, 기술 혁신에 따른 장래의 전개 등이다. 당시는 신문 인쇄가 중독 위험이 높은 납을 다루는 공정인 만큼 문선공들의 노동 환경은 취약했고 이에 따라 파업이 빈번해지고 임금 인상 요구도 높아지던 상황이었다. 외부로는 컴퓨터 기술이 산업계 각 분야로 서서히 틈입하면서 신문 인쇄의 기술적 대응 요구가 싹트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미 미국, 일본 등 해외 신문사들은 CTS 제작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국면이기도 했다.

1980년대 당시 국내 워드프로세서 개발 현황은 CTS 도입과 관련해 이해를 확장하는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될 수 있다. 오세욱에 따르면 컴퓨터 스크린 상에서 소프트웨어적으로 한글을 구현할 수 있게 된 것은 한글 모아쓰기용 CRT 단말기가 개발된 1978년 3월이다. 한글 모아쓰기용 CRT 단말기는 신문 조판을 위한 컴퓨터 입력에 필수적이다. 기자들이 작성한 원고를 넘겨받아 이를 입력하고 제목이나 조판 명령을 지정해 화면에 출력하는 시스템은 CTS의 가장 기초적인 입출력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신문의 CTS 도입은 국내 상용 워드프로세서 개발 시점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는 빠른 편이었다. 하드웨어 일체형의 상용 워드프로세서인 ‘명필'이 등장한 시점은 1983년 8월, 소프트웨어 형태의 워드프로세서가 등장한 시기는 1984년. 조판 소프트웨어가 워드프로세서와 완전히 동일하지 않지만 유사한 용도와 목적을 지닌 소프트웨어라는 점에서 보면, 국내 소프트웨어 등장 시기와의 거의 일치할 정도로 빠른 편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도입 과정에서 진통도 적지 않았다. 기술 도입에 따른 노동 조건의 변화, 제작 부문 일자리의 불안정성으로 인해 내부 인력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해볼 수 있다.  

“서울신문 CTS가 성공적인 첫걸음을 내디디기 전 솔직히 말해서 편집, 제작에 종사하는 이들의 대부분은 기술혁신에 소극적이었고 부정적이었다. 그밖의 부분에 딸린 이들은 방관적이었다고나 할까 그런 상황이었다. 실제로 CTS 제작 개시를 눈앞에 두고도 CTS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새로운 기술을 터득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였던 공무부문 종사자자와는 달리 호응도가 낮았고 방관적이었던 일부 제작 부문의 종사원은 자신들의 새로운 일에 관한 교육훈련에 보이는 열의가 너무나도 낮았었다. 그 영향은 지금도 꼬리를 끌고 있다.”(채광국, 1986 ; 199쪽)

그만큼 당시 CTS의 도입은 국내 신문의 역사에 있어서도 커다란 변화를 몰고한 모멘텀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때를 기점으로 CTS가 보현화하는 1990년대가 되면 문선, 주조 인력은 완전히 신문 제작 영역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다.

이렇게 시작된 컴퓨터 제작 조판은 1985년 1월 1일 서울신문 인쇄에 첫 적용됐고, 당해 6월 22일 스포츠서울의 창간으로 이어졌다. 스포츠서울은 CTS의 입력 시스템을 등에 업고 활판 조판으로는 구현하지 못한 다양한 보도 표현 양식을 선보였다. 대표적으로는 복잡한 야구 기록표를 인쇄할 수 있게 됐고 그림이 포함된 커트도 신문에 등장하게 된다. 지금은 괘선 그리기라는 단어조차 생소하지만, 활판 인쇄 시 괘선 그리기는 조판공들은 공력이 상당히 욕되는 미세한 작업이기도 했다. 조판 시스템의 변경으로 신문 표현의 확장을 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후 CTS는 조판 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신문 제작 전 과정에 개입하게 된다. 이미 1990년대 초부터 기자들에게 휴대용 PC를 통한 기사 작성과 일반 전화선을 이용한 집배신 시스템으로의 송고가 논의되기 시작했으며(최정민, 1991) 1990년대 중반 실제 제작 현장에 적용되기에 이른다. CTS는 기사 작성에서부터 조판, 강판에 이르는 전 과정을 관리 제어하는 핵심 소프트웨어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것이다.

디지털 시대 CTS의 저주

활판 인쇄 시대의 종언을 가져온 CTS 기술은  새로운 기술적 전환기에 활판만큼이나 골칫덩이로 남게 된다. CTS가 활판이 구현하지 못했던 괘선 등을 획기적으로 해결해주었지만, 디지털 시대엔 오히려 또다른 웹 기반 표현 양식에 장애 요소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CTS는 신문 지면을 미려한 레이아웃으로 변화하는데 상당한 공을 세웠지만 링크와 인터렉티브 미디어 요소가 포함된 웹 지면을 표현하는 데에는 걸림돌이 되고 만다.

CTS의 상류 공정(상반신)은 입력기와 집배신, 조판 시스템으로 구성된다. 집배신을 거쳐 조판 시스템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주로 상류 공정이라고 하고 조판에서 강판, 인쇄로 이어지는 프로세스를 하류 공정(하반신)이라고 한다. CTS 도입 초기 오프세트 인쇄에 맞춰 상류 공정과 소프트웨어가 최적화될 수밖에 없었다. 즉 신문 인쇄에 맞게 기사를 작성해 송고하고 이를 조판하는 과정이 구축된 것이다. 하지만 하류 공정의 목적지가 신문 지면이 아닌 웹이 되면서 상류 공정이 변화해야 할 타이밍이 도래한 것이다.

뉴스와 독자와의 접면이 종이에서 웹을 거쳐 모바일로 빠른 속도로 전환되면서 상반신의 교체는 불가피하게 됐다. 하지만 기대만큼 변화 속도는 빠르지 못했고, 차일피일 미뤄지는 상황이 지속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탄생한 변종이 신문 제작용 CTS와 온라인 CMS를 분리하는 모델이다. 온라인용 기사 관리 시스템과 신문 제작용 기사 관리 시스템이 완전히 다른 궤도를 걷게 된 것이다.

신문 제작과 온라인 CMS의 분리는 디지털 스토리텔링을 저해하는 핵심 요인이 되고 있다. 현재 국내 언론사 기자들의 대부분은 신문 제작용 CMS에 부착된 기사 입력기를 사용하고 있다. 이 입력기에서 작성된 기사가 신문 지면 조판 시스템을 거쳐 강판 과정으로 전송되게 된다. 일반적으로 강판된 기사가 온라인 CMS로 넘어와 웹 사이트에 게시되는 프로세스를 갖게 된다.

문제는 신문 지면 조판 시스템 과정에서 웹 지면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모든 링크는 누락된다. 대다수 언론이 사용하는 이 소프트웨어의 구버전을 기준으로 할 경우, 링크나 유튜브 스크립트코드, 각종 도표나 페이스북 트위터를 임베드할 수 있는 코드는 삽입은 불가능하다. 더러 최신 버전의 경우 입력은 가능하지만 지면 조판 시스템을 거쳐서 온라인으로 전송될 경우 링크 코드는 모두 삭제된다. 신문 지면이 동영상 등 멀티미디어나 인터렉티브 요소를 수용할 수 없는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동영상과 인터렉티브 데이터를 두루 갖춘 새로운 유형의 스토리텔링 기법을 웹과 모바일에서 구현을 하려면 기존 기사 입력기에 의존해서는 안된다. 뉴욕타임스 스노우폴과 같은 혁신적인 표현 양식을 실험하는데 있어 기존 CMS는 사실상 무용지물에 가깝다. 새로운 웹사이트는 제작하는 과정으로 접근하는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최근 일부 대형 신문사는 대대적인 투자를 통해 분리돼있던 상반신 시스템을 단일화하고 온라인 우선 시스템으로 개편하기도 했다. 수억원 이상의 투자 비용이 소요되는 만큼 소수에 언론사만이 이러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독립 인터넷 언론사는 그나마 형편이 낫다. CTS용 솔루션을 굳이 도입하지 않아도 됐고, 이들의 입력기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기사를 입력하고 전송하고 배치하는 자체적인 관리 시스템을 갖추고 있거나 특정 관련 업체가 제공하는 시스템을 호스팅해서 쓰고 있다.

디지털 스토리텔링에 욕심을 내는 기자들은 이들 시스템의 업데이트를 의사결정자들에게 요청하거나 개발팀에 주문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개발팀의 답변은 냉랭하다. '기간이 오래 걸린다'거나 '우리 시스템으로 구현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게 된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여건이기도 하다. 개발팀을 탓할 수도 없다. CMS와 관련된 거의 모든 게 뒤에서 엉켜있기에 그렇다.

소셜미디어 활용법을 일선 기자들에게 전파해봐야 직접 적용할 수 없는 현실. 짧은 스크립트 코드 하나 삽입할 수 없는 시스템 속에서 해외 언론의 다양한 실험을 늘 구경만 해야 하는 현실. 언론사의 기술적 진화 경로를 늘 이들 두 개 업체에 의존해야만 하는 현실. 이것이 현재 한국 저널리즘의 오늘이다.

뉴욕타임스의 Digital First 전략과 CMS

1996년 뉴욕타임스의 웹사이트인 NYTimes.com이 개설된 이래 온라인 뉴스룸과 신문 뉴스룸을 분리된 채 운영돼왔다. 조직의 분리는 각각의 환경에 맞는 CMS 개발을 낳았고, 양쪽은 서로 다른 CMS로 기사를 작성하는데 익숙해졌다. 단순히 조직만 분리돼있진 않았다. 서로 다른 빌딩에서 서로 다른 문화 속에서 서로 다른 관리시스템으로 운영돼왔다. 두 개의 뉴스룸에서 작성된 기사가 하나의 데이터베이스로 모아졌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분리된 뉴스룸은 기사 생산의 효율성 측면에서 여러 모로 많은 문제점을 노정해온 듯 보인다.  

그러기를 10년. Bill Keller 뉴욕타임스 편집국장은 2005년 8월 두 조직의 통합을 공식 발표했다.(Adage, 2005) 디지털 저널리즘의 새로운 모델을 개발해야 하는 환경의 변화, 독자들을 위한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압박이 이어지면서 조직 통합을 결정하게 된 것이다. 웹과 신문 뉴스룸 전체를 관장하는 매니징 에디터에는 질 에이브럼슨(Jill Abramson)을 임명됐다.(그는 현재 뉴욕타임스 전체 편집국장을 맡고 있다.)

2005년 단행된 조직 통합은 새로운 과제를 제시했다. 분리된 기사 작성 및 관리 툴(CMS)을 단일화하는 작업이다. 이미 웹 기자들은 웹사이트 뉴스 운영에 걸맞는 멀티미디어 친화적 CMS에 친숙해져있었다. 반면 신문 기자들은 인쇄에 맞춤화된 시스템에 충분히 적응된 터여서, 두 뉴스룸의 화학적 통합은 지난한 숙제일 수밖에 없었다.  

뉴욕타임스가 신문용 CMS를 버리고 '웹 우선' CMS 개발에 착수한 시점은 2007년으로 추정된다. 당시 '신문 우선'(Print First) CMS는 소셜미디어 등장과 미디어 환경의 변화로 인해 이미 도전에 직면한 상황. 하지만 뉴스룸에선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시스템이었기에 대대적인 변경을 결정하기는 어려운 여건이었다.(블로그) 게다가 뉴욕타임스 웹페이지는 Fatwire Content Server라는 외부 솔루션에 의존해 구축돼있었고, 이미 내부 필요에 따라 수 차례 개편 작업을 거친 터였다. 만약 이 솔루션의 업그레드를 추진하기라도 한다면 그동한 추가했던 기술적 기능 요소들은 모조리 날아갈 판이었다.

고심 끝에 뉴욕타임스는 인하우스 CMS 개발을 결정하게 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외부 CMS를 구매해 최적화하는 방식도 검토했다고 한다. 브래드 카가와(Brad Kagawa) 뉴욕타임스 부회장은 "우리는 수많은 외부 CMS를 들여다봤다. 많은 옵션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 하지만 우리는 자바(Java)에서 구동하길 원했고 이 과정에서 많은 외부 솔루션이 탈락됐다"고 설명했다.

외부 CMS를 구매하지 않은 또다른 이유도 있었다. 뉴욕타임스 내부의 개발 철학, 즉 애자일(Agile) 방식과 잘 맞지 않았다는 것. 애자일 방식은 일정한 주기를 가지고 끊임 없이 프로토타입을 만들며 필요와 요구를 더해가는 방식이다. 대부분의 외주 CMS는 큰 덩어리에 대한 프로젝트 기획안이 확정되면 변경 사항 없이 장기간 개발을 완료하는 계획적 개발 방식을 택한다. 필요에 따라 그때그때 변형, 추가를 독려하기란 어려운 개발 방식이다.

자체 개발 CMS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데 있어 가장 큰 고민거리는 기존 웹사이트의 첫화면 구조를 건드리지 않는다는 전제였다. 카가와 부회장은 "이것은 착수하기 너무나 어려운 문제였다. 우리와 퍼블리싱 해왔던 방식 그대로 정확히 같은 포맷으로 새 CMS에서 퍼블리싱을 하길 원했다"고 털어놓았다.

내부 반발도 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신문 중심적 사고를 지닌 내부 편집진이 문제였다. 이들은 웹 우선 CMS를 반기지 않았고 친숙함이 떨어진다며 거부감을 드러냈다. 카가와 부회장은 "편집 관련 팀과 가까이서 일하면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고 끊임 없이 대화했다. 이건 이전과는 전혀 다른 경험이었다"고 소회하기도 했다.

몇 년간의 우여곡절 끝에 2012년 자체 개발한 CMS가 1단계로 완성됐다. 뉴욕타임스 내부에선 이 시스템을 Scoop이라고 부른다. 세계 최고 수준의 텍스트 에디터를 갖추고 각종 내부 필요 요소를 반영한 뉴욕타임스만의 기술적 산물이었다. 무엇보다 기자들의 편의성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더했다. 에디터가 자주 이용하는 MS워드 같은 워드프로세서의 기능을 최대한 살렸고, 시시때때로 변경되는 기사 히스토리(Revision History) 추적도 알차게 구현해냈다. 스노우폴과 같은 체감형 스토리텔링 포맷도 뉴욕타임스가 수년간 공들인 웹 CMS 덕에 상시적으로 선보일 수 있게 됐다.

뉴욕타임스의 CMS 개편 사례는 여러 모로 국내 언론사에게 시사점을 던져준다. 온라인 뉴스룸과 신문 뉴스룸의 분리가 디지털 저널리즘의 급속한 흐름 변화에 효율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국내 언론사는 닷컴이라 불리는 온라인 뉴스 생산 및 유통 조직과 신문사 조직이 물리적으로, 문화적으로 철저히 분리돼있다. 한겨레, 경향신문 등 몇몇 언론사만이 동일 뉴스룸 내에서 협업을 진행하고 있을 뿐이다. 다양한 소프트웨어의 개발로 웹과 모바일 공간에서 더욱 까다로워지는 독자들의 입맛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두 조직의 통합이 필수불가결한 선택임을 확인할 수 있다.

조직의 통합이 이뤄진다손 치더라도 화학적 시너지를 발산하기 위해서는 첩첩산중의 난관을 넘어서야만 한다. 뉴욕타임스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 조직 성원의 순환뿐 아니라 CMS와 같은 뉴스의 생산 및 관리 시스템의 통합도 당연한 과제로 밀려오게 된다. 이를 전적으로 외주화할 경우 막대한 비용이 소요될 수밖에 없으며, 적지 않은 불만을 동반하게 된다는 것. 인하우스 CMS에 깊숙히 관여했던 카가와는 "왜 외주 벤더의 플랫폼이 악취가 나는지 깨닫게 될 것"이라고 거칠게 비판하기도 했으며, 담당 엔지니어였던 MATTHEW DELAMBO는 "파일럿으로 적용했던 외주 벤더의 솔루션은 버그 투성이었다"고 혹평하기도 했다.

이러한 시사점에도 국내 언론사는 섣불리 이를 벤치마킹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자체 웹 우선 CMS를 개발하기에는 엔지니어 조직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가 '웹 우선' CMS 프로젝트를 착수할 당시(2007년) 소프트웨어부와 CMS부는 30~40명의 엔지니어로 구성돼있었다. 하지만 5년이 지난 2012년에는 CMS부 50~60명을 포함 도합 250~300명의 거대 조직으로 성장했다.

반면, 국내 굴지의 소수 언론사를 제외하면 대체로 언론사 조직 내에는 뉴스 웹사이트 유지보수 및 개발을 담당하는 엔지니어 집단이 5명 내외만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들 다수가 신규 소프트웨어 개발보다는 기존 시스템의 유지 관리에 허덕이고 있어 인하우 CMS 개발은 꿈도 못 꾸는 것이 현실이다.


Fatwire Content Server : Fatwire Software라는 회사가 개발한 CMS 툴이다. 2011년 오라클에 인수됐다.

참고 문헌

  • Adage.(2005). New York Times combines print, Web staffs in single newsroom. [online] : http://www.poynter.org/latest-news/mediawire/152354/new-york-times-combines-print-web-in-single-newsroom/
  • MATTHEW DELAMBO.(2012). Introducing ICE: Writing for the Web First. open blog. [online] : http://open.blogs.nytimes.com/2012/01/23/introducing-ice-writing-for-the-web-first/
  • 편집부.(1987). 국내 CTS 도입 현황. 신문과 방송
  • 최정민.(1991). 신문의 질 향상을 위한 방안 - CTS는 신문 제작의 필수 시스템. 신문과 방송
  • 채광국.(1984). 컴퓨터로 만드는 신문. 신문연구 여름 통권37호, 1984.7, 102-124
  • 채광국.(1985). 신문제작의 컴퓨터화 - 서울신문 제1단계 시스템을 중심으로. 과학과 기술. VOL.18; NO.10; PAGE.22-26
  • 채광국.(1986). CTS 제작 1년년의 경험. 신문연구 여름 통권41호, 1986.6, 189-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