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 간 정치적 양극단화의 정도는 얼마나 심각할까요? 어떤 잣대로 보느냐에 따라 크게 출렁일 수 있을 겁니다. 특히나 정치 현장 혹은 포털이나 소셜미디어, 커뮤니티 댓글의 렌즈를 통해서 양극단화의 정도를 평가하면 회복불능의 지점에 도달한 것처럼 이해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평가하는 접근법이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는 방식일까요? 특히 기자들이라면 어떻게 바라보는 것이 현실과의 갭을 줄이는 방법일지 더욱 궁금하실 겁니다.

저널리즘의 중요한 책무 중 하나는 공동체가 현명한 판단을 내리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진실이라는 개념을 활용하는 것이죠. 진실에 가장 가까운 무언가를 수용자들에게 전달함으로써 민주적 공동체를 위한 합리적 선택과 결론에 이르도록 돕고 지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널리즘의 역할이 중요한 것입니다.

정치 분야 보도도 여기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나쁜 보도 유형은 진실과 멀리 떨어져 있는 무언가를 수용자들에게 전달함으로써 그들이 공동체를 위해 현명한 결정을 내리는 걸 방해하는 것입니다. 혼란을 주고 다투게 하고 분열하도록 하는 것, 그것은 저널리즘이라 칭할 수도 없을 뿐더러 칭해서도 안되는 것들이죠. 건강한 저널리즘을 위해선 그래서 수용자가 처한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현실에 대한 인식에 오류나 편향은 없는지 스스로 묻고 의심하고 성찰해야 한다고 하죠.

먼저 정치적으로 극단화한 집단의 규모부터 명확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포털의 댓글이나 소셜미디어 게시물을 보면, 국내 시민의 50% 이상은 극단적인 성향으로 양분화된 것처럼 인식됩니다. 좌 30%, 우 30% 이렇게 대략 60% 내외로 판단하는 경향일 띱니다. 정기적으로 발표되는 설문조사를 봐도 이렇게 사고하는 게 자연스러울 정도입니다. 하지만 정말 현실이 그러할까요?

크루프니코브 스토니 브루크대 교수(출처 : 크루프니코브 홈페이지)

올초 출간된 '또다른 양극화'(The Other Divide)의 저자 크루프니코브 스토니 브루크대 정치과학과 교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시민들은 정치적으로 덜 양극화됐다고 주장합니다. 이달 초 미국언론연구소와 인터뷰한 바에 따르면, 그는 기자들은 시민들의 50% 정도가 정치적 극단화됐다고 판단하고 있는데 반해 그의 연구와 조사에서는 20% 정도에 그친다고 강조합니다. 그것도 수년간의 조사를 통해 확인한 결과라고 근거를 제시합니다.


크루프니코브 스토니 브루크대 정치과학과 교수에 대해 궁금하시다면 아래 뉴욕타임스 기사를 읽어보시면 도움이 될 겁니다.

Opinion | The Real Divide in America Is Between Political Junkies and Everyone Else (Published 2020)
Most Americans view politics as two camps bickering endlessly and fruitlessly over unimportant issues.

통상 정치적 극단화의 정도를 측정할 때 중요하게 물어보는 질문 중 하나는 "당신의 자식이 정치적으로 반대 성향의 배우자와 결혼을 한다면 행복할 것 같은가 화가 날 것 같은가" 또는 "당신의 자식이 정치적으로 같은 성향의 배우자와 결혼을 한다면 행복할 것같은가 화가 날 것 같은가"라고 합니다. 이에 대한 응답을 수년간 확인해 보니 정치적 양극화 집단의 규모가 20% 내외라는 것이죠.

이를 토대로 크루프니코브 교수는 시민을 3개 집단을 나눠서 볼 것을 주문했습니다. 기자들이라면 이 층위 구분에 조금더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무관심층(inattentive), 관심층(attentive), 적극 관여층(deeply involved)입니다. 즉 위 통계의 20%라는 규모는 바로 정치적 적극 관여층을 의미합니다. 문제는 이 층의 규모에 인지되는 규모는 훨씬 커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포털이나 커뮤니티의 댓글로 전체 여론을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반복된 강조점이 여기에서도 거론되고 있습니다.

기자들은 어떻게 여론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기자들은 어떻게 여론 혹은 시민의 정치적 극단화를 현실에 가깝게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돌아오게 되는데요. 크루프니코프 교수는 '거리에서 정치적 관심도가 낮은 사람을 만나서 인용하라'는 것입니다. 그 또한 이게 얼마나 이상적인 실천방안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제대로 현실을 파악하기 위해선 그만한 방법이 없다는 거죠. 그렇지 않으면 전문가들의 코멘트를 인용함으로써 정치적 극단화의 현실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인용되는 전문가들은 통상  "deeply involved' 된 집단이라는 겁니다. 게다가 기자들인 인용하는 전문가 집단의 풀이 넓지 않아서, 동질화한 목소리만 반복적으로 기사에 투영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를 합니다. 대부분의 기자들이 이런 사실 잘 인식하고 있지만, 시간이 부족해 그 풀을 넓히지 못하는 현실적 한계에 직면해 있죠. 사실 미국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그는 이러한 취재 및 인용 방식의 위험성을 이렇게 경고합니다.

"언론인들과 가장 소통을 많이 하는 이들은 정치에 엄청난 관여를 해온 사람들이다." "매우 특정한 네트워크에 국한된 이들과의 토론이 모든 것을 포괄하고 매우 중요하게 다뤄진다."

결국 기자들이 처한 현실적 제약, 교정되지 않은 취재 관행, 좁은 전문가 풀 안에서 이뤄지는 인용의 관행 등이 겹쳐지면서 기자들의 인식도 분열의 과대평가로 고착화한다는 것이죠. '적극적인 관여층'을 넘어선 수용자 목소리의 반영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는 시점이지만, 그들을 발견하고 청취하고, 기사로 투영하는 프로세스는 좀체 뉴스룸 안으로 정착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다시금 알려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크루프니코브 교수의 인터뷰는 아주 절묘한 해결책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기에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보단 우리가 한 사회의 정치적 분열의 정도를 인식하는 데 있어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접근법이 무엇인가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정도를 측정할 때 중요한 질문이 무엇인가를 기억해 두는 것도 기자들에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 사회의 정치적 양극화가 어느 정도 수준인가를 다시 한번 측정해보는 노력들이 이어질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인터뷰 소개로 그친다는 게 많이 길어졌네요. 아래 글도 잊지 마시고 읽어보시면 도움이 될 듯합니다.

‘진영 양극화’ 시대, UN이 제안하는 언론의 보도 팁 3가지
어렵습니다. 현장 기자라면 고민이 더 많을 겁니다. 독자들은 이념과 진영으로 양분되어 가고, 진실을 진영에 따라 편가르려는 경향은 더욱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댓글은 폭력으로 돌변해서 반대 진영 언론사와 기자를 공격하기에 바쁩니다. 이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일부 기자들은 답답한 나머지 반대 진영 독자들을 교육하려 들거나 설득하려 애씁니다. 애초부터 가능하지 않은 시도입니다. 진영 논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