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벤 스미스가 흥미로운 ‘디지털 미디어 재벌‘ 한 곳을 발굴해냈습니다. 미국 안에서도 좀체 이름이 드러나지 않았던, 하지만 최대 규모의 ’미디어 재벌’에 해당하는 레드 벤처스라는 곳입니다. 푸에토리코 출신의 마케팅 비즈니스 창업가 릭 엘리아스(Ric Elias)가 이끌고 있는 서비스 저널리즘 중심의 미디어 네트워크입니다.

레드 벤처스는 VC는 아닙니다. 이름에서 벤처캐피털의 향이 약간 묻어나지만, 관련은 없습니다. 물론 사모펀드로부터 투자를 받으며 몸집을 키워오긴 했지만, 미디어 기업의 정체성 자체가 흔들리지는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출범한 지 10년도 되지 않는 신생 스타트업도 아닙니다. 이력으로 따지면 2000년까지 올라가지만 다시 레드 벤처스라는 이름으로 사업을 개시한 건 2005년 전후의 일입니다. 약 16년 된 미디어 기업인 셈입니다. 어리지는 않죠.

레드 벤처스가 이름을 알린 건 2020년 9월입니다. IT 미디어로 정평이 나있지만 ‘올드’한 느낌을 벗어던지지 못한 CNET 미디어그룹을 5억 달러에 인수하면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속된 말로 ‘듣보잡’ 기업이 바이어컴 소유의 CNET을, 우리 돈 약 6000억원에 매입하면서 ‘저곳 대체 뭐지’라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킨 것입니다.

현재 레드 벤처스가 인수하거나 운영 중인 미디어 브랜드는 23개(위키피디아는 100개 정도의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고 적고 있습니다.)입니다. 대표적인 브랜드만 열거해볼까요?

  • Bankrate
  • Best College
  • Cnet
  • Gamespot
  • Healthline
  • Lonely Planet
  • NextAdvisor
  • The Points Guy
  • Zdnet
  • Greatist
  • Medical News Today

각 브랜드 이름만 보고도 어떤 느낌이 오지 않나요?

레드 벤처스의 규모 : 
어쩌면 여러분들의 상상을 넘어설지도 모릅니다. 벤 스미스의 기사를 보면, 현재 레드 벤처스의 전세계 근무자는 4500명 정도랍니다. 연 매출액은 20억 달러. 우리 돈으로 2.4조원 정도됩니다. 기업가치는 보수적으로 잡아도 약 110억 달러, 13조 내외가 되죠. 보유하고 있는 미디어 브랜드로 유입되는 방문자수만 월 7억5100만 명입니다.
노스 캐롤라이나 본사의 캠퍼스 규모도 상당합니다. 위에서 내려다 보면 왜 캠퍼스인지가 이해가 될 것입니다. 권위를 상징하는 높은 빌딩과 일사불란 한 지휘가 용이하도록 설계된 위계적 사무실 구조와는 많이 다른 느낌입니다. 오히려 실리콘밸리의 테크 기업들의 캠퍼스를 닮았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사우스 캐롤라이나에 위치한 레드 벤처스 HQ. 이미지 출처 : Google Earth

레드 벤처스가 수익을 만들어가는 방식 : 서비스 저널리즘

레드 벤처스는 마케팅 기업으로 출발했습니다. 지금도 마케팅 기업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지 않나 싶습니다. 제휴 마케팅(Affiliate Marketing)이 주를 이룹니다. 쉽게 말해, 콘텐츠를 보고, 뭔가를 계약하거나 구매하면 그에 대한 수수료를 받는 방식입니다.

사례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레드 벤처스가 소유하고 있는 The Points Guy에 들어가 보시기 바랍니다. 여행 리뷰 전문 사이트입니다. 모든 기사 하단에는 카드 가입 박스가 배치돼 있습니다. 여행에 특화한 카드일수록 콘텐츠를 본 독자들이 가입할 확률이 높아지겠죠. 물론 콘텐츠는 노골적으로 카드를 홍보하지 않습니다. 카드의 혜택을 설명하거나 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카드가 여행에 특화한 포인트 혜택 등을 강조하면서 가입 전환을 유도하는 방식인 거죠. 이 미디어의 경우 하나의 카드 가입을 발생시킬 때마다 300~900달러를 벌어들인다고 합니다.

제휴 마케팅은 콘텐츠 생산자에 대한 보상이 명쾌하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광고도 마찬가지긴 합니다만, 얼마만큼의 기대 행위를 사용자들로부터 발생시켰는가에 따라 보상의 정도가 정해집니다. 또한 사용자의 기대 행위가 일어나려면 사용자가 신뢰할 수 있고 유익한 경험을 콘텐츠를 통해 얻어가야만 합니다. 특히 노골적으로 제휴 상품을 홍보하게 되면, 기대 행위의 유발효과는 반감되기 마련입니다. ‘약 파는 거야 뭐야’라는 힐난에 직면하게 됩니다.

제휴 마케팅은 서비스 저널리즘과 잘 맞는 수익모델입니다.(서비스 저널리즘에 대해서는 아래 글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름 미국 언론 가운데 이 분야에서 좋은 평을 얻고 있는 곳이 뉴욕타임스의 와이어커터입니다. 2016년 뉴욕타임스로 인수된 와이어커터는 현재 뉴욕타임스 기타 매출의 다수를 점유할 정도로 높은 수익성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이를 ‘affiliate referral revenue’라는 항목으로 계상하고 있습니다.

서비스 저널리즘 유행이 의미하는 것은?
서비스 저널리즘을 다시 불러낸 건 정보와 지식의 생산과잉이다. 정보는 차고 넘치지만 믿을 만한 정보는 여전히 부족하다. 독자들의 탐색 비용도 낮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검색이라는 최상의 솔루션은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전달하는데 아직 2%가 부족해보인다. SEO와 검색 어뷰징은 검색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는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검색이 플랫폼 사업자의 해법이라면 서비스
“We generate revenues principally from subscriptions and advertising. Other revenues primarily consist of revenues from licensing, Wirecutter affiliate referrals, the leasing of floors in the Company headquarters, commercial printing, television and film, retail commerce and our live events business.”

쉽게 말해, 레드 벤처스는 와이어커터 같은 디지털 미디어를 수십개 운영하는 마케팅 기반의 서비스 저널리즘 미디어 그룹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 대신 레드 벤처스는 저널리즘이라는 표현을 내부에선 잘 쓰지는 않는 모양이더군요.

The Points Guy

제휴 마케팅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해당 미디어의 콘텐츠가 충분히 많은 이들에게 도달해야하고, 수용자 타깃팅이 잘 돼 있어야 할 뿐 아니라 콘텐츠가 신뢰를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와이어커터가 단 하나의 콘텐츠에 얼마나 많은 공을 들이고 있는지는 각 콘텐츠별 길이만 들여다봐도 확인하실 수가 있을 겁니다. 그러면서도 제휴된 상품에 대한 바이어스, 편향이 없어야 하죠. 결코 만만한 작업이 아닙니다.

레드 벤처스는 이러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리뷰형, 가이드형 서비스 저널리즘 미디어를 인수해왔던 것입니다. 구매/행위 전환을 유도할 수 있는 탁월한 마케팅 기술 노하우를 확보하고 있는 상태에서, 신뢰할 수 있고 유익한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미디어들만 결합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게 되는 거죠.

마케팅/소프트웨어 기업 허브스팟이 더허슬을 인수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케팅 기업 입장에서 자사 상품을 더 많이 판매하기 위해서는 필요로 하는 수용자/사용자층에 도달을 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유익함과 신뢰를 줄 수도 있어야 하죠. 이 조건이 뒷받침된다면 구매 전환은 비교적 쉬워질 수가 있습니다. 허브스팟이 더허슬 인수에 기대했던 것도 그들이 필요로 하는 고객들에게 도달할 수 있는 자사 미디어(Owned Media)가 필요했던 거죠.

트렌드 : 마케팅 기업의 미디어 소유 vs 미디어 기업의 커머스 소유

디에디트의 자체 브랜드 숍 'M$UP'

레드 벤처스의 확장에서 읽어낼 수 있는 흐름이라면, 저는 마케팅 기업의 미디어 채널 직접 운영이라고 생각합니다. 외부 미디어에 비용을 지불하고 전환시키는 접근 방식보다 직접 미디어를 운영하면서 수익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넘어가고 있는 흐름이랄까요. 하지만 마케팅 회사가 직접 미디어를 조직하고 론칭하는 건 리스크가 너무 높죠. 그래서 인수가 보편화하는 듯합니다.

마케팅 기술과 신뢰 있는 콘텐츠 미디어의 결합은 수익 측면에서 상호 보완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케팅 기업은 고객 획득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미디어 기업은 안정적인 수익 기반을 창출할 수가 있습니다. 특정 미디어 몇 곳에 막대한 획득 비용을 지불할 바엔, 그 비용으로 미디어를 인수하는 것이 오히려 효율적이라고 판단하는 곳도 적지 않을 겁니다. 허브스팟처럼 말이죠.

조금 다른 흐름이지만, 미디어 기업의 커머스 인수/론칭도 같은 맥락에서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국내에선 디에디트가 대표적인데요. 자사만의 고유 커머스 브랜드를 최근 론칭을 했습니다. 서비스 저널리즘 기반으로 제휴 마케팅으로 수익을 얻어온 미디어 기업이, 자체 상품 브랜드를 내놓고 직접 판매까지 하는 시도입니다. 수익을 내재화, 극대화하는 전략으로 해석해 볼 수 있을 겁니다.

두 모델의 공통점은 ‘전환의 기술‘입니다. 제휴 마케팅도 전환이 핵심이고, 자체 커머스 브랜드도 전환 기술이 관건입니다. 구독도 마찬가지죠. 전환은 사실 커머스 영역에선 보편적이고 핵심적인 개념이었지만, 지금은 미디어 산업으로도 빠르게 인입되고 있습니다 수익 모델이 변화를 겪게 되면서 등장하는 자연스러운 조류인 것입니다.

광고는 노출 그 자체가 핵심 가치였습니다. 물론 높은 단가를 얻어내기 위해선 광고의 클릭도 유도해야 합니다. 행위 전환을 요구하는 광고 상품도 있죠. 그렇다고 다수가 그런 모델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미디어의 수익 모델이 준 커머스 영역으로 넘어가거나 확대되면서 전환은 생존에 중요한 지표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전환을 통해 수수료 수익을 얻을 것이냐(제휴 마케팅), 판매수익을 얻을 것이냐(커머스, 유료 구독)가 다를 뿐입니다.

서비스 저널리즘의 위험성 : 커머스와 저널리즘 간 경계 붕괴

레드 벤처스나 디에디트처럼 콘텐츠 기반 전환을 통해 판매 촉진 수익(수수료) 또는 직접 판매 수익을 취하는 모델은 ‘신뢰‘에 기초하지 않을 경우 빠르게 붕괴될 수 있습니다. 블로그의 콘텐츠 마케팅 시장이 신뢰 위기로부터 발생해 기반 붕괴로 이어진 것도 투명하지 않은 방식으로 고객/사용자를 기만했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기본적으로 제휴 마케팅이나 직접 판매 모델은 끊임없이 유혹에 빠지게 됩니다. 더 많은 판매/판매 촉진 수익을 얻기 위해 특정 상품을 우호적으로 묘사한다거나 더 비중있게 다뤄야 한다는 압박에 시다릴 수도 있습니다. 이런 사례들이 누적되면 해당 미디어에 대한 신뢰를 빠르게 무너내리게 되고, 구매 전환 효과는 급격히 떨어지게 됩니다. 신뢰를 지탱하는 내부의 구조적 체계가 마련돼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레드 벤처스도 이 점을 유념합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창업자인 릭 엘리아스는 레드 벤처스엔 ‘협상불가 경계선’(nonnegotiable line)이 있다고 했습니다. ‘편집의 독립성’입니다. 그는 모든 기자들에게 자신의 핸드폰 번호를 알려준 뒤 “만약 비즈니스 부서가 압력을 행사하면 당장 전화해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그만큼 편집권 독립을 통한 신뢰 유지에 높은 비중을 두고 있다는 의미일 겁니다.

그럼에도 레드 벤처스 내부에선, 두 영역의 경계가 모호해진다는 비판이 종종 제기된다고 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기자로서 자부심을 갖고 살아온 그간의 과정이 ‘영업 깔대기의 상단을 넓히는 모객꾼’으로 전락하는 것 같다는 비판도 나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콘텐츠는 제휴 마케팅 전환율을 높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이죠. 상품 브랜드를 직접 개발해 판매할 경우엔, 기자 혹은 콘텐츠 생산자가 마케터가 된 기분을 감수해야만 하죠. 서비스 저널리즘은 그래서 어렵습니다.

신뢰 높은 고품질 콘텐츠를 생산한다는 기자로서의 자부심과 안정적이고 성장 지향적 수익의 확보, 이 둘 사이는 여전히 늘 긴장관계일 수밖에 없습니다. 어찌됐든 두 유형 모두 수용자들의 현명한 선택을 도와주고, 시간을 절약해 주며, 건강한 소비를 유도한다는 점에서 종사자들의 만족감을 키워낼 순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경계가 자칫 모호해지면 소속원들의 회의감을 키울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약점을 갖고 있죠. 이걸 어떻게 풀어가느냐가 숙제가 아닌가 합니다.

디지털 광고 시장이 대형 플랫폼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개별 디지털 미디어들은 그들만의 새 수익원들을 찾아나서고 있습니다. 커머스도 대형 기술 기업들의 독과점 시장으로 고착화하면서 미디어들이 쉽게 뛰어들 수 없는 영역으로 전환되고 있죠. 레드 벤처스나 디에디트나 고객 데이터에 더 가까이 접근함으로써 기술 중개자에 의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시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엔 더스킴이라는 굴직한 미디어 스타트업도 마케팅 기업의 손으로 넘어가게 되지 않을까 그런 예상을 조심스럽게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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