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경제, 사회…. 이러한 분류법이 인류의 보편적 구분법으로 정착된 지 얼마나 됐을까요? 물음표를 던져본 적은 없나요? 혹 이러한 분류법에 지루함을 느낀 적은 없나요?

솔직히 전 지겹습니다.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뉴스를 정치, 경제, 사회라는 틀거리에 맞춰 분류하다 보면 이 분류법이 지금도 과연 유효한 것인지 의문이 들곤 합니다. 정치 같으면서도 경제 같고, 경제 같으면서도 사회 같은 뉴스들이 이제 더 많이 눈에 띄곤 합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이러한 뉴스들은 3개의 카테고리에 억지로 묶어 독자들에게 전달하곤 합니다. 이제 이러한 구분법을 파괴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요?

자주 인용되는 사례를 들며 분류법(Classification)에 대한 얘기를 꺼내볼까 합니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세계적 대문호 보르헤스(Borges)는 자신의 에세이집 <또다른 종교재판> 속 ‘존 윌킨스의 분석적 언어’에 중국의 한 백과사전 분류를 언급합니다. 이 백과사전은 동물을 다음과 같이 분류하고 있습니다.

# a) pertenecientes al Emperador 황제에 속하는 동물

# b) embalsamados 향료로 처리하여 박제로 보존된 동물

# c) amaestrados 사육동물

# d) lechones 젖을 빠는 돼지

# e) sirenas 인어

# f) fabulosos 전설상의 동물

# g) perros sueltos 주인없는 개

# h) incluidos en esta clasificaci n 이 분류에 포함되는 동물

# i) que se agitan como locos 광폭한 동물

# j) innumerables 셀 수 없는 동물

# k) dibujados con un pincel fin simo de pelo de camello 낙타털과 같이 미세한 털로 된 붓 으로 그릴 수 있는 동물

# l) etc tera 기타

# m) que acaban de romper el jarr n 물 주전자를 깨뜨린 동물

# n) que de lejos parecen moscas 멀리서 볼때 파리같이 보이는 동물

사뭇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이 분류법이 어쩌면 고대 황제중심 사회에서 기록관(혹은 분류관)이 가장 과학적으로 추론해낸 결과물일 수 있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바뀌지 않을 수 있는 불변의 분류란 존재할까?

보르헤스는 이를 두고 다음과 같이 평합니다.

“자의적이고 억측적이지 않은 우주의 분류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주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주의 신성한 도표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불가능성은 우리로 하여금 인간적 도표를 그리게 만든다."

인간이 그려온 모든 분류체계라는 것이 인간의 자의적일 사유의 결과물일 뿐 영원무구한 진리적 표준분류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보르헤스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중국 한 백과사전의 분류에 대한 이야기는 푸코도 언급한 바 있습니다. 푸코는 <말과 사물>의 서두에 보르헤스의 이 백과사전에 나오는 동물 분류법을 보고 “지금까지 간직해온 나의 사고, 즉 우리 시대와 풍토를 각인해주는 우리 자신의 사고의 전 지평을 산산이 부숴버리는 웃음”을 지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웃음은 “다른 사고 체계가 이국적인 매력으로 보이는 것은 우리의 사고의 한계, 즉 무엇인가에 대한 사고의 절대적인 불가능성”때문에 발생한다고 분석합니다.

제가 이 사례를 언급하면서 강조하고자 하는 점은 간명합니다. 그간 우리의 사고의 확장과 상상력을 저해해온 기존의 분류법을 이젠 슬슬 손 볼 때가 됐다는 사실입니다. 즉 지금 우리의 사고를 지배하고 분류코너를 정의하는 근대적 구분법 즉 정치, 경제, 사회의 분류법은 유효기간이 다해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굳이 앞의 사례를 거론한 것은 이러한 분류법이 최상도 궁극도 아니며, 당대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역사적 분류법에 다름 아님을 상기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언제든 사회의 필요에 따라 재편성될 수 있고, 이러한 과정에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분류는 언제부터 시작됐나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갈까 합니다. 정치, 사회, 경제라는 구분법이 언제 탄생했을까요? 사회과학의 역사를 살펴보면 됩니다. 19세기 이전 대학에는 철학부라는 단일 학부만 존재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과학과 철학이 이혼함으로써 근대적 사회과학의 분류법이 탄생합니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으로 쪼개지고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중간지대에 사회과학이 등장하게 됩니다. 사회과학은 다시 분화를 거치면서 국가, 시장, 시민을 다루는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이 태동합니다.

200여년의 역사를 지닌 예일대의 경우를 보겠습니다. 예일대에 의과대학원이 등장한 것은 1810년, 신학대학원은 1822년, 법과대학원은 1824년, 일반대학원 1847년에 설립됐습니다. 학부가 여러 분과로 나눠진 지 겨우 200여년 정도에 불과할 뿐입니다.

시대가 바뀌고 있습니다. 사회과학 내에서는 통합의 기운이 싹트고 있습니다. 앞서 제가 경험한 분류체계의 불편함을 학계는 이미 일찍부터 깨닫고 있었던 셈입니다. 월러스틴 교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구분을 어떻게 극복해나갈 것이냐를 화두로 삼으면서 “사회과학 분과학문의 역사적 범주화는 더 이상 어떤 지적인 의미도 없다고 생각한다”며 통합론을 설파하고 있습니다.

학문 분야뿐 아니라 이와 같은 역사적 분류체계를 흡수한 뉴스 분야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발견됩니다. 정치, 경제, 사회라는 고전적 분류법으로 범주화할 수 없는 다양한 뉴스들이 생산되고 있습니다. 애초부터 사회현상은 정치, 경제, 사회라는 분류법을 불편해했을지도 모릅니다. 정치와 구분된 경제 현상이라는 게 존재한다는 게 지금은 자의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전통적 분류체계를 파괴하는 웹2.0

아쉽게도 한국의 뉴스 매체는 정경사라는 근대적 분류체계를 여전히 고집하고 있습니다. 잘 맞지도 어울리지도 않는 옷에 사회현상을 자꾸 가두려고 하고 있습니다. 독자들은 자주 “왜 이 기사가 정치 혹은 경제에 혹은 사회에 있지”라며 의문을 표시합니다. 이제 이 구분법을 걷어낼 때가 왔음을 알리는 경고신호가 아닐까요?

이미 뉴미디어는 새롭게 편리한 분류체계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분류를 Tag로 대체하는 경우도 등장했죠. Allblog는 분류 자체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이슈 키워드로만 운영합니다. CNN도 최근 리디자인을 단행하면서 전통적 분류체계를 우선 순위에 두던 기존 질서를 과감히 포기했습니다. 대신 TOP STORY, MOST POPULAR, STAFF PICKS, I-REPORTS 등으로 나눠 병렬적으로 정리를 해뒀습니다. 가장 많이 본 뉴스와 같은 카테고리(범주화)는 이제 보편적인 구분법이 됐습니다.

물론 전통적 범주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전통적 분류체계가 콘텐트 생산 양식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곧바로 바뀔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웹2.0은 이러한 분류체계를 얼른 파괴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있습니다. 분류체계에 있어서도 개인의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죠. 언뜻 포스트모던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일단 거칠게 분류체계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봤습니다. 다음번엔 좀더 치밀하게 분류체계의 파괴에 대한 포스팅을 해볼까 고민 중입니다. 특히 '포스트모더니즘과 웹2.0 그리고 분류체계'에 대한 글을 써보고 싶더군요. 그러려면 책을 좀더 많이 읽어야 할 듯하네요.

여러분들은 혹시 기존 분류체계에 불만을 느끼신 적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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