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2018년 8월, 메디아티에 재직할 당시 어느 기관의 자문용으로 작성된 원고입니다. 우연찮게 발견해서 여기에 다시 쌓아둡니다. 저 자신의 예측과 전망이 얼마나 허약했는가를 성찰하는 근거 자료가 될 수도 있어서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당시의 진단과 고민이 현재의 미디어고토사, 나아가 미디어스피어로 발현되고 있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감히 한국 언론 산업의 10년 뒤, 즉 2028년은 제가 논하다니 참 어리석기도 한 것 같습니다. 어찌됐든 그 당시 사고의 흔적들을 다시 끄집어내어 지금의 지침으로 삼고자 하는 마음으로 여기에 아카이빙을 해둡니다.


Q. 한국의 언론 환경을 미국이나 일본, 유럽과 직접 비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한국 언론 시장의 가장 큰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나.

A. 신뢰의 붕괴라고 생각한다. 신뢰의 하락이 아니라 붕괴다. 2018년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보고서를 보면, 한국은 조사대상 37개국 가운데 꼴찌였다. 지난해도에 같은 결과였다. 신뢰는 언론이 진실로 다가가기 위한 중추신경이다. 신뢰가 붕괴되면 매개자로서 언론의 모든 행위가 사실상 작동을 멈추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신뢰의 붕괴가 하루아침에 벌어진 것이 아니라 누적적으로 축적적으로 진행됐다는 사실이다. 회복을 위한 노력이 단기간에 성과를 거둘 수 없는 이유다. 독자들은 언론의 뉴스와 콘텐츠를 믿지 않고, 믿지 않으니 새로운 대안을 찾아 떠나게 된다. 그 대안의 터가 가짜뉴스 등의 종착지일 경우가 빈번하다. 신뢰가 붕괴되면 언론이 하는 모든 행위를 의심받게 된다. 심지어 비즈니스를 위한 다양한 실험과 시도들도 작동하지 않는 상황을 낳는다. 지금 한국 언론이 당면한 가장 큰 문제가 아닐까 한다.

Q. 국내 기성 언론의 혁신 가운데 주목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A. 이미 여러 기성 언론들이 새로운 실험에 나서고 있다. 그 가운데 한 가지 사례를 꼽는다면 중앙일보 디지털콘텐츠랩이다. 애초 데이터 저널리즘의 실험 공간으로 출발했던 이 팀은 최근 들어서 다양한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실험 그 자체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동네 의회살림’처럼 성과도 만들어내고 있다.

일반적으로 기성 언론의 뉴스 실험은 단기 프로젝트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 성과나 수익에 기여하지 못하면 곧장 해체되거나 실험이 중단되곤 했다. 하지만 중앙일보 디지털콘텐츠랩의 도전은 몇 년째 지속되고 있다. 오디언스의 기대와 니즈에 반응하면서 스토리텔링의 형식을 진화시키고 있다. 오랜 노력이 만들어내는 긍정적인 효과라고 생각한다. 수용자들이 무엇을 궁금해하고 그들이 몰입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의 구조가 무엇인지를 꼼꼼하게 분석한 흔적이 두드러져 인상이 깊다.

Q. 매체도 변해야 하지만 독자들도 달라져야 할 필요가 있는 건 아닐까? 미국, 일본, 유럽 등과 비교하면 콘텐츠 소비량, 해석 능력이 부족한 건 사실 아닌가.

A. 개인이 아닌 집단으로서 독자는 현명하지 않았던 적이 없다.  언론사 기자들이 신뢰하지 않았을 뿐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집단으로서의 독자를 상정한다. 댓글 하나, 이메일 하나에 초점을 맞추면 독자들의 해석능력에 의심을 가질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모여모여 하나의 커뮤니티를 구성하게 되면 개별 기자들의 능력을 훨씬 뛰어넘는다. 독자를 이해할 때, 이 관점을 간과해선 안된다.

물론 미디어 리터러시가 중요하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정보 오버로드라는 환경은 좋은 정보의 식별능력을 독자들에게 요구하고 있어서다. 미디어 리터러시는 독자들의 해석 능력이 부족해서 제공되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빠르게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교양 프로그램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기자들 또한 변화한 미디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새로운 기술과 스토리텔링 기법을 연구하고 학습해야 하듯, 독자들에게도 그런 기회가 제공돼야 한다는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의미다. 전통 기자들이 새로운 기술에 익숙하지 않다고 해서 그들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말할 수 없는 노릇 아닌가.

Q. 미디어 스타트업을 육성하고 있는데, 한국 시장의 규모나 환경에서 미디어 스타트업이 수익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

A. 수익이 문제가 아니라 규모가 문제다. 작은 규모라면 작은 수익으로도 얼마든지 지속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작은 규모만으로는 국내 미디어 생태계를 변화시키기엔 한계가 존재한다. 미디어 스타트업은 미디어 생태계의 문제 해결사 역할을 도맡아야 한다. 기성 언론이 내팽개쳤던 신뢰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하고, 그들의 관심 영역 밖에 있었던 다양한 관심사의 문제를 풀어줄 수 있어야 한다. 자연스럽게 규모의 확장이 미디어 스타트업들에게 요구된다.

미디어 스타트업은 전통적인 미디어 산업이 좇아온 수익 모델에만 한정하지 않아야 한다. 광고와 구독, 두 개의 주된 수익모델만으로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물론 최근 들어 브랜디드 콘텐츠로 꽤나 많은 수익을 발생시키는 미디어 스타트업도 등장하고 있다. 광고 환경도 점차 우호적으로 바뀌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보다 과감해져야 하며 보다 도전적이어야 한다.

타깃 독자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는 다양한 수단들을 수익모델의 범위 안으로 끌고와야 한다. 그것이 비록 상품 생산의 영역이라 할지라도 마다해선 안된다. e커머스가 미디어 산업 수익 모델로 검토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굳이 기성 미디어나 플랫폼 사업자가 장악하고 있는 디지털 디스플레이 광고 영역에 뛰어들지 않더라도 접근법을 조금만 조정하면 얼마든지 미디어 스타트업이 생존할 수 있는 수익 모델 찾기는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미 그런 미디어 스타트업들이 국내에서도 등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Q. 투자사 선정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뭔가

A. 타깃 오디언스의 문제를 정확히 이해하고 창의적이 해결책을 내놓았는가 여부다. 그리고 그 해결 방안을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는가이다. 적지 않은 스타트업들이 오디언스의 필요보다는 본인의 불편함에 집중한다. 둘의 교집합 영역이 크면 문제가 없겠지만 빗나가는 경우가 더 빈번하다. 미디어 스타트업은 본인이 하고 싶은 무언가를 그리는 과정이긴 하지만 정확히는 오디언스의 문제를 본인의 능력과 의지로 해결하는 과정이다. 시장의 요구가 반영되지 않은 스타트업은 오래 버티기가 쉽지 않다.

오디언스의 문제를 머릿속으로 상상만 하는 경우도 많다. 없는 문제도 머릿속에만 들어가면 심각해지는 경우도 있다. 상상된 오디언스의 문제는 그에 적합한 해결책 구상을 왜곡시킨다. 결과적으로 오디언스를 정확히 이해하고 그들이 겪고 있는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팀에 투자를 집행하게 된다.

Q. 앞으로 크게 성장할 것으로 기대되는 신생 미디어 스타트업을 꼽는다면.

A. 메디아티가 투자하는 모든 팀이 크게 성장할 것으로 기대한다. 사적인 바람과 생태계적 기대가 뒤섞여있긴 하지만… 어느 팀 한 곳을 콕 찍어 제시하는 건 제 입장에선 어렵다.

Q. 미디어 전문가가 꼭 챙겨 보는 매체들은 어떤 것일지 궁금하다. (매체 추천과 그 이유)

A. 일반 저널리즘 매체만 50곳을 피드를 통해 구독하고 있다. 이 가운데 꼭 챙겨보는 매체를 꼽는다면 3~4곳 정도를 들 수 있다. 미디어 트렌드를 읽고 싶다면 니먼랩을 추천한다. 전세계 미디어 생태계의 지형을 이해하고 사례를 학습하는데 도움이 된다. 미디어 연구를 업으로 삼는 분들이라면 아마 대부분 구독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료 구독 미디어이긴 하지만 벡달닷컴도 빼놓을 수 없다. 미디어 산업에 대한 탁월한 통찰을 제공한다. 토마스 벡달을 빼놓고 글로벌 미디어 산업을 논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프레데릭 필루 등이 운영하는 먼데이 노트도 반드시 구독해 볼 것을 추천한다. 벡달과 필루는 미디어 산업에 대한 가장 깊고 넓은 이해를 지닌 전문가 가운데 전문가다. 미디어 산업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유관 산업과의 관계와 이해 속에서 미디어 산업의 미래를 내다본다는 점에서 차별화된 관점과 퍼스펙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Q. 앞으로 우리나라 미디어 콘텐츠 시장이 어떻게 달라질 것으로 예측하나. 10년 후 한국 언론 시장을 그려 보신다면.

A. 10년 뒤엔 미디어라는 획정된 영역이 존재할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렵다. 미디어는 존재하지만 어디까지가 미디어 시장이고 어디까지가 미디어 시장이 아닌지 분간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미국에서 통신사가 미디어를 집어삼키고 있고, 커머스 기업이 미디어를 운영한다. 그들을 미디어라 불러야 할지, 말아야 할지조차 결론 짓기 어렵다. 모든 사회, 경제 영역이 콘텐츠를 생산하게 될 것이고, 그 콘텐츠의 진위를 가리기 위한 새로운 미디어가 또 출현할 것이다. 정의되지 않는 미디어 시장의 파고 속에서 한국의 기성 언론사들은 적응을 못하며 여전히 수익 찾기에 혈안이 돼 있지 않을까 한다. 2000년 탄생한 오마이뉴스가 지금은 기성 미디어로 인식되고 있는 것처럼, 지금의 뉴미디어들이 그 때쯤이면 올드 미디어가 돼있을 개연성도 존재한다. 이러한 혼전의 국면 속에서 전혀 다른 수익 모델을 실험하는 새로운 미디어 스타트업들이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고, 이 과정에서 수차례의 인수합병이 반복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예상일 뿐이다. 결국 10년 뒤면 지금보다 훨씬 신뢰할 만한 미디어가 더 많아질 것이고,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플레이어들이 기성 미디어의 자리에 올라있거나 위협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버즈피드’ 상장이 국내 미디어 스타트업에 던지는 교훈
베트남 전이 끝날 무렵인 1969년. 43세의 젊은 CEO 설즈버거(Arthur Ochs Sulzberger)는 뉴욕타임스를 미국증권거래소에 상장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더 큰 성장과 지속적인 확장을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더 많은 돈이 필요했고, 더 많은 인재를 채용해야 했기에, 자금 조달의 유연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상장은 괜찮은 선택이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고민이 있었습니다. 상장 뒤에도 설즈버거 가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