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카카오엔터프라이즈는 중앙일보 빌딩에서 카카오엔터프라이즈 백상엽 대표, 중앙일보 박장희 대표 및 주요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AI 기반 물류센터 구축 및 물류 운영 효율화를 위한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약 열흘 전 위 뉴스를 보신 분들이 많을 겁니다. '신문사가 웬 물류?'하며 무심코 넘긴 분들도 적잖을 겁니다. 궁금한 점은 많았지만 정보가 많지 않아 이내 파고들길 포기한 분도 많을 거고요. 저는 후자에 해당합니다. 대략 '이런 것이지 않을까', '그런데 왜 중앙일보지?' '누가 먼저 제안한 것일까' '뭘 배달하려고 하는 거지?' 등등의 의문점들이 생겨났지만 더 깊이 파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 오늘 조금 여유를 내어 여러 문서들을 읽어내려갔습니다. 지금도 딱히 손에 잡히지는 않지만 대략의 맥락 정도는 이해할 수가 있게 됐습니다. 그 부분을 여러분들과 공유하고 싶어서 다시 노트북을 열었습니다.

신문사 배달망의 역사와 특징

중앙일보와 카카오엔터프라이즈의 물류 AI 협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신문사 배달망의 특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이 분야는 연구나 데이터가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그만큼 공개된 정보가 흔하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신문의 배달망 좀더 포괄적으로는 판매망은 전후 가두판매로 시작이 됩니다. '길거리 신문배달원'이라고 불리는 형태입니다. 신문팔이라 불리는 이들이 조간이나 석간 신문이 발행되면 길거리로 뛰쳐나와 '신문이요'라고 외치며 유료로 판매를 했습니다. 이를 통제하는 조직이 있었고 신문사 판매담당자들이 이들을 관리했습니다. 심지어 각 신문사별로 신문배달원들의 조직이 만들어지기도 했고, 기숙사도 제공했습니다. 때론 영역 다툼으로 난투극이 벌어지기도 했죠. 이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1950년대만 하더라도 매우 부정적이었습니다.

가두판매는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가판/좌판이 주류 형태로 바뀌게 됩니다. 가두판매를 가판대가 대체하게 된 것이죠. 가장 비근한 예로 '지하철 가판대'를 떠올리시면 됩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목 등에 가판을 설치하고 그곳에서 신문을 파는 유형입니다. 가판대에서 얼마나 많이 팔리느냐가 지금의 페이지뷰와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이후 성장하면서 총판, 중판, 소판 등 단계마다 구분이 이뤄졌고, 판매경쟁도 무척이나 치열해지기도 했습니다. 신문사가 총판에 저가에 신문을 판매하면, 이를 중판, 소판을 거쳐 가퍈대에서 시민들이 신문을 구입하게 되는 방식입니다.

이 시기를 즈음해서 신문사들은 신문사-지국-보급소의 위계적이고 체계적인 판매-배달망을 서서히 갖추게 됩니다. 신문 판매의 핵심 유통 시스템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신문사는 각 지역에 지국을 개설하고, 이 지국은 하위에 보급소를 제어합니다. 물론 지국과 보급소가 한몸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지역의 여건에 따라서 결합 유형이 달라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유통 시스템 하에서 과거의 가두판매 신문배달원은 일종의 지국 소속의 계약형 신문배달부로 변모합니다. 신문 구독가구가 모여있는 특정 구역에 신문배달원이 급여를 받고 배달하는 형태입니다. 저도 초등학교 때인 80년대 중후반 이 일을 해본 적이 있는데요.  새벽 4시쯤 일어나 보급소에 가서 전단지를 삽입하는 작업을 거친 뒤 약속된 가정으로 배달하고 퇴근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80부를 돌려야 했는데 그 80가구의 집을 다 외우는 데까지 시간이 제법 필요하기도 했습니다. 자칫 잘못된 주소로 배달하기라도 하면 늘상 보급소로 항의전화가 걸려와 다시 가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었죠.

또 한 가지, 이 배달망을 이해하려면 민영구조와 직영 구조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민영 구조는 신문사가 해당 지역의 지국과 계약을 맺는 방식이라면, 직영 구조는 직접 지국을 운영하는 형태를 말합니다. 또 전매 방식과 공배 방식이 있는데요. 특정 지국이 하나의 신문만 배달하는 걸 전매제라고 합니다. 지금은 전매형태로 판매하면 지국이 살아남을 수 없는 상태가 됐지만 그래도 신문의 황금기엔 이런 모델도 존재를 했다고 합니다.

중앙일보 배달 시스템의 특성

배달망에 대한 설명이 너무 길었네요. '왜 중앙일보인가'를 이해하려면 1965년 창간 이후 중앙일보가 구축한 배달망의 특징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선에 따르면 앞서 언급했다시피 신문사와 지국의 관계는 직영과 민영으로 구분이 되는데요. 3대 일간지 중에 유일하게 중앙일보만 직영 체제를 현재 구축했습니다.

1965년 당시 삼성 이병철 회장이 신문사업에 직접 나서면서 매우 공격적으로 판매 시스템을 만들어갔는데요. 이 과정에서 무가지를 내세우며 판촉을 강화한 신문사가 바로 중앙일보였습니다. 후발주자였기에 더 많은 돈을 쏟아부을 필요가 있었던 듯하고, 막강한 재벌 자본이 뒤를 받치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선택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여튼 다른 신문사와 달리 중앙일보는 독특하게 직영 체제로 지국을 다수 운영하고 있고 있습니다(한선, 2018, p.132). 통상 지국은 하나의 신문만을 배달, 유통하는 단독 지국과 여러 신문을 함께 배달하는 복수 지국이 있는데요. 2004년 기준으로 조선일보의 단독 지국 비율은 1056개 지국 중 77.7%, 중앙일보는 1007개 지국 중 68.4%에 달합니다. 이들 단독 지국도 계약 형태에 따라 직영과 민영으로 구분되는데, 중앙일보는 직영 구조가 강한 편에 속했습니다.

중앙일보는 2000년대 초 단독 지국을 직영 센터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많은 잡음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실적이 낮다는 이유로 직영센터 전환을 강제하거나 불합리적 계약을 요구하는 횡포도 자행했죠. 이를 고발한 사례들이 2000년대 초반 여러 언론을 통해서 소개가 되기도 했습니다. 어찌됐든 현재 중앙일보는 8개의 직영 지점에 750여개의 지국(센터)를 갖추고 있습니다. 2004년에 비하면 300개 이상의 지국이 사라진 셈입니다.

이은주. 2008. p.49 캡처.
<중앙일보> 직영지국 불법판촉 성행
전 중계지국장 공정위에 고발... 홍석현 회장 형사고소도

아시다시피 신문 유가 구독이 급전직하하면서 신문 배달 조직의 수익구조는 악화일로를 걸었습니다. 더이상 신문배달만으로는 버틸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아직 신문 구독 자체가 완전히 소멸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리고 신문으로 파생되는 수익이 적지 않은 상태에서 지국의 문을 닫기도 쉽지가 않습니다. 이 조직의 살려내기 위해서는 또다른 방책이 필요한 상황이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죠. 게다가 ABC 체제에서 유가 판매부수가 광고 단가를 좌우했기 때문에 막무가내로 폐쇄할 수도 없었던 게 신문사들의 공통된 고민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막대한 판촉 등 유지 비용을 감당하는 것도 디지털 중심의 신문 시장에서 현명한 전략은 아니었죠.

중앙일보는 8개 직영센터와 750개 지국으로 구성된 배달망에 새로운 수익원을 붙여야하는 과제를 떠안고 있습니다. ABC 체제가 사실상 붕괴되면서 다수의 지국을 유지해야 할 이유도 낮아졌습니다. 이런 복잡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이 배달망에 다른 수익원을 붙여놔야만 했을 겁니다. 그래서 떠올린 아이디어가 '라스트마일의 거점' 즉 MFC(mini Fullfillment Center) 모델이 아니었나 생각이 됩니다. 직영점과 지국을 엮어 MFC로 전환함으로써 새로운 배달 상품이 유통될 수 있는 새로운 물류망을 구축하는 아이디어로 현실화하고 있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카카오엔터프라이즈의 물류 AI 플랫폼

기존 지국을 라스트마일의 거점으로 활용하려면 다양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서, 서울시 용산구 동자동 지국이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새벽 신문배달에 익숙한 체계를 갖추고 있겠죠. 이 공간을 새벽배송이 가능한 도심형 물류센터로 활용을 하려면 주문-접수-배송-재고관리가 효율적으로 관리돼야 합니다. 신문 배달만 관리해봤지만 상품 배송을 시도해보지 않은 지국장은 상당히 난감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배송 관련 문의도 많이 들어올 것이고 이런 등등을 응대하려면 적잖은 인력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비용효율적인 자동화 시스템이 적용될 수 있을 때야 비로소 지국이 MFC 기능을 담당할 수 있게 되는 거죠.

그리고 모든 상품을 다룰 수도 없습니다. 지국 사무실 규모가 크지 않기에 소규모 상품만 취급이 가능할 겁니다. 여기에 재고가 많아지면 다른 업무를 진행할 수도 없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을 중앙일보 혼자 힘으로 풀어내기엔 벅찰 수밖에 없습니다. 카카오엔터프라이즈는 이러한 니즈를 노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어느 쪽이 먼저 제안을 했는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듣기로는 카카오엔터프라이즈 쪽에서 먼저 아이디어를 건넨 것 같더군요.

최근 카카오엔터프라이즈의 행보를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카카오엔터프라이즈는 최근 공격적으로 물류AI 제휴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9월17일 롯데글로벌로지스틱스와 11월 9일에는 동원디어푸드와 12월 7일에는 중앙일보와 물류 AI 제휴를 성사시켰습니다. 이때마다 백상엽 대표가 사진에 등장을 합니다. 카카오의 AI 기술을 더 많은 기업에게 실적용함으로써 실적을 늘려야 하는 압박에 처해 있었던 게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잠시 이 지점에서 퀵커머스를 알고 가면 좋을 듯합니다. 택배보다 빠른 배송 서비스라고 이해하면 될 겁니다. 주로 오토바이라는 운송 수단을 이용해 배달이 이뤄집니다. 배달의민족, 요기요, 쿠팡이츠 등이 이 시장에 진출한 상태입니다. 이들이 취급하는 상품은 음식 배달뿐 아니라 헬스, 뷰티, 의류, 잡화 등입니다. 재고 보관이나 관리가 비교적 쉬운, 작은 부피 위주의 상품들이죠.

카카오엔터프라이즈는 이 물류 시장을 제어할 수 있는 플랫폼을 개발했습니다. 이미 뜨겁게 경쟁이 달아오르고 있는 시장에 카카오엔터프라이즈가 카카오 i 시리즈 기술로 재빠르게 뛰어들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은 성장의 기반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적극적으로 기업들에게 파격적인 제안을 하며 MOU를 성사시키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

퀵커머스 시장 가능성과 진화 방향
초등학교 때 부모님은 저녁 식사를 준비하면서 종종 밖에서 놀던 저를 부르곤 했습니다. ”정수야 빨리가서 계란 한 판 사와라”. 이런 심부름 싫지 않았습니다. 잔돈은 제 몫이었으니까요. 30대 때 장은 주로 주말에 봤습니다. 주 중에 식용유가 떨어지면 메모를 했습니다. 주말 장을 볼 때면 메모에 적힌 목록을 보며 마트를 휘휘 돌아다니곤 했습니다. 40대

'어떤 상품이 기존 지국의 배달망을 통해 유통될까?' 이 의문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퀵커머스의 특징을 통해 작은 부피의 상품을 유통할 것이라는 정도는 상상이 가능합니다. 그것이 무엇일 될까는 여전히 저도 궁금한 점입니다. 사실상 죽어가고 있는 신문의 배달망을 디지털 전환을 통해 퀵커머스의 거점으로 재구축할 수 있다면 대형신문사로선 호재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상품 유통과 관련한 또다른 협업이 이뤄져야 할 겁니다. 신문사는 상품 생산업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문만의 배달망이었던 지국 사무실이 퀵커머스의 MFC로 재탄생할 수 있다면 지국장들의 수익 고민도 많이 덜어질 겁니다. 사무실 앞에 오토바이가 한두 대에서 십수대로 늘어날 수도 있을 겁니다. 본사 직영 체제를 구축해온 중앙일보로서는 앓던 이 하나를 빼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건 전적으로 카카오엔터프라이즈가 얼마나 도와주느냐에 성패가 달려 있을 수 있습니다. 그들 스스로는 호언장담을 하고 있겠지만 디지털전환은 늘상 문화의 전환을 요구하기에 멋진 기술만으로 항상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지는 않습니다.

중앙일보의 도전은 분명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신문 배달조직의 직영체제가 안정돼 있기 때문에 실행할 수 있는 시도이기도 할 겁니다. 기존 지국장들이나 직영센터장들이 어느 정도 적극적으로 호응할지는 미지수지만, 수익원 다각화를 위한 기회를 만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래서 이 시도를 조금더 주의깊게 관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대략 여기까지가 제가 분석하고 상상해본 두 기업의 제휴 목적과 숨은 그림입니다. 어디까지나 저의 상상이라는 사실을 유의해주시기 바랍니다.


참고문헌

  • 윤상길. (2014). 박정희 정권 시기 신문배달원 신화 창출의 사회적 맥락. 언론정보연구, 51.
  • 이은주. (2005). 한국신문산업의 시장, 정책, 운동의딜레마. 박사논문, 서강대학교 대학원.
  • 한선. (2018). 신문배달조직의 황폐화와 판매시장의 왜곡: 판매 담당자의 심층인터뷰를 중심으로 한 질적 연구. 한국언론정보학보, 89, 119-148.